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육5주차) 나는 없다. 아무데도 없다.

오늘도 다를 거 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전주와 달라진 걸 굳이 꼽으라면 자포자기다.

이젠 모르겠다. 다 귀찮고, 다 지겹다.

다른 엄마들도 이럴까? 아님 내가 너무 구닥다리인 걸까?


나도 보기 좋게 잘 해내고 싶고, 이 시간을 빌어 아이들과 잘 보내고도 싶다. 근데 가정 보육 5주 차가 되니, 오늘 같은 하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게 숨이 막힌다. 그럴수록 화가 난다. 그럴수록 아이들에게 짜증을 낸다. 아이들은 그럴수록 치근덕거린다.


첫째는 눈치 보느라 엄마엄마, 둘째는 내 품에 안기려고 엄마엄마.


하루에 엄마라는 소리를 몇백 번이나(아니. 몇 천번인지도 모른다.) 듣고 있자면 지겹다 못해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나 이러다 폭발하면 어쩌지. 매 순간이 위태롭다.

그 와중에도 할 것은 해야 한다. 첫째의 학습지. 내년이면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내년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이제 고작 3일도 안 남았으니까. 아이가 학교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위해선 한글을 떼야하고, 더하기 뺄셈까지도 익혀야 한다. 엄마는 하루하루 주어진 학습지 할당량을 이끌어줘야 한다. 왜냐고? 안 하면 밀리니까. 밀리면 아이가 더 하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니까.

점심시간이 지난 후 첫째에게 말한다.


"세연아! 우리 약속했지? 태블릿 한 시간 봤당! 이젠 구몬 할 시간이야!"


세연이는 아직도 영혼 탈출이다. 내 말은 들리지도 않나 보다.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하지만 아이 귓등에 미치지도 않는다. 세~네 번 말하다 보면 목소리는 커지고야 만다. "최세연!!!!" 첫째는 놀라 눈을 끔벅끔벅거리고 둘째는 놀라서 내게 달려온다. 한 손으로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손을 뻗는다. 안아달라는 소리다. 첫째의 학습지를 책상에 내어주고 둘째를 안는다. 훼방꾼이 된 둘째. 견지해야 한다. 역시나 내 손을 잡고 놀아달라고 한다. 반응이 없자 둘째는 징징거린다. 옆에서 첫째도 "엄마... 모르겠어.... 엄마... 엄마..."


또 엄마 부름의 시작이다. 사방팔방에서 내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드는 것만 같다.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지. 어떻게 참으란 소리지. 머리에서 경보등이 울린다. 위기의 순간이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숨이 멎을 거 같고, 머리에 벼락을 맞아 광년이가 될 것만 같다. 괴성을 질러버릴까. 잡히는 대로 다 때려 부숴버릴까. 그럼에도 참아야 한다. 육아서와 오은영 박사의 영상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날아다닌다. 그중에서도 한 문장이 머리 정중앙에 떠다닌다.


'부모의 욱은 아이의 감정 발달을 방해하고, 부모 자녀의 관계를 망치며,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도 떨어뜨린다.'


분노를 참아야 한다는 걸 안다. 어떻게 몇 날 며칠 숨 막히는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란 거지?! 내가 빵 하고 터질 거 같은데?! 분하고 서럽지만 나는 안다. 화를 내면 더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난다는 걸. 화를 낸 후 나는 더 괴로울 거란 걸. 이를 악문다. 상황을 하나하나 처리한다. 첫째에게 말한다.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읽으면 빈칸에 어떤 숫자가 들어갈지 알 수 있잖아. 51, 52, 53, 54, 55, 55 다음에 뭐야?"


둘째에게도 말한다.

"최세윤! 지금 누나 공부 중이야! 누나 공부 끝나면 놀아줄게."



첫째는 눈치를 보며 56을 학습지에 적는다. 아이들은 안다.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미간엔 주름이 잡혔으니 엄마가 화나 있단 걸. 여기서 더 건들면 엄마는 소리를 지를 거란 걸.

나 역시 안다.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걸. 그럼에도 외면한다. 감정조절을 해야 한다고 경보등은 끊임없이 울린다. 여기서 어떻게 더 하란 말이냐. 이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의 감정을 다소곳하게 읽어주란 말일까. 화를 내진 않았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다 여긴다. 감정이 치닫는 순간을 잘 이겨냈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 정도면 잘했어.'


극한의 화를 참다 보니 진이 빠진다. 오늘도 얼마나 참아야 할까. 마음이 너덜너덜하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가엾다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인다. 첫째는 학습지를 끝내고 다시 태블릿을 꺼냈고, 둘째는 내 손에 장난감을 쥐어준다. 오늘도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와 놀다가 투닥거리다가 하면서 하루는 끝나겠지. 대체 언제까지 전쟁과 같은 하루는 이어질까.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걸까. 그냥 확! 어린이집에 보내버릴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휘젓는다.

난 분명히 여기 있는데, 여기 없다. 아무 데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