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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잔혹한 교육과 학대가 어디 있을까

『완벽한 아이』모드 쥘리앵/복복서가

<독자분들께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저번에 이어 오늘도 편지를 쓰게 됐네요.

전 다시 감정을 추스르며 가정보육 5주차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2020년은 모두가 힘들고 우울했습니다. 2020년 2월에 시작한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중이죠. 

더군다나 코로나 3차 대유행중이라 심란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마도 올해까진 코로나로 이래저래 우울한 날들은 이어질거 같네요.


우울하지만 시간은 가고 새해는 왔습니다.

올해는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정보육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이 방해하지 않는 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차차 다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려 하고요.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모두 지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모쪼록 새해엔 우리 무탈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그럼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













| 오늘 소개할 책은



오늘 소개할 책은 모드 쥘리앵의『완벽한 아이』입니다. 


전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걱정이 앞섰어요.

두 아이 엄마가 되니 현실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아동 살해, 아동 학대 같은 사건이 TV에 나오면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TV에서 끔찍한 사건들이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렸어요.

종종 외면하지 않고 사건을 볼 때도 있긴 해요. 어쩜 부모란 사람이 아이를 학대하는 사건도 모자라 캐리어에 아이를 가두어 죽게 만드나요. 부모 자격도 없는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얼마나 가여운지 몰라요. 그 아이의 인생이 너무 안돼서 슬픕니다.


『완벽한 아이』의 저자 '모드 쥘리앵' 역시 잔혹하고 끔찍한 환경 속에서 자랍니다. 

사실.... 프롤로그를 읽곤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쩜... 이런 기괴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입이 떡 벌어지더라고요. 더 읽을 자신이 없었어요. 가혹한 사실들을 알고 난 후의 감정들을 내가 감당하고 떨쳐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읽어 나갔어요. 막상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더군요. 어린 '모드 쥘리앵'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어떻게 버텼고,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모드 쥘리앵'을 검색한 것이죠!

이 책은 실화예요. 그래서 그녀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구글에 접속했죠.  한글로 '모드 쥘리앵'이라고 검색하니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영어로 검색했습니다.


'Maude Julien' 엔터! 


수많은 글이 나왔고, 사진도 보였습니다.

특히 제 눈에 들어온 사진은 3살 정도로 보이는 '모드 쥘리앵'이 커다란 아버지 앞에 강아지와 함께 서 있는 사진입니다.




이 어린아이는 알았을까요? 


앞으로 본인에게 닥칠 잔혹하고도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말이죠. 타락한 인간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초인이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괴이한 광기는 딸을  짓밟습니다.







| 읽다 보니 『아몬드』의 곤이가 생각났습니다.


이 책 바로 전에 『아몬드』를 읽었었어요. 그래서 읽는 내내 곤이가 생각나더군요.


'곤이'는 고아로 자라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상처를 받으며 커갑니다. 끝내 세상에 반항하는 아이로 자라죠.

반면, '모드 쥘리앵'은 아버지의 지나친 억압과 통제로 이루어진 잔혹한 교육으로 자신을 경멸하고 혐오하고 증오하고 수치스러워하는 아이로 자랍니다.


두 아이다 부모의 올바른 사랑과 관심이 부재한 아이들인 것이죠.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아몬드』의 '곤이'와『완벽한 아이』의 '모드 쥘리앵'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몬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






"그럼 리뷰 시작해볼게요!"






| 우리 영혼을 노리는 존재들에게서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 것인가?


김영하 작가님이 『완벽한 아이』 추천사에서 던진 질문이다. 작가님은 알려줬다. 단서가 이 책에 있다고.

단서 찾는 걸 등대 삼아 『완벽한 아이』를 읽어나갔다. 그에 대한 답부터 정리하려 한다.

'모드 쥘리앵'이 말도 안 되는 가혹한 교육과 가정 환경 속에서도 끝내 버티며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 음악, 사랑


이 세 가지가 그녀를 버티게 했다.


