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시기다.
투고를 통해, 블로그를 통해, SNS를 통해, 브런치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책을 내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시기 말이다. 그걸 지켜보는 누군가는 그들을 뒤따른다.
블로그를, 브런치를, SNS를, 유튜브를 열심히 꾸려가는 것이다.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출간의 기회는 찾아오고, 출간의 벽은 수월하게 허물어지므로.
지금이 이런 시대다.
이 흐름엔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출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개나 소나 책을 낸다며 요즘 책의 수준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 같은 일반인. 더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출간의 기회가 넓어진 이 시대에 누구보다 감사하다.
나 역시 이 시대의 흐름을 업고 출간 할 수 있었으므로.
그런데 말이다.
내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내 책이 좀 더 잘 팔렸으면 좋겠고, 글을 더 잘 썼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붙고 붙으며 꿈의 몸집을 키웠다.
이로써 책을 낸 이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는 있지만 작가로 살아남긴 힘들다.
작가로 살아내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사람은, 많은 날의 눈물로, 꿈도 젖어가고 희망도 젖어가고 본인도 젖어 간다.
물에 젖어가는 종이처럼 슬픔은 점점 번지고야 만다. 잘못 집었다가 찢어질지도 모르는 위태로움을 품고야 만다. 몇 번이고 눈물에 젖고, 마르고를 반복하다 보면 꿈의 모습은 구깃구깃해져 간다.
난 또 알게 된다. 꿈을 향하는 과정은 수많은 감정과 맞닥뜨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행복, 환희, 시련, 상실, 공허, 자책 같은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게 꿈으로 향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꿈이 있다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꿈이 명확할수록 더 명확한 아픔들로 괴로워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이렇게 아파하는 걸까?
나는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안될 거라는 걸. 그럼에도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짠하다 못해 불쌍해서.'
그럼에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꿈을 버리지도 못한다.
꿈이 너무 소중하고, 삶의 유일한 숨구멍이므로.
그저 눈물만 난다.
눈물은 내게 실제를 말한다.
아파하면서도, 눈물 지으면서도, 이렇게 평생 살게 될 거라고. 이토록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계속 살아가게 될 거라고.
지인들은 내게 희망을 말한다.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버티면 돼. 버티는 자가 결국 승리자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힘내"
그들의 위로가 참으로 고맙지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실제와 희망 사이에서 괴롭다.
희망은 점점 내 마음을 좀 먹는다. 나는 공허해지며 더욱 슬퍼진다.
왜 더 슬퍼지는 걸까?
'이미 힘을 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힘을 내고, 희망을 갖고, 버티라는 건지 암담해서 그러는 걸까?'
그것보단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해피엔딩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있음을. 36년간 살며 수많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을 품고 살다 생을 마감하는 처량한 인생도 있는 것이므로.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은연중에 직감해서 공허하고 슬퍼지는 것일 테다.
마음은 쓰리지만 그렇다고 하염없이 슬픔에 허우적거릴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바란다. 내일은 덜 슬퍼하기를.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꿈으로 인한 슬픔을 대하기로 했다.
오히려 슬픔을 알기로 한 것.
슬픔과 슬픔이 만나면 따뜻해진다는 조병준 시인의 <따뜻한 슬픔>에 나오는 글처럼.
어디가 아픈지만 정확히 알아도 한결 수월한 게 삶이라는 것을,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게 낫다는 은유 작가의 <올드걸의 시집>에 나오는 구절처럼.
애쓰는 슬픔과 상처 난 슬픔이 만나 약간의 온기라도 생겨나길 바란다.
슬픔은 따스해지고, 꿈의 형체는 작아지고, 옥죄어 오던 거대한 꿈으로부터 부디 놓여나길.
내가 하고 싶은 그 행위만을 온전히 생각하며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스스로 위로하고 싶어 시작한 이 글. 부디. 내 글로 위로받는 분도 있길 바란다.
우리 내일은 덜 슬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