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 무탈합시다!!! ^ㅡ^)/
왜?
저 남자애는 저 표정을 짓고 있지?
무슨 사연이 있나?
표지에 있는 소년의 무뚝뚝한 표정은 <아몬드>란 책을 꼭 읽어보고 싶게 했다.
오늘 리뷰할 책은 <아몬드>입니다. 한때 서점엔 한눈에 사로잡는 표지가 있었어요. 무뚝뚝한 표정을 한 남자애가 덩그러니 표지에 있던 <아몬드>입니다. 2017년 상반기에 서점 매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쭈~욱 꼭 읽어봐야지라고 찜해뒀던 책입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읽었네요.
손원평 작가님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으실거예요. 그만큼 유명하시죠.
손원평 작가님은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 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습니다.
2001년 제6회 [씨네 21] 영화 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어요.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했어요
첫 장편소설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했습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세 번째 장편 소설 『프리즘』 은 얼마 전, 2020년 9월 15일에 출간돼서 베스트셀러 반열이 올랐습니다.
2017년 3월 <아몬드>, 창비
2017년 10월 <서른의 반격> , 은행나무
2020년 5월 <나의 할머니에게> , 다산책방
2020년 9월 <프리즘>, 은행나무
역시 손원평 작가님의 대표작은 <아몬드>라고 생각해요. <아몬드>를 너무 재밌게 읽었던 터라, 다른 책도 꼭 읽어보자 생각하며 출간작들을 정리해봤네요. 이번에 출간된 <프리즘>역시 군침이 돕니다!!
작가의 집필 동기에서부터 남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4년 전 봄, 아이가 태어났다. 재미난 사연은 몇 있었지만 힘들게 낳은 것도 아니라 감동도 없었고, 마냥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중략)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그 질문에서 출발해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고 의심할 만한 두 아이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윤재와 곤이다.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람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 소설 <아몬드>, '작가의 말' 중에서 -
손원평 작가님은 2013년도에 출산했습니다. 출산을 계기로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됐다고 해요.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그 질문으로 윤재와 곤이가 만들어졌어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가족의 돌봄을 받으며 자란 윤재.
문제없이 감정을 느끼지만 가족의 돌봄 없이 자란 곤이.
둘이 만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요새 세상은 참 흉흉합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아동 학대, 초등생 납치·성폭행 사건.
거기다 아동 살해까지.......... 무서운 사건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고 있어요.
가해자들에겐 범행 동기와 원인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말합니다.
이런 가해자를 포함한 강력범의 대부분은 '소시오패스'라고 합니다. '소시오패스'라는 게 뭘까요.
이수정 교수의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에서 알아봤습니다.
사이코패스에 비해 소시오패스는 여전히 낯선 용어이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모두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사회화의 결과물로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하위 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 사이코패스는 유전적인 부분에, 소시오패스는 후천적 발달 과정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시오패스는 기질적 특성에 있어서 별다른 손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반사회적 문제행동은 어린 시절 가족의 무관심이나 학대, 비행 친구의 영향, 가난 그리고 낮은 지능으로 인한 교육 경험의 결핍 등 부적적 사회화 과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p.55
엄마로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소시오패스는 가정과 교육을 통해 길러질 가능성이 크다니..... 그만큼 가정과 교육의 역할은 중요한 것입니다.
<아몬드>를 읽으며 곤이라는 친구가 내내 마음에 맴돌더군요. 저의 리뷰는 곤이 위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곤이는 3살에 실종됐다. 아니.... 나는 실종 당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어린 것이. 아무것도 모를 3살의 아이가. 본인이 원치도 않은 실종을 당해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를 잃어버리고 싶은 엄마가 어디 있을까. 근데 실종이란 게 원치 않는다고 일어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이 생각지도 못하게, 순식간에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그만큼 땅을 치도록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평생 억장이 무너질 것이고, 아이를 애타게 찾는 부모를 알지도 못한 채 어린아이는 자기가 맞닥 드린 세상에서 살아간다.
세상은 따스하지 않다. 그러니 그 애가 온전한 길을 간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아이에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곤이와 부모에게 일어났다. 그런 면에서 곤이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진다.
곤이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실종아동을 생각해본다. 그들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 짐작해본다지만, 손톱만큼이나마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뒤늦게야 윤 교수가 곤이를 찾게 되지만, 해피엔딩은 펼쳐지지 않는다.
윤 교수는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평생 지키며 산 사람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돌아온 자신의 피붙이가 그런 신조에 철저히 위배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곤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윤 교수는 곤이에게 매질을 했고, 다른 사람에겐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방법을 택한다.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자기가 생각하던 포근함은 없었다. 그런 곤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166-167]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강남에 있는 학교에 날 처넣은 거야. 거기 가면 내가 모범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라도 갈 줄 알았나 봐. 근데 첫날 가 보니까 나 같은 놈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인 거야. 날 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그렇게 쓰여 있더라고. 그래서 깽판을 좀 쳐 줬지. 거긴 얄짤없더라. 며칠 만에 쫓겨났어."
