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이진민 작가
철학 박사인 그녀는 어려운 지식 향연의 철학이 아닌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학계의 소수를 만나는 논문보다는 일상의 다수를 만나는 책을 쓰고 싶어 하셨죠.
박사를 획득한 시기 그녀는 엄마가 됩니다. 여느 엄마 작가처럼 육아의 한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습니다.
젖을 물리면 황급히 메모했고, 아이를 재우면서도 동동 떠오르는 문장을 적어 나갔죠.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하지?
어쩜? 이렇게 풀어냈을까?
읽으며 감탄을 수차례 했어요.
그녀의 내공에 압도되고 말았죠.
작가의 생각의 너비를 마주하며 든 생각은 '나도 저런 내공 가지고 싶다'였습니다. 얼마나 공부하면 작가처럼 높은 내공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녀의 깊은 내공은 육아 이야기를 한층 넓고 풍부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수많은 육아서, 여성 에세이에선 접할 수 없었던 관점으로 이야기가 꾸려지죠. 전 이게 너무 좋았어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읽을수록 두고두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구매해버렸죠. 배울 것도 많고, 생각거리도 많아서 정말 두고두고 읽어야 할 거 같습니다. 여러분도 읽으신다면 저와 같이 작가의 매력에 빠져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노브라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지금까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접근으로 저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노브라를 불쾌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끄집어 내며 당차게 주장한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남성들이 상체를 노출할 수 없었던 과거의 미국을 언급하며, 미니스커트를 입는다고 경찰이 무릎 위로 자를 들이대던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이 흥미로워 잠깐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엔 '다리(leg)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사실 아세요? 그 단어가 음란하다고 봤기 때문인데요.
급기야 피아노 다리를 피아노 다리라 부르지 못했고, 다리를 벌리고 앉을 수 없어서 여성이 첼로를 배울 수도 없었대요.
이 이야기보다 더 재밌는 사실은 1910년까지만 해도 남성들이 수영장에서 몸에 붙는 수영복을 입을 수 없었답니다. 수영복을 입더라도 수영복 바지 위에 치마 같은 천을 걸치도록 하는 곳도 많았다고 해요. 미국에선 남성들의 가슴이 공공장소에서 노출되면 안 됐죠. 부도덕하다는 이유에서였대요.
1930년대 초반에는 '수영복 바지만 입고 수영 및 선택할 권리'를 위해 싸우려는 용감한 남성들의 첫 시위가 코니아일랜드에서 일어났어요.
1935년 애틀랜틱시티에서는 남성 시위자 그룹이 해변에서 대담하게 수영복 바지만 입고 있다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마침내 1936년 뉴욕 주에선 '남성들의 가슴 노출'을 법적으로 허용하게 됩니다.
그 과정엔 진보적인 변화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의 작디작은 행동들이 모여 이룬 결실이겠죠.
작가는 이와 같은 역사를 말하며 노브라를 비난받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빗댑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다리란 말을 쓰진 못했던 과거와, 수영장에서 상위 노출하면 체포되었던 남성들의 지난날의 모습과 닮았다고요.
나는 단지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확확 바뀌어왔고, 우리가 현재 가진 생각들이 불변의 진리로 천년만년 이어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모두 내 생각만 고집하며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조금만 더 유연했으면.
-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p. 76-78
노브라를 했던 한 가수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고, 어떤 여자 연예인은 악플에 시달렸죠.
그녀들은 그저 '노브라가 편해서 한 것인데' 진위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사실을 부풀리기 급급했습니다.
문화는 점점 달라집니다.
과거엔 불변의 진리로 천년만년 이어질 거 같은 생각과 문화도 현재에 이르러 바뀐 게 많습니다.
지금의 노브라를 비난하는 일 또한 세월이 지나면 변할 것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일과 수영장에서 상의 탈의했다고 체포되었던 사건과 미니스커트를 단속 받던 시절을 지금은 콧방귀 뀌며 말하듯이 말이죠.
작가의 글이 아니었다면 이와 같이 접근하며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역사가 뒷받침되니까 더 쉽게 와닿았습니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에서는 변화를 시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작디작은 행동으로 미래는 변한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김슬기 작가님의 <딸에게 들려주는 여자이야기>와도 결을 같이 하고 있더군요.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해 우린 오늘 하루도 변화를 도모하는 무언가를 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를 읽으며 '나를 넘어서는 생각'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처음 듣는 철학자도 있었고, 많이 들어봤던 철학자도 있었죠. 철학을 출산과 육아, 여성의 삶에 빗대어 설명하니 쉽고 재밌었어요.
작가님이 의도한 대로 철학을 말랑말랑하게 잘 풀어낸 거 같습니다.
이 책을 덮으며 철학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철학을 더 알고 싶어