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결국 성찰이 되었다. 질투도 성숙해졌다.
질투는 추한 감정이지만, 진실을 알게 해준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갈망하는 것이 있는 사람을 시샘한다
- < 콰이어트 Quiet, 수전 케인 > 중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번뜩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의 이주윤 작가처럼 화끈하게 상대의 이름을 거론하진 못하겠다. 나는 그저 A라 부르겠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이실직고하면 난 며칠 전에도 A의 블로그를 살폈다. 새로운 소식은 없나. 내 눈은 이리저리 굴렀다.
'여러분 또 중쇄 했어요! 너무 기뻐서 이벤트 할게요'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가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날아간 A.
그리고 지금도 더 높이 날아가고 있는 A.
A로 말할 거 같으면, 2년 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됐다.
내가 한창 북로그를 활성화할 때쯤이 되겠다. '이달의 블로그'에서 '책/문화' 카테고리를 살피다 A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화면 상단의 큼지막한 블로그 타이틀은 상대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큼 그윽한 세련됨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아웃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레이아웃이 낯선 나머지 카테고리가 어딨는지 찾아 헤맸다.
마우스를 또르르 내리니 글이 보였고 또 또르르 내리니 그제서야 프로필과 카테고리가 보였다.
포스팅의 제목부터 글의 대표 이미지까지 신경 써서 꾸미는 A의 블로그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만 명 이상의 이웃이 있는 걸 테지.
내가 A에게 더욱 관심이 갔던 건 A도 부모였고 자녀가 있었으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교집합이 많은 A의 블로그는 잉여시간이 날 때마다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고 만다. 책을 출간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어?! 나도 준비하고 있는데?'
공통분모가 하나 더 느는 순간 A의 소식은 수시로 궁금해졌다. A는 출간 과정을 서슴없이 블로그에 공개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얼굴은 모니터로 바짝 다가갔다.
A는일타쌍피를 이뤄낸 것이다. 거의 동시에 두 개의 출간 계약을 이뤄낸 것.
내 마음에서 뿌직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A도 출간을 했고 나도 출간을 했다. 출간 후 난 변한 게 없었다. 반면 A는 달랐다. A의 책 리뷰는 인터넷에 가득했고, 북 토크를 했고 강의를 했고 중쇄를 여러 번 했다.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강한 질투를 느꼈다.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길 바라는 데서 많은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어 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김혜령 > 중에서
A의 성공은 내가 바꿀 수 없는 통제 밖 일이었고 거기서부터 질투는 나를 짓이겼다.
A가 설렘 가득한 출간 후의 일상을 블로그에 올릴 때마다 내 몸과 마음은 욱신거렸다.
그날부로 A의 블로그에 접속하지 못했다. 다시 상처 받기 싫었고, 비교하며 자책하는 내가 두려웠다.
비교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뭐... 말처럼 쉬운가.
시간이 지나 위에 언급한 콰이어트의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감정에는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는 걸.
내가 그토록 A를 질투하고 시샘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A가 가진 어떤 것에 그토록 강렬한 질투가 일어나는 걸까.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출간의 성공도 성공이었지만 마음 한쪽엔 콕콕 찌르는 무언가가 더 존재했다.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제보하며 축하해주는 열렬한 지지자들.
그들은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은 네이버 책문화 화면을, Yes 24 화면을, 교보문고 화면을 열심히 제보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A의 블로그 이웃 중엔 지방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분도 있어서 북 토크를 자체적으로 열어 A를 초대하기까지 했다.
A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
A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지지해주는 열렬한 구독자들 말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정 속에서 본인의 가치를 더욱 펼쳐 보이는 A의 모습이 그토록 부러웠던 것이다.
어렴풋이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그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니? 노력을 하긴 했니?'
할 말이 없었다. 난 그저 선비정신으로 글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과의 소통이고 뭐고 다 시간낭비라 여겼다. 뭐... 첫째를 출산했던 시기와 맞물려 그런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지만.
그제야 A가 일궈낸 과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에 굳게 닫혀 있던 자물쇠 하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A는 블로그에 스스럼없이 그날의 감정과 하루를 고백하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기 자신을 채워나갔고 그걸 공감해주는 더욱 단단한 지지층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지자들과 더욱 결속되었다.
출간 과정을 블로그에 올릴 때도 지지층들은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출간 후엔 팔을 걷어 부치며 행동으로 A를 홍보해줬다. 또한 A도 출판사 마케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스스로 신선한 기획들을 선보이며 책을 홍보해나갔다.
A 본인과 지지층들의 노력으로 A의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아무리 유명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하더라도 큰 성과 없이 스르륵 잠기는 책도 있는 법.
그러니 저자 자체가 브랜드가 되고 그를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출판사+저자+팬덤' 이렇게 세 가지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로 인해 책은 날개 돋친 듯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 위에 탄 저자 본인도 더 높은 세상을 활개 할 것이다.
비로소 질투는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마음이 아물 때까지 A가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웠지만 2년 동안 질투의 감정은 변화되었다.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90% 이상은 사라졌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사라질까.
A의 성공적인 첫 번째 출간의 성과를 보며 A의 질주가 엎어졌으면 좋겠다는 못된 마음을 품었다면, 두 번째 책을 보았을 땐 질투가 났다기보다는 체념하게 됐고, 세 번째 책을 보았을 때는 A의 능력에 견주지 못할 내 그릇을 바라보게 됐다.
질투에서 체념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내려놓고 인정하는 것으로 변한 것이다.
질투는 결국 성찰이 되었다. 질투도 성숙해졌다. 질투의 이유를 정리하니 내가 무엇을 버리고 채워야 할지가 보였다.
A를 통해 좋은 자극을 받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도 노력하기로 했다.
A가 출간 준비를 한다고 블로그에 소식을 알리면 나 역시 어떤 내용으로 책을 내고 싶은지 기획해보고
A가 강연을 하면 난 오늘의 글쓰기를 정성껏 마무리해서 발행하고
A의 포스팅 아래 팬들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면, 나는 이웃과 구독자들에게 먼저 말을 걸 것이다.
A처럼 훨훨 날진 못해도 내 보폭으로 가고, 내 속도로 가자고.
A처럼 높게 날지 못하더라도 그저 오늘 쓸 글을 쓰며 스스로 계단을 쌓아 나가자고.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그딴 거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오늘 할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감정이 변하던 감각과 순간을. 그때마다 나타났던 마음속의 현상들을 소중히 기억해야지.
다음에 또 이런 질투를 만나게 된다면 그땐 덜 휘청거릴 거라 믿는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과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받아들인다면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설령 질투에 눈멀어 감정을 억누르거나 컨트롤하는 게 미숙해질 적에는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을 읊조리고 읊조리며 질투를 통제할 수 있길 염원해본다.
평온을 구하는 기도
- 라인홀트 니버
주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하루하루를 한껏 살아가게 하시고
순간순간을 한껏 즐기도록 하시며
고난이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중략)
있는 그대로 끌어안게 하소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공감은 글 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이미지 출처: © peter_forster,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