곤이가 콧바람을 뿜었다.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곤이가 바닥을 노려봤다.
"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사니지. 그래서 그 여자 죽기 전에 얼굴도 못 본 거고......"
윤 교수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곤이가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지, 마음은 어땠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어떻게 16년이란 세월을 보냈는지..... 들여다보며 살피고 토닥여줘야 하지만 아빠는 본인의 입장만 생각한다.
순간, 마음이 콕콕 찔렀다. 나였다면.... 나였다면 아이의 마음을 살펴보려 했을까?
아이 입장을 살피려 하면서도 현실에 비친 내 위치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안 썼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래서 더욱 곤이에게 눈이 간다. 말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상처받을 아이. 그러면서 점점 괴물이 돼가는 아이. 그러니 돌아와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고 비뚤어지려 할 수밖에.
그런 곤이는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세상은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고.
"난 사랑이 실없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도 무슨 대단하고 영원한 것처럼 말하는 게 꼴같잖아. 난 그런 물렁한 거 말고 강한 게 좋다. 센 거. 상처받고 아파하는 거 말고 차라리 내가 상처 주는 쪽을 택하는 거. 철사형처럼."
상처받는 쪽보다 상처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곤이.
그런 곤이에게도 잊지 못할 따스한 기억은 있다. 엄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따뜻하고 보드라웠던 엄마의 손의 감촉 말이다. 땀이 밴 촉촉하고 보드라운 손의 촉감. 그 손을 잡고 햇볕 아래에서 그림자놀이를 했던 기억. 그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곤이의 마음. 잊히지 않은 그 촉감을 가진 엄마란 사람. 곤이는 아마도 그 촉감을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다. 흐릿한 엄마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고, 그 따뜻한 감촉을 느끼고 싶었으리라.
곤이에겐 아마 그 기억이 가장 따스하고도 소중한 순간이었을 텐데. 본인이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고 엄마와의 만남 자체를 통제한 윤 교수의 행동이 참으로 못마땅하다. 곤이 대신 엄마를 만난 윤재에게 엄마의 품이 따뜻했냐고 물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썩이며 곤이는 운다. 따스하던 엄마의 품이 얼마나 애타게 그리웠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곤이는 인생을 달갑지 않게 본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더 이상 상처받기 싫은 곤이는 소년원 선배였던 철사형을 동경한다. 강하고 강하고 또 강한 철사형. 그처럼 돼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이 부분에서 문유석 작가의 <쾌락독서>의 글귀가 생각났다.
[196~199]
소외 계층 청소년이 그리도 쉽게 범죄에 빠지는 이유 중에는 '내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들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보다 나은 집단에의 소속감을 제공해 주지 못한 결과가 범죄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소년범들과 대화를 나누던 베이츠 교수는 그들의 범죄 경험이 대부분 7~8세 때 시작된다는 얘길 듣고 놀란다. 한 소년범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곱 살부터 열 살까지의 아이의 경험이 십대와 성인으로서의 행동을 결정해요." 교육 전문가나 심리학자의 말이 아니라, 소년범의 말이다.
(중략)내 재판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범죄자 중 다수는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 문유석의 <쾌락독서 중>
세상이, 주위 사람들이 곤이를 더 등 떠밀었다. 더 해봐 더해보라고! 소외 계층 청소년들은 오히려 관심을 받고자 범죄를 일삼는다.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말이다. 사람들의 무심함과 짜여진 프레임대로 바라보는 행위들이 한 사람을 더 타락시킨다.
"너는 이곳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네게 맞는 곳으로 떠나!"라고 말한 도라처럼....
그런면에서 윤재를 만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아이와 얼굴을 맞대고 곤이에 대해 알려고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윤 교수가 애석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그런 태도를 지적할 엄마가 없다는 건 더욱 애석하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윤재처럼 곤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면, 좀 더 빨리 좋은 쪽으로 변화되지 않았을까.
윤재는 '알렉시티미아'로 태어났다. '알렉시티미아'란 '감정 표현 불능증'.
편도체가 작아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윤재는 갓난아기 때부터 달랐다. 왜냐고? 웃지를 않았으니까. 처음엔 발달이 조금 느린 거라 여겼으나 점점 평범하지 않다는 걸 엄마는 직감한다. 엄마의 직감대로 윤재는 평범하지 않았다. '감정 표현 불능증'. 이게 무엇보다 위험한 이유는 공포심을 모른다는 거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무서움을 모른다니... 이게 결말에 이르러서는 곤이를 구하는 작용을 했지만, 윤재는 생명을 잃을뻔했다. 엄마는 공포심 외로도 전반적인 감정 불능까지 오는 경우가 드문 윤재를 위해. 어릴 때부터 '본능적인 규범'들을 공부시켰다.
본능적인 규범들이라 함은,
차가 가까이 온다 →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같은 것들.
윤재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해나간다. 그럼에도 착한 윤재에겐 상대의 손찌검이 날아든다. 슬픈 상황에도 안 운다고, 옆에 친구가 엎어졌는데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고....