책은 그녀를 구원했다. 모드는 강하고 매혹적인 주인공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집안에 갇혀 지내지만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험한다. 소설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그녀의 삶은 소설 못지않았다. 강하고 지혜로운 주인공을 통해 깨닫고, 성찰하며, 희망을 쌓아나간다.


음악

음악에선 악절의 대화를 통해 위안을 삼았다. 그녀의 삶엔 대화는 없다. 그저 강요, 명령, 억압만 있을 뿐이다. 소통이란 걸 경험하지 못한 그녀에겐 악절의 대화는 큰 위안거리가 되었다. 오른손이 한 악절을 시작하면 왼손이 응답하고, 오른손이 다시 시작하면 왼손이 따라가다 두 손이 함께 어우러져 연주한다. 피아노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지칠 줄도 모르고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다행스러운 건 아버지와 어머니는 악보를 못 읽기 때문에 모드가 다르게 쳐도 몰랐다는 거다. 그걸 놓치지 않고 모드는 본인의 감정을 연주로 표현해 나간다.


사랑

린다(개)와 아르튀르와 페리소(조랑말들), 오리(피투) 들은 모드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애정을 준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동물들과 눈빛으로 몸짓으로 대화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동물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이다.

모드는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애정을 동물에게 받았다. 부모의 사랑에 비하면 부족할지 모르지만, 유일하게 그녀가 사랑과 애정을 느끼는 매개체다. 그중에서도 모드는 린다를 가장 아꼈다. 오죽했으면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걸 발설했다간 린다를 죽인다고 협박하는 일꾼 레몽에게 7년동안 당한다. 린다를 잃을 순 없으니까. 린다가 죽으면 안되니까. 후에 린다가 죽자 레몽에게 반항한다. '린다를 죽인다'라는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그제야 레몽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린다가 얼마나 소중했으면 그랬을까.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동물에게 받은 어린 모드.... 그만큼 동물들의 존재는 모드에게 소중하고 각별했다.



이 세 가지는 모드에게 조금씩 용기를 끌어모을 수 있게 했고, 무너지지 않게 했다. 그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분투하기 시작한다. 책을 통해 상상의 대화 상대를 만들었고, 비밀 창고를 파서 본인이 쓴 글을 감췄다. 또한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힘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아버지의 가르침에 반항할 수 있게 된다.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아버지가 만든 빈틈없는 체계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자유가 그녀 앞에 다가왔을 때 피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아마 김영하 작가님의 대답은 이게 아니었을까.

책으로든, 음악으로든,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고, 사색하고, 통찰하며 마음을 다스리며 단단하게 만드는 것!

그러다 보면 어떠한 시련이 와도, 영혼을 좀먹는 이들이 나타나도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


수많은 위인들이 책으로, 음악으로, 사랑으로 고비를 넘겼듯. 이건 나를 지키며, 세상을 헤쳐갈 수 있는 팩트 중에 팩트다.






| 모드 쥘리앵의 어린 시절이 가엾고 가엾다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에서나 볼일이다.

34살의 청년 루이 디디에(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면서 부자다. 프리메이슨 비교의 교리를 받아들인 그는 세상이 타락했고 어두운 힘의 먹이가 되어버렸다는 영적 관점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34살 때 기이한 가족계획을 세운다.


타락한 세상에서 자신도 지켜주고, 세상도 구원 할 아이를 만드는 것.


그는 그런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찾아야 했다. 한 광부의 막내딸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금발이었기 때문이다. 금발을 선택한 이유가 책에 언급됐었는데 다시 찾으려니 당췌 찾을 수가 없다. 내 기억으론 금발이 빛의 존재에 가까워서 선택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말이다. 


6살의 금발 여자아이를 선택해서 본인의 아내가 될 때까지 키운다는 발상은 참으로 비상식적이다. 

루이 디디에는 34살, 자닌은 6살. 28살 차이다. 딸뻘이다.

