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입학식 열 수 있을까?

어제는 첫째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었다. 세연이와 신랑은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곤 현관문을 나섰다. 나와 둘째는 집에 남았다. 코로나 3차 대유행이 휘몰아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둘째까지 대동해서 온 가족이 다녀왔을 것이다. 근데 지금은 코로나 거리두기 2.5단계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조심스럽다. 다행히도 시국에 맞춰 남편은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초등학교에 다녀와야 했을 테니까.



아침에 한차례 눈이 내렸다. 이후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주룩주룩 내릴법하다. 우산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비라도 오면 어쩌지 하며 둘을 걱정했다. 세윤이와 놀고 있는데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삐삐 삐삐 삑!

"뭐야?! 20분도 안됐는데 벌써 온 거야?"



두터운 패딩을 벗으며 신랑은 말했다.

"초등학교가 내부 출입을 완전히 막아놨더라고. 학교 입구 옆에 임시로 마련한 장소에서 서류만 받고 간단한 안내만 받고 왔어."



초등학교에 간 김에 얼핏이나마 내부를 구경하길 바랐다. 하긴 지금은 코로나 거리두기 2.5단계다. 거기까지 생각을 또 못했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닌 현실을 아직도 적응 중이다.

신랑은 받아온 입학 안내 서류에 대해 말해주곤 다시 일할 준비를 했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다시 열었다.


"아! 근데! 서류 준 분이 그러더라. 입학식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근데 일정은 잡혀있으니 참고하라고. 나도 입학식은 물 건너 간 거 같아. 이대로라면 입학식은 가당치도 않지"


'입학식: 3월 2일 10시' 란 문구에 눈이 갔다. 문득 하나의 기억이 다가왔다.

새 가방을 메고 엄마 손 잡고 국민학교(우리 시절엔 국민학교였다) 입학식에 갔던 어린 시절의 나. 어린 내겐 운동장 끝이 참 멀게 느껴졌다. '와.... 진짜 넓다.' 그때의 난 감탄하기 바빴다. 넓디넓은 운동장에 반별로 서서 교장선생님 말을 듣고는 교실에 들어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엄마 손 꼭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내가 속한 반으로 다가갈 때의 설렘이란!


내 아이도 경험할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누구나 그래 왔고, 변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근데 코로나가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작년 이맘때쯤 초등학교 입학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다. 입학식이 다가올수록 할머니, 고모, 부모님 할 것 없이 책가방을 사줬고, 선물을 줬다. 그 아이는 알았다. 선물을 받는 걸 보니 입학식은 축하받는 날이란 걸. 삐까뻔쩍한 분홍색 책가방을 매고 그 아이는 집안 곳곳을 활보했다. 그 아이는 시댁 조카다. 입학식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중국에서 우한 폐렴에 대한 뉴스가 전해졌고 며칠도 안돼 국내에도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10명 안팎이던 확진자는 2월 대구 신천지 사태로 지역 곳곳으로 무섭게 퍼져나갔다.

시댁 조카는 코앞으로 다가왔던 유치원 졸업식은 물론 초등학교 입학식도 취소됐다. 인생에 단 한번뿐인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 입학식은 없었지만 초등학교 생활은 시작됐다. 아이는 엄마와 집에서 온라인 교육에 적응하기 바빴다. 시댁 조카는 계속 물었다.


"엄마! 언제 학교 갈 수 있어?"


언제일지모를 그날을 기다리며 아이는 새 신을 신고, 새 가방을 메고 집안 곳곳을 누볐다. 잘 때도 머리맡에 책가방을 두고 잤다.



어느 날 마스크 1세대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서울, 경기, 부산 세 지역 아이들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불어닥친 초등학교의 위기를 다른 지역과 함께 둘러보니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기사에 실린 8명의 아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입학식도 없이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거리두기가 하향됐을 땐 주 1~2회씩 학교를 갔다. 그러나 학교를 간다 해도 친구를 다 만날 순 없었다. 2분의 1 또는 3분의 1씩 나눠 등교했으니까. 가서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야 했고, 하물며 친구들과 띄엄띄엄 거리를 둔 채 앉아야 했다.

아이들은 말했다.


"일곱 번이나 학교에 갈 수 있었어요!"

"마스크 때문에 친구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요!"

"교실이랑 화장실만 가서 아쉬워요. 다른 곳도 구경해보고 싶어요."


시댁 조카와 기사 속 아이들이 겪었던 일을 우리 아이도 겪는다. 설마... 설마 하며 아니길 바라던 일이 실제로 다가오고 말았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어놀 수 없는 생활을! 친구를 사귀기에 제한 많은 환경을! 입학식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는 현실을! 부모로선 안타깝고 속상하다.



마크 월포트 박사


과연 코로나 시대의 결말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까.

'영국 면역 학계 권위자'인 마크 월포트 박사는 코로나는 종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인류와 공존하게 될 거라고. 우리로선 팬더믹(세계적 규모로 전염병이 동시에 대유행하는 상태)을 억제하기 위해 독감 백신처럼 정기적으로 접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그 외로 여러 전문가들은 코로나 시대가 지나간대도 또 다른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세상을 여러 차례 덮칠 거라고 예측했다.



사스나 메르스가 한창 세계를 시끄럽게 하던 시기에도 나는 무덤덤했다. 일상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삽시간에 망가트리는 걸 겪으며 바이러스의 무서움을 인지했다.

미래엔 얼마나 지긋지긋한 바이러스들이 등장할까. 우리 생활은 얼마나 더 망가지고 제한될까.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생활해나갈까.



슬프게도 처음엔 이 상황 자체가 낯설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아이들 역시 마스크 쓰는 걸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당연하다 여긴다. 어찌 보면 마스크 2세대 부모라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1세대의 혼란을 피하지 않았던가. 혼란스러운 과정에서도 코로나 시대의 교육은 기반을 잡고 구축되고 있다. 나와 아이는 또 다른 코로나 시대를 적응해나가야 할 차례다.

분명 그 시간 안엔 시시각각 불편함과 속상함이 공존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걸어 들어가야 한다.

바이러스 시대의 전초전에 불과할지도 모를 지금을 받아들이며 현명하게 상황을 헤쳐갈 수 있길 그저 바랄 뿐이다. 힘들다. 속상하다는 말도 이젠 지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