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영상 디자이너에서 간호조무사로 전업한 시기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확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다.
간호조무사의 일은 더없이 좋았고 할수록 내게 맞았다. 단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영상이란 하나의 기둥을 보며 달려왔던 터라 나침반이 되어줄 기둥이 사라진 마음은 도통 감당이 안됐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지?'
하루하루 묻고 또 물을수록 마음은 허하고 괴로워질 뿐이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았다. 꿈이 없어 마음이 너무 허하다는 말에 신랑은 빚을 갚아 나가는 걸 꿈으로 설정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도 해보자 싶었다. 초반엔 빚을 갚아가는 과정이 재밌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시큰둥해졌다. 그다음으로는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꿈도 꾸었으나 뭔가 많이 부족했다. 나 자신을 위한 꿈은 아니었으니까.
생각은 많아졌고 고민도 깊어졌다. 마음은 항상 충족되지 못한 채 무언갈 애타게 갈망했다. 그것도 장장 7년 동안이나.
대체 어떤 꿈을 안고 살아야 예전처럼 벅찬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찾고 또 찾았다. 그저 하루하루 일상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았지만, 심장이 쿵쾅거리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벅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7년 동안 찾고 또 찾아 헤맸을 테지.
시간은 태연히 흘러갔다. 찾을 수 없을 거란 불안은 점점 거대해졌다.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충돌했다. 그럴 때면 운동으로 드라마로 쇼핑으로 도피했다. 물론 책도 수없이 보다 덮다를 반복했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을 바꿨다는 기사, 한 권의 책이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인터뷰들을 접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여기게 됐나 보다. 마음의 방황을 매듭 지어줄 마지막 희망은 책일 거라고. 그러나 허한 마음을 동여매 줄 책을 그땐 만날 수 없었다. 책으로 인생을 바꿨다는 글들은 그저 뜬구름 같았다. 그럼에도 나를 구원해줄 마지막 희망일거라는 기대를 버릴 순 없었다.
막무가내로 책을 살 순 없었다. 도서관에서 대여를 하자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그땐 상호대차를 몰랐다.) 결국 교보 문고 E-book 어플을 깔고선 Sam 이용권을 결제했다. 몇 달이나 읽지 않았던 적도 있었으나 구독을 해지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라도 붙잡고 기대지 않으면 삶을 버틸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동아줄(교보문고 E-book)을 애써 붙잡았다.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할수록 뭐에 홀린 듯 전자책을 수차례 다운로드하고 지웠다.
병적이라 여길 정도로 2년 정도 책을 지우고 깔고를 반복하다 하나의 책이 성큼 다가왔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책이 나를 구원하던 순간이다.
<일일일책>은 방향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엄마가 독서를 통해 마음도 행동도 바뀌며 주도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변화되는 과정과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잠든 후 이른 새벽까지 내내 읽었다. 읽을수록 마음이 쿵쾅거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벅참이었다. 전인옥 작가의 모습은 내게 어떠한 희망을 줬다. 무의미하던 삶에서 책을 통해 주도적으로 살고자 마음 먹는 그녀의 모습에 믿음을 얻었다. 한없이 벌어진 마음의 틈을 메꿔갈 수 있는 건 역시 책일 거라고. 힘겹게 마지막 동아줄을 붙잡던 두 손에 힘이 들어갔고, 한껏 잡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후로 내가 원하는 답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저 한 권 한 권 치열하게 읽어나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 수업>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에 대한 생각전환과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앞에 있다는 깨달음을,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와 게리 체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더 나은 부부관계를 위한 지혜와 지침을 알려주었다.
노경선 작가의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과 트레이시 커크로의 <최강의 육아>는 나의 육아를 돌아보며 깨닫고 다짐하게 했으며, 베레카 권작가의 <일상변주곡>과 김슬기 작가의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는 엄마란 자리에 서며 심하게 앓던 자아의 몸살을 이 책들을 먹고 이겨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은대 작가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읽은 후엔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책을 접할수록 책은 좋은 스승이라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과 감정을 책은 온몸을 다해 알려줬다. 내 안에 없던 길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만들어졌다. 어느덧 7년간의 마음의 방황에 대한 글을 적어나가기에 이른다. 방황했던 마음이 매듭 지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난 7년간의 아픔을 마주하며 글을 썼고 책을 출간했다. 책 하나에 아픔이 정리되자 후련하고 마음이 정갈해졌다. 감격적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상처가 치유됨을 경험했으니까. 비로소 나는 꿈을 찾았다. 글 쓰며 사는 삶을.
이후로 나를 위해 썼던 글에 공감받고 위로받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들의 피드백은 글쓰기를 더없이 즐겁게 했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은 달리 움직였다. 아무 반응이 없는 글을 볼 때면 뭐하나 싶어 졌던 거다. 점점 혼자 조급해했고, 불안해했고, 울적해했다.
1년 정도는 그 감정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알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괴로움의 골이 깊어질수록 글을 쓸때마다 숨어있는 그림자를 마주해야 한다는 걸 인식했다.
그래야 나는 계속 써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니 해야만 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무언지 골똘히 생각해봤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은 다른 작가와의 비교였다. 부러웠고 질투했다. 질투가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왜 질투하는 거지?'
문득 수전 케인, 『콰이어트』의 문장이 떠올랐다. 먼지가 쌓인 책을 털어내자 희뿌연 먼지들이 흩날렸다. 책을 들춰서 그 부분을 찾아냈다.
"질투는 추한 감정이지만, 진실을 알게 해 준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갈망하는 것이 있는 사람을 시샘한다"
나를 힘들게 했던 지점을 질투의 진실은 알려주리라.
이를 통해 타인들의 인정 속에서 본인의 가치를 더욱 펼쳐 보이는 타작가들의 모습을 그토록 부러웠했다는걸 깨달았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써야만 했다. 감정을 정리하고 보내주기 위해서. 그래서 <A가 부럽다 밉다 샘난다>를 쓰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하나의 실마리를 또 찾았다.
인정을 갈망하는 내 마음을. 그렇담 '대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어떤 마음인 건지?' '그게 왜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거지?'
난 알아내야 했다. 그러다 찾아낸 책이 오타 하지메의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김혜령 작가의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다.
책에선 내가 느끼던 마음들이 여러 논리와 사례로 뒷받침 되고 있었다. 점점 마음의 정체가 또렷해지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난 또 써야 했다. 그리고 <꿈을 갖자 알게 되었다. 난 인정에 목말라하는 사람이란 걸>을 썼다.
마음을 알아갈수록 정돈되었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수수께끼를 풀듯 재밌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복잡한 문제든 간단한 문제든. 모든 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마주해야 잔잔히 흘러간다는 걸 수차례 깨닫는다.
내가 지금까지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보이지도 않는 바닥으로 더는 떨어지지 않는 것도 모두 책과 글쓰기 덕분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나가야 한다. 꿈이 멈추지 않기 위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나를 견디기 위해 더 많이 읽고 더 써야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