어릴 적 나는 텔레비전을 마음껏 볼 수 없는 아이였다.
집에는 안방에 단 한 대뿐이었고, 내 방은 마당을 건너 있는 별채에 있었다.
리모컨의 주인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뉴스를 보셨고, 동물의 왕국, 6시 내 고향, 가요무대를 사랑하셨다.
드라마는 단 한 편도 관심이 없으셨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아이들은 전날 본 드라마 이야기로 아침을 열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어젯밤 장면이 얼마나 설렜다더라.
나는 그 세계에 끼지 못했다.
보지 못했으니까.
대신 나는,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들은 내용으로 다시 대화를 이어 가는 기술을 익혔다.
그 시절, 사춘기 소녀였던 나는
아버지가 참 미웠다.
텔레비전 대신 우리 자매에게 허락된 친구는 라디오였다.
밤이면 작은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베개처럼 끌어안고 잠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또래보다 훨씬 넓은 시대를 살았다.
옛 노래부터 최신곡까지,
라디오는 우리를 언제나 유행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는 점점 늘어났고,
용돈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음반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를 사 오는 날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동생과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전주 듣고 제목 맞히기였다.
웃풍이 세던 방, 도톰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서로 먼저라고 외치다 보면
노래는 어느새 자장가가 되었고 우리는 잠들어 있었다.
라디오는 그렇게 우리를 키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지금도 특정 장르를 고르지 못한다.
좋아하는 노래가 너무 많아서 ‘18번’이 없다.
초등학교 때는 신승훈을 좋아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서태지에 열광했다.
그러다 어느 날엔 대만 스타들을 따라 했고,
중국어 한 마디 모르면서도 곽부성의 가사를 들리는 대로 흉내 냈다.
고등학생이 되자 김민종과 H.O.T.을 좋아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빠져
원작 유성화원의 OST를 사기 위해 중국까지 가서 음반을 찾을 정도였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통기타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이름도 예쁜 ‘소리사랑’.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음악이 맺어 준 인연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집 안에는 늘 다른 장르가 흘렀다.
발라드, 힙합, 클래식, 팝.
덕분에 두 아들은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끼는 사람이 되었다.
음원 결제가 하루만 늦어져도
“아빠, 음악 못 들어!”
집안에 비상이 걸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에게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공기다.
여행 중에도, 잠들기 전에도,
기분이 좋을 때도 우울할 때도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 위로받는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노래에 귀가 더디게 열리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음에 닿는 노래를 만나면
몰래 저장해 둔다.
옛 노래와 아이돌 노래가 뒤섞인,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아마 내 음악 사랑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말한다.
“엄마 칠순잔치는 꼭 EDM 파티로 해 줘.”
아이들은 웃으며 어이없어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도 우리 집에서는
누가 먼저 음악을 틀 것인가를 두고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안다.
결국 같은 노래를 듣게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