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육 3주 차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하루를 버티기 위한 나만의 의식을 거행한다. 아이들의 동태를 살피며 손은 바삐 움직인다.
싱크대 상단의 수납장을 열어 원두를 꺼냈다. 에스프레소 블랜드와 모카시다모 원두가루를 반씩 떠서 포터필터에 담아 탬퍼로 꾹꾹 눌렀다. 포터필터를 커피머신에 끼곤 전원을 켰다. 커피머신이 예열되는 동안 비엔나커피에 사용할 생크림을 만들어야 한다. 프렌치프레스(비엔나커피의 생크림 만드는 기구)를 꺼내고, 거기다 설탕을 3티스푼 넣고, 서울우유 생크림을 꺼내 프렌치프레스의 4분의 1을 채웠다. 티스푼으로 휘리릭 섞다 보면 커피머신 준비 표시등엔 녹색불이 켜진다. 예열이 다 되었단 소리다. 커피 추출 버튼을 누른다.
지~~~~~이이이이이잉거리며 추출은 시작된다.
둘째가 커피 추출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내쪽을 바라봤다. 동시에 나는 고개를 휙 돌려 못 본 체 했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주문을 읊조렸다.
서둘러 프렌치프레스의 뚜껑 손잡이를 위아래로 펌핑했다. 슬며시 어깨너머로 둘째를 봤더니 아기 상어 사운드북을 꺼내 들었다. 휴... 어서 마무리해야지. 그 사이 집안엔 진한 커피 향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에스프레소가 컵의 반을 채울 때쯤 커피 추출 버튼을 껐다. 생크림도 요거트 정도로 되직하니 잘 만들어졌다. 에스프레소 위에 생크림을 조심스레 부었다. 둘째가 어느새 내 옆에 왔다. 서둘러야 한다. 역시나 둘째가 나를 부른다. 올 것이 왔다. 애써 못 들은 척 초코 가루를 생크림 위에 뿌려 대미를 장식했다. 완성이다. 한입 마시려는데 아이가 내 손을 잡아끈다. 극한 현장으로 질질 끌려가면서도 악착같이 한입 마신 후 식탁에 내려놨다. 꿀꺽. 생크림의 달짝지근함과 아메리카노의 깊은 쓴맛이 한대 어우러진 비엔나커피는 역시 위안을 준다.
안방에서 두 아이와 놀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지났다. 식은 비엔나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추욱 처졌다. 우울이 급물살로 밀려왔다. 더 이상 내가 만든 비엔나커피론 위로되지 않았다. 아침 10시도 안됐는데 몸뚱어리는 땅을 향해 푸욱 꺼졌다. 하루를 어찌 버틴담. 나 몰라를 외치며 방문 닫고 들어가 드러눕고 싶었다. 근데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겐 돌봐야 할 두 아이가 있다. 그 녀석들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추종자다. 내가 드러눕는다면 추종자들은 순식간에 몰려와 옷을 잡아끌며 목청을 높일 거다.
'엄마~일어나~~ 일어나~~~'
놀아주진 못할망정 기저귀는 갈아줘야 하고 밥은 차려줘야 하므로 기운내기로 한다. 뭔가 한 것도 없이 앵꼬가 난 몸은 아우성이다.
"집에서 만든 5% 부족한 비엔나커피 말고!! 제대로 된 비엔나커피를 달라! 달라!"
뭔가에 홀린 듯 배달의 민족을 켜서 비엔나커피가 배달되는지 검색했다. 신문물에 익숙지 않은 난 심봤다를 외쳤다. 있다! 있어! 비엔나커피도 배달된다니!!!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최소 주문 금액을 넘어야 배달된다는 것. 대체로 커피숍들은 최소 주문금액이 만 이천 원을 넘었다. 비엔나커피 한잔이 필요할 뿐인데, 그거 하나 마시자고 그 이상으로 돈을 쓰는 게 내키지 않았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아래로 내리던 그때! 내 눈은 땡그래 졌다. 최소 주문금액이 5,000원인 곳을 찾은 것이다.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벌떡 일어나 기쁨의 댄스를 춘담.
리뷰까지 착하니 더 검색할 것도 없이 이곳으로 정했다. 나의 구세주 커피숍 보아(Voa)는 하물며 '비엔나커피'가 대표 메뉴다. 주문에 실패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섰다. 따뜻한 비엔나커피 한잔의 가격은 5,800원. 성에 차지 않아 사이즈 업했다.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먹일 커피콩빵도 한통 추가했다. 배달팁까지 다하니 13,150원. 방금 전에 커피 한잔 주문하려고 만 이천 원 쓰는 게 내키지 않다고 말한 사람 어딨어?!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려 꾸역꾸역 선택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메뉴를 고르며 자연스레 가격이 넘은 상황은 이상하게 수긍됐다. 이 논리는 대체 뭐람. 어쨌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카톡! 카톡! 메시지가 울렸다.
'고객님의 주문이 약 48분 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48분이라....'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해?!'
4km나 떨어진 커피숍에서 주문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치만 난 하루를 버틸 동력이 필요했으므로 제대로 된 비엔나커피가 절실했다. 비엔나커피 한잔 마시자고 아이 둘을 데리고 코로나로 시끌한 바깥세상을 거닐 순 없는 노릇 아닌가.(당연히 두 아이와 나가는 것도 험난하다)
'뭐 어때! 매일 이렇게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인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며 나를 채근했다.
'띵~~~~ 동'
주문한 지 20분도 안돼서 초인종이 울렸다.
설렘은 봉지에 쌓여 배달됐다. 봉지 안을 들여다봤다. 컵 캐리어 한쪽엔 커피콩빵이 투명 컵에 담겨 있었고, 한쪽엔 비엔나커피가 위생비닐에 담겨 있었다.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넘칠 수 있으니 그걸 대비한 사장님의 센스인가 보다 생각했다. 봉지를 열어 컵을 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컵엔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사장님의 메모였다.
'아인슈페너(비엔나커피) Hot 은 배달 가는 중에 위에 크림이 녹을 수 있어요. ㅠ.ㅠ 기사님 오시고 최대한 직전에 많이 올려드렸으니까 안 녹고 맛있게 드시길♡!!'
이게 뭐라고 눈물이 핑 돈담?!
이건 마치 내가 힘들게 가정보육하는 걸 알고 있으니 힘내라는 응원 같았다.
가정보육으로 체력과 정신이 뚝뚝 떨어지는 게 무섭도록 실감 나는 요즘, 타인이 건넨 작은 배려가 이토록 뜨겁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다니.
커피숍 사장님은 알까?
사장님의 작은 배려로 몸도 마음도 곯아 터지기 일보직전인 한 엄마는 하루를 버틸 힘을 얻은 것은 물론, 크나큰 위로까지 듬뿍 받았다는 걸.
이쁜 마음이 담긴 비엔나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 마실수록 체력 게이지는 10씩 쭉쭉 채워졌다.
어쩌면 위로는
정말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에서보다는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 <희한한 위로, 강세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