감정이 없는 애가 무어가 잘못일까. 아이는 자기가 아는 것에 한해 행동했을 뿐인데, 아이가 하는 행동은 주위 사람들로 인해 평가됐다. 자기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눈총을 받고, 손찌검을 받는 아이.
윤재는 곤이를 만나고 도라는 만나며 차츰 새로운 감정을 알아간다. 곤이를 통해 고통, 분노 등등을 배웠다면 도라는 통해 기쁨, 행복과 같은 감정을 배운다. 윤재에게는 더없이 큰 관계들이다. 의미 있는 관계. 윤재를 변화시키는 관계. 각각 관계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얕은 대화가 점점 속 깊은 대화로 이어지며 아픈 마음을 서로 어루만져 준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픈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해 줄 때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아마 윤재는 손찌검하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엄마와 할머니. 심 박사와 곤이, 도라의 관심과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게 참 다행일 수 없다.
이 책에는 홀엄마가 된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윤재 할머니가 그랬고, 윤재 엄마가 그랬다.
할멈은 윤재 엄마가 배 속에 있을 때 남편을 암으로 잃었고 가장이 됐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오로지 자식을 위해 젊음을 다 썼다.
윤재 할머니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혼을 하고 홀 엄마가 되면서 꿈과 멀어졌다. 처연하고, 안타까운 본인의 꿈을 딸이 대신해 주길 바랐다.
오죽했으면 딸의 이름을 지은이라고 지었을까. 할머니는 바랐다. 지은이가 독신주의로 늙으며 고독한 멋진 여류 작가가 되길.
윤재 엄마도 결혼을 하고 출산한 후 엄마의 길을 간다. 윤재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술 취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윤재 아빠의 좌판을 덮쳤다. 그 자리에서 윤재 아빠는 사망했다. 특출하진 않았어도 공부를 곧잘 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까지 했던 그녀였다. 꿈 많던 그녀는 아이를 낳고 현실을 바라봐야 했다. 사랑을 찾아 집을 나갔다가 불행을 짊어지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7년이나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산다.
윤재 할머니도, 윤재 엄마도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편을 잃은 처연한 사정이 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여자 혼자 아이를 기르는 일이란 어디 말처럼 쉬운가. 억척스러워져야 하고, 강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이 나를 건드렸다. 단란한 가정을 이룬 나와는 다른 지난한 세월을 살았을 할멈과 윤재 엄마. 그리고 더 많은 세상의 엄마들.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
소설 속에서 할멈과 윤재 엄마 그리고 윤재 셋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안정을 찾으려 할 때 날벼락처럼 찾아온 사건은 마음을 짓이겼다. 더욱 한탄스러운 일은 이게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별사건이 다 터지는 시대가 아니던가. 사고 사건이 많은 가혹한 현실이지만 슬픈 소식이 전해지지 않길 바라본다. 엄마가 된 나로선 그 소식들이 참으로 안타깝기를 넘어 슬픔을 가눌 수가 없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불행을 보며 혹여나 일어날지도 모를 나의 불행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게 되기도 한다.
<덧붙이기>
얼마 전 사유리 기사를 봤다. 자발적 비혼모.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사유리가 맞닥뜨릴 세상, 그리고 아이가 맞닥뜨릴 세상이 걱정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지 않는다. 규범도 관습도 과거에 묶여 있는 부분이 많다.
바꾸려는 소수가 분투는 하지만 다수를 변화시키고 관습을 바꿔나가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을 잘 견뎌내길..... 큰 아픔들이 다가가지 않길 기도한다.
곤이와 윤재. 모두를 힘들게 한 것은 타인의 평가와 손찌검이었다. 곤이는 불량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점점 몰아세웠고, 윤재는 감정을 모른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된다. 누구 하나 그들에게 다가가지도,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다. 이게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과정이 아닐까.
곤이는 그 수순을 밟으며 더 타락한다. 윤재는 다행히 타락하기보단, 혼자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이해할 수 없는 거 투성이인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
칭찬인 듯 말하지만 비꼬면 상대를 우롱하는 이들.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이면이 밝진 않는 현실을, 감정을 알아간다는 건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난 종종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어릴 때가 좋았다고. 아무것도 몰랐던, 푸릇푸릇한 그때가.
우리 아이들도 점점 현실을 알아갈 것이다. 진짜 세상을 마주하며 아파하고, 상처받고, 실망하겠지.
녹록지 않은 현실 안에서 아이들은 나름대로 아등바등 노력해 나갈 것이다.
마치, 곤이와 윤재처럼 말이다.
곤이와 윤재를 보며 내 아이와 빗대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을 좀 덜 회색빛이길 바라고, 좀 덜 소외되길 바란다.
그저 평범하게...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면 좋겠다.
평범하지 않던 곤이와 윤재를 보니 평범함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다.
<자료 출처>
조선일보, 강력범, 대부분 소시오패스, 김혜림 기자
조선일보, 죄인 줄 알면서도.... 초등교 난동범은 '소시오패스', 권승준 / 정경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