완벽한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미리 선택하여 훌륭한 교육을 받게 한다. 이유는 놀랍다. 아내가 아이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하니까. 집에서 교육을 받는다면, 오염되고 타락한 외부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빠는 아내에게 교육에 필요한 자격증들을 모두 따게 한다. 

루이 디디에의 원대한 계획의 수단으로 자닌이 면모를 갖춘 게 27살 때였나 보다. 자닌을 임신시키고 28살이 되던 해 루이 디디에의 딸을 낳는다. 

삼 년 뒤, 59세의 루이 디디에는 사업을 정리하고 넓은 집을 한 채 구입했고, 1936년. 34살 때 처음 품었던 계획, 즉 자신의 아이를 초인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에 전념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들어가 칩거한다.


이날부터.... 끔찍한 현실은 시작된다.


바깥세상의 '영적 지도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루이 디디에는 말했지만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된다. 비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영적 능력을 믿게 된 루이 디디에는 

딸과 아내를 지배하는 일에 매혹된다. 타락한 세상에 실망하고 친구들에게 배신당했던 그는 외부와 단절한채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거기서 신이다. 아내에게, 딸에게 신적인 존재. 아무도 그에게 저항할 수 없고, 저항해서도 안된다.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루이 디디에라는 신을 모시는 일원으로 보인다.

그들 관계엔 대화라는 것도, 스킨십이란 것도 없다. 그저 명령이 전부다. 

엄마라는 사람 또한 딸을 대하는 태도가 비정상적이다.

화가 나면 발로 팡팡 치는 물건처럼 대한다. 딸을 비난하고 원망한다. 

엄마가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아버지에게 딸 얘기를 하거나, 딸에게 소리 지르며 화낼 때다. 그 외로는 모두 '이 아이'라고 부른다. 


다정하지 않은 가정에서 어린 모드는 아빠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실망을 안기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겼고, 생각을 숨기며 지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교육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학대에 가깝다.

음악 선생이 폭력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딸을 맡기고, 수영은 물에 빠트려 습득하게 하고, 담력 훈련은 한밤중에 암흑인 지하실에 딸을 가두는 것으로 진행된다.


추운 겨울에 난방은 가당치 않고, 거기다 더해 얼음장 같은 찬물로 씻어야 했다. 그것도 아빠 엄마가 씻고 남은 더러운 물로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잔혹한 훈련은 전기 울타리를 잡고 10분 버티기와 7살 때부터 술을 마시게 한 것이다.

술을 마시게한 이유가 기이하다. '알코올'을 버티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어린 모드는 식전주는 물론, 식사 중엔 백포도주, 적포도주, 라카르, 코냑을 15분동안 주어진 식사 시간 안에 다 마셔야 했다. 

모드 쥘리앵에겐 생일은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매년 생일 때마다 새로 시작될 '가르침'만 늘어날 뿐이다. 얼마나 기괴하고 잔인한 교육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므로 그녀는 매해 초조하게 기다릴 뿐이다. 


모드는 자비 없는 빡빡한 일과표에 매인 노예처럼 자란다. 

잔인한 교육을 통해 모드는 점점 자신을 경멸하고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을 증오하고 혐오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을 부모에겐 절대로 내비쳐선 안된다. 부모에게 발각되는 순간 벌을 받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더 심한 교육이 이루어질 뿐이니까.

이 부분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게 오히려 마음 편안하다는 대목이다. 밤마다 피가 날 때까지 본인을 학대했다. 그럼에도 고통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다니......


난 모드처럼 극한의 상황을 버텨낼 수 있을까. 모드처럼 책과 음악과 동물들에게 위로받으면서 견딜 수 있을까.

스스로 이끌어 가는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힘들다 힘들다며 괴로워하던 내가 아닌가.

억압된 환경에서 꿈을 꿀 수조차 없던 모드 쥘리앵과 자유가 보장된 채로 꿈을 꾸며 사는 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자유의 소중함을 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꿈꿀 수 있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자유롭게 숨 쉬고 자유롭게 하루를 보낸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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