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달라졌다.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아가며 지워져 가던 자아에 생기가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한 사람이라도 내 글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고 하면 지쳐 있던 삶에 활력이 돌았다. 이보다 값진 선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 썼던 글이 다른 이를 위로해주고 그들의 피드백에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이런 매력적인 순환이 그저 좋았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읽고 썼다. 그러다 브런치 작가도 됐다. 합격 메일이 온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 글의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으니까. 내 글의 가치는 나아가 자아의 가치로도 연결됐다. 글도 나도 쓸모 있는 존재라고 보듬어 주는 듯했다.
하나 둘 구독자가 생기고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이들이 생기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사는 느낌은 달랐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거와는 거리가 있었다. 뭐랄까. 발가벗은 진심 자체가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계산적이지 않은 이 인정이 나는 참 좋았다. 나는 아이로 인해 경단녀가 되고 집안에 묶인 존재가 되자 내 가치를 믿지 못했다. 근데 글을 쓰면 내 가치의 쓸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엄마라는 구속에서 내 존재 자체를 알아주는 탈출구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사람들의 공감은 달콤했다. 계속 달콤하고 싶었고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갈망했다. 조금 더 구독자가 많아지면 어떨까. 좀 더 라이킷을 받으면 어떨까. 이상한 것은 이때부터 글을 쓸수록 자꾸 괴로웠고 슬럼프도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소망대로 구독자가 하나 둘 늘어나고 라이킷이 하나 둘 많아질수록 나는 더 많은 구독자와 더 많은 라이킷을 갈망하게 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애써 외면하며 더 열심히 쓰고자 공들였다. 그런 글들의 저조한 반응은 마음을 방황하게 했다.
생각해보면 초, 중, 고, 대학시절, 영상디자인을 할 때도 내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주어졌고 결과가 그려졌다. 근데 글쓰기는 그렇지가 못했다. 성과를 올리는 방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공명이 있어야 하며, 상대의 마음에 닿아야 하고, 필요한 정보나 지혜도 알맞게 줘야 사람들은 반응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썼는데 독자가 크게 반응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해도 그만큼의 결과를 내어놓지 못한다.
난 후자에 속하므로 구독자들에게 호응을 받으면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기뻤다. 난 왜 이토록 구독자의 호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호응이란 내 글을 인정해주는 거다. 즉 인정을 받는 거다. 난 인정에 별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인 줄 알았으나 글을 쓸수록 인정에 목말라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인정 욕구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인에게 '잘했다', '멋지네', '괜찮아'라고 수긍받고 싶은 마음. 바로 그것이 인정 욕구다. 인정 욕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과해지면 오히려 스트레스에 잠식되거나 번아웃에 빠져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게 만든다.
-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오타 하지메> 중에서
나는 어느새 인정의 굴레에 빠져있었다. 유일하게 나 자신으로 인정받는 글쓰기에 그만큼 의지했으니 계속 집착하다 빠지게 된 것이리라.
이 굴레의 시작은 놀랍게도 초심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위로 받았음 좋겠다는 소망. 그건 한 사람에게나마 내 글이 가치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말이기도 했던 거다. 한 사람에게라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질됐다. 글을 써도 비구독자들의 라이킷이 되려 많을 때면 무반응인 구독자들에게 눈이 갔다. 나는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이 감정들과 마주할 때마다 나도 떨쳐내려 노력했다. 신경 쓰지 말자고 수없이 되뇔수록 오히려 의식은 거기에 집중됐다.
오타 하지메의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는 ‘불안을 제거하려면 할수록 마치 개미지옥처럼 불안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럴 때 불안을 제거해주려는 주위의 노력은 오히려 본인을 궁지로 몬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이 가득 찰 때면 난 예민해졌다. 그럴수록 타 작가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했다. 특히 같은 선상에 있던 작가가 빠르게 치고 나갈 때면 감정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인정 욕구가 마음처럼 채워지지 않을 때는 선망과 질투가 왜곡된 형태로 드러난다.'[1] 친한 동기가 먼저 승진한다거나, 친구가 알아주는 회사로 이직했다거나 하면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나는 이유다. 질투는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강하게 반응한다. 이것의 기저엔 내 존재가 그들보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지점에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같은 선상에 있던 작가들이 저 앞으로 내달릴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떨쳐내려 몸부림칠수록 통제가 안됐다. 인정 욕구의 불충족은 나를 깎아내렸고 타인을 시샘하게 했으며 그런 나를 보며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뭐 자기 혼자 만족하면 될걸 왜 저러나 싶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려 해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이나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다.'[2] 결국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타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내 글을 내가 인정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정 강박에 빠져있다는 걸 깨달을수록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공부 중이다. 공부할수록 한 가지가 또렷해진다.
얼마나 기대를 받는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다만 내가 그 기대를 얼마나 의식하는지가 문제라는 걸. 나는 의식을 많이 하는 편이므로 그에 따른 강박이 일어난 것이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위에서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욱 신경 쓰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담 신경 쓰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은 채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다행히도 그 답을 김혜령 작가의 책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에서 찾았다. 의식하지 않는다는 건. 즉 의식하지 말아야지라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의식한다기보단 그냥 지켜보며 스스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마음 = 나’로 생각하지 말기. 즉 마음(감정)에 거리두기다. 뭐가 이렇게 어렵나 싶었다. 이에 대해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에서는 흥미로운 방법을 친절하게 제시한다.
첫 번째.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김혜령 작가는 마음을 ‘감자’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 날 때면 ‘감자가 화가 치밀어 올랐구나’로 반응하여 화가 난 것은 내가 아니라 감자임을 인지하고 거리를 둔다.
두 번째. 여러 감정은 지나가는 각각의 버스로 바라보는 거다.
인정 욕구로 괴로워한다면 괴롭다는 번호판을 붙인 버스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일 뿐. 그 버스에 절대 올라타지 말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다.
이 방법의 신뢰성은 아래의 글이 뒷받침해준다.
감정은 마음에 일어난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하늘이라는 공간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햇볕이 나왔다 들어가고, 밤에는 별이 반짝였다 이내 사라진다. 하늘 안에 구름, 해, 별, 비바람 등이 나타나지만,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리고, 여러 현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해서 하늘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나타났을 때 기분이 나빠지고, 몸이 경직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결국 이것은 스쳐 지나가는 현상 중 하나이다.
감정을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화가 난다'는 감정의 표현이 아닌, '내가 화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http://m.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2146
현상이라는 어감보단 조금 더 쉽게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타자화한다면 지나가는 구름을 보듯 한결 평온하게 감정을 대할 수 있으리라. 비록 처음엔 어려울 것이다. 다행인 건 이 두 방법을 연습할수록 뇌는 이것에 길들여진다는 것. ‘짐승을 조련하듯 습관을 만들어 뇌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그걸 단련시키다 보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뇌는 그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3]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몸에 새기고 또 새겨나가야 할 것이다.
문득 정상에 있음에도 인생의 끈을 놓아버린 수많은 공인들이 떠올랐다. 이해하기 어렵던 그들에 대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떤 감정들이 오갔을지... 내가 느끼는 불안, 두려움의 수십 배는 될 것이다. 인정 욕구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고요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그런 마음 수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수차례 깨닫는다.
나는 노력할 것이다. 방법을 알아냈으니 몸에 익히고 또 익혀야지. 고요한 마음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할 일만 남았다.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위해.
- [1] [2]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오타 하지메> 중에서
- [3]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김혜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