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꿈이라는 동기로 모든 걸 수긍하지 않기로 했다

꿈이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난 지금까지 많은 시간 꿈을 안고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타이타닉을 본 순간 영화의 특수효과에 매료됐다. 영상 분야에서 일하는 게 나의 꿈이 된 순간이다. 그때부터 꿈꾸는 삶은 막을 올렸다. 정보가 황무지였던 그 시절 제주에서 어떻게 하면 영상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3이 됐다. 성적이 좋지 않아 육지에 있는 대학에 갈 수준이 못됐다. 제주도엔 영상 전문 학원이나 영상 관련 학과가 없었기에 머리가 뽀개지도록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나마 영상과 관련 있다고 여긴 제주대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그 해에만 실기가 없었다. 하늘이 나를 도운 순간이다.



그렇게 난 산디과에 입학했다. 산업디자인과는 영상을 다루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디자인 기반을 배울 수 있었다. 영상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독학했다. 밤새며 영상 공부를 하는 것은 희열 그 자체였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존감은 꽉꽉 들어찼다.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산업디자인과에도 영상 수업이 생겼다. 그리고 나와 같은 꿈을 갖은 오빠가 편입했다. 그해는 영상에 대한 공부도 꿈도 더욱 탄력을 받은 해였다. 오빠는 나보다 영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고, 프로그램도 더 잘 다뤘다. 그 옆에서 참 많은 걸 배웠다. 같이 영상공모전에 참여했고, 과제도 함께했다. 같은 꿈을 가진 이를 만나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영상을 공부했고 기회를 잡았다. 점점 영상은 나의 삶이었고, 기둥이었고, 나 자신이 되었다.



졸업하고 나선 바로 상경해 모션그래픽 학원을 다녔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꿈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벅찬 감정을 잊지 못한다. 하고 싶던 공부를 전문적으로 배운다니! 얼마나 애타게 고대했던가! 독학은 배움이 더뎠으나 학원에서의 배움은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 훨훨 날게 했다. 영상 작업은 한결 수월해졌다. 정말 원 없이 만들고 공부했다.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친구들이 생긴 것도 참으로 든든했다. 모르면 서로 물어봤고 알려줬고 함께 습득했다. 함께하는 배움을 즐기며 만끽했다.



그로부터 5년 동안은 꿈만 바라보며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엎어져도 쓰러져도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멀리 와 있었다. 그리고 꿈에 도달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영상일을 멋들어지게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꿈을 이뤘고, 타인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근데. 뭔가 허했다.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영상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어 있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더욱 나를 슬프게 했던 건 나 자신이 희미해져 있었다는 거다. 꿈은 얻었으나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그로 인해 꿈의 행복도 메말라 있었다. 꿈을 이룬다고 행복하지 않음을. 마음이 허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를 그토록 즐겁게 해 주던 영상이 불행을 주는 결점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꿈은 나를 거침없이 잡아끌었다. 버티라고 이 자리를 지키라고.



반년 동안 고민하고 고민하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했다. 꿈과 이별하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지만 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 그저 살아갔다. 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발걸음은 방향을 잃었고, 꿈을 향하며 만들어진 습관들은 할 일을 잃고 방황했다. 담배를 끊으면 금단현상이 오듯, 영상을 그리고 꿈을 끊은 내게도 금단 현상이 왔다. 그것도 장장 8년 동안이나. 내 마음은 항상 메말라 있었고, 무얼 해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유로운 일상도, 가만히 있는 손가락도 낯설었다. 내 심장을 두 방망이 쳐 줄 또 다른 꿈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찾으면 찾을수록 가슴은 쩍쩍 갈라졌다. 대체할만한 꿈이 없다는 걸 확인할 뿐이었으니까.



그러다 마침내 글쓰기라는 꿈에 안착했다. 영상만큼 내게 희열을 줬다. 또한 평온함도 줬다. 나를 돌아보며 글 쓰는 시간은 마음을 한층 성장시켰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근데 꿈을 향해 나아갈수록 이상한 마음들이 다가왔다.

행복한 감정 뒤에는 시기심, 자책, 좌절, 절망들이 시시때때로 마음 안을 휘저었다. 감정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무기력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마음 한편엔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도 참 많이 싸웠다.



생각해보면 영상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을 때와 글쓰기로 인정받는 게 꿈인 지금. 모두 풍성하고 다채로운 삶을 살게 했다.

근데 분주한 꿈은 나를 잃게 했고, 유유한 꿈은 마음을 수시로 할퀸다.

영상이란 꿈을 안고 살았을 땐 타인과의 재능 차이로 힘들었다기 보단 너무 바빠서 질투나 시샘 괴로움 같은 감정을 돌아볼 여력마저 없었다. 그저 해나갔다. 마음을 충전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달리기만 했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다.

글 쓰는 삶을 꿈꾸는 지금은 여유가 많다. 그 말인즉슨 나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도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하나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들을 한껏 음미하게 된다. 그 덕에 쓴맛 또한 진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전의 꿈보다 더 힘들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꿈으로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지만 그 꿈으로 참 많이도 아파한다.

꿈으로 나를 잃고 휘청거릴 때도 많다. 꿈이 있어 행복했지만 그만큼 괴롭다. 그 괴로움은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날의 고민들. 아픔들. 좌절들. 그것들은 꿈이라는 동기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젠 꿈이라는 동기로 모든 걸 수긍하지 않기로 했다. 꿈이 버거우면 내 그릇에 맞게 덜어내고 작게 만드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훌륭한 성과를 이루려 용쓰기보단 오늘의 계획을 정성스럽게 해내기로 했다. 또한 너무 여유로우면 꿈으로 인한 고단한 감정에 몰살되므로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꿈의 맷집도 키워질 거라 여기며 애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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