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는 말했다."조급해하지 마요. 천천히 가요"

6시엔 나가야 한다. 6시 10분인데 신랑은 귀가 전이다. 마음이 바빠진다. 신랑에게 전화를 했더니 집 앞이란다. 좀 참을걸 그랬나. 삐삐삐빅! 현관문에 불이 들어왔다. “세윤이는 저녁도 먹고 약도 먹었어! 세연이만 저녁이랑 약 먹이면 돼”라고 말하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문을 나선다. 6층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내려가더니 4층에서 멈췄다. 지렁이처럼 굼뜨다. 왜 이렇게 안 와. 나는 시계를 연신 본다.


부천역 지하철 플랫폼에 도착한 시간은 6시 20분. 세 정거장만 가면 되니까 늦진 않을 거 같다. 그제야 안심이 된다. 퇴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공간의 활기가 어색하다. 나를 위해 무언갈 들으러 가는 자리가 얼마만이더라. 6년 만이던가. 그 사이 지하철이 도착했다. 사람들은 썰물처럼 지하철에서 빠져나왔다. 잠시 기다렸다가 지하철을 탔다. 당연히 앉을자리는 없었고, 나는 서 있는 사람들과 섞였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았다. 몸으로 전해오는 덜컹거림이 기분 좋다. 덜커덩 덜커덩.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너무 설레어했나. 배가 살살 아프다.


포털 검색창에 ‘상동 도서관’을 쳐서 위치를 재확인했다. 부개역 2번 출구로 나가서 621m를 걸으면 된다는 거지. 처음 가는 장소라 헤매지 않고 제시간에 도착할지 걱정이 앞선다. 6시 30분 지하철은 부개역에 멈췄다. 생각보다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급하던 마음은 가라앉았다.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점점 으슥해졌다. 사람들도 안 보인다. 가로등과 도로를 달리는 몇 대의 차 헤드라이터만 불빛을 비춘다. 이 길이 맞는데. 잘 가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도서관 건물이 보였다. 휴... 다행이다. 긴장이 풀리자 아프던 배에서 신호가 왔다.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표시판부터 찾았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강의실 입구에 도착했다. 가운데 통로를 축으로 양 쪽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역시나 뒷 좌석은 많이 찼는데 앞 좌석은 비어있었다. 아싸! 맨 앞줄엔 아무도 없네?! 왼쪽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은유 작가님에게 물어볼 질문을 정리하기로 했다.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려는데 없다. 이상하네. 분명 챙겼는데... 가방 안에는 <글쓰기의 최전선> <싸울수록 투명해진다>와 볼펜만 있다. 아... 급하게 나오느라 다이어리는 책상에 두고 왔구나. 한숨이 나왔다. 할 수 없이 <글쓰기의 최전선> 맨 뒷장 속표지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6시 55분이 됐고 은유 작가님이 강의실 입구에서 강당 앞쪽으로 내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내 앞에 있다니. 그녀의 빨간색 셔링 블라우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로는 H라인 체크 롱 스커트에 검은색 스타킹과 검정 앵글 부츠를 신었다. 머리는 날개뼈까지 내려왔으며 살짝 컬이 들어가 있었다. 나도 파마했는데 베시시 거리며 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쓴 동그란 안경은 귀여웠지만 빨간 셔링 블라우스와 체크무늬 스커트 때문일까. 어딘지 모르게 대학 교수 같은 카리스마가 풍겼다.



어느새 7시가 되었고 강연은 시작됐다. PPT가 빔프로젝터를 통해 화면에 비쳤다. 필기하려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에서야 작가님의 본명을 알았다. 그녀는 82년생 김지영처럼 자기도 김지영이지만 82년생은 아니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어서 본인의 저서가 정리된 화면을 보여주었다. 각각 집필 동기와 목적, 상황들을 간소하게 설명했다. 나는 메모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문자답이다’ ‘범위를 좁게, 상황은 작게 잡고 써라. 행위를 써라’ ‘추상명사가 들어가면 설명하는 글이 되고, 고유명사가 들어가면 보여주는 글이 된다’ ‘글은 경험과 상황의 재구성이다’ ‘좋은 글이란 독자에게 자기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다’ 등등 적다 보니 속표지 한쪽이 가득 찼다.



그중에서 ‘글쓰기란 실패 체험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게 금방 될 리 없다’ ‘다시 글을 쓰는 용기도 중요하다’ ‘내 글이 누구에게 도움을 줄지 생각하라’ 에는 네모상자를 치고 별표를 쳤다. 슬럼프인 내게 특히나 다가온 말이었다. 다시 한번 문구를 봤다. 글쓰기란 실패 체험이라는데 난 실패할수록 겁을 먹고 의기소침해졌다. 10월 29일 브런치에 글을 적고, 한 달간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작가님은 좋은 글을 쓰는 게 욕망이라 그랬다. 여기서 욕망은 꿈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글쓰기에 대한 내 욕망은 뭘까. 혀로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인정받고 사랑받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 더 잘 쓰고 싶어서 나름대로 없는 시간 쪼개서 글을 썼고, 글쓰기 책을 보며 공부했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독자의 반응은 그에 미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걸 고쳐야 할지 보이지 않아 더 괴로웠다.

‘글은 실패 체험이며 글을 잘 쓴다는 게 금방 될 리 없다 ‘는 메모를 다시 본다. 그래. 어디 금방 되겠어. 이겨내자. 마음을 비우자. 멈추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강연은 막바지가 되었다. 질문시간이 주어지자마자 나는 손을 들었다. 나를 포함해 두 분이 더 들었다. 내가 첫 주자가 되어 질문을 했다. 부끄러운데 기분은 좋다. “쓰기의 말들에서 단문을 쓰되 행간을 살리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치한 질문은 아닌지 걱정되었지만 작가님은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답변을 해주었다. “정보를 적당히 넣으세요. 과하지도 적지도 않게요. 많으면 독자들이 지루해하고, 적으면 글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요. 뺄 것도 좀 빼고, 적당히 적어줘야 독자도 여운을 받아요. 그게 행간을 살리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작가님에게 머쓱 웃으며 목례를 했다. 헉. 목례가 뭐람.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말할걸 후회했다.



8시 반. 강연이 끝났다. <글쓰기의 최전선>과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를 만지작거리며 작가님의 동태를 살폈다. 언제 사인을 받아야 하는 거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진행요원이 사인받을 분은 앞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여성 두 분이 강당에 동그란 테이블과 간이 의자를 놓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렸고 긴 줄이 생겼다. 다행히 나는 두 번째다. 작가님에게 책을 건네며 무릎을 꿇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저는 저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다가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쓴 지 1년이 돼가는데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마음이 괴롭고 아파요. 그래서 슬럼프가 왔어요. 사인과 함께 조언 부탁드려요.” 작가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슬럼프는 당연해요. 안 올 수가 없어요. 조급해하지 말아요. 끝이 있는 싸움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봐야 해요. 자기 속도대로 나가면 돼요. 천천히 가요 천천히.”라고 말하며 사인과 함께 니체의 명언을 적어주셨다. 아쉬워서 작가님과 악수를 했다. 핸드폰이 가방에 있어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쉬웠다.



강당에서 내려와 핸드폰을 보니 신랑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나 애들이랑 데리러 갈게.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 육아에 치이고, 시간에 치이고, 아픔에 치이더라도 잘 이겨내자며 작가님 사인 아래 적힌 메모를 다시 읽는다. ‘박현주 님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니체)’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강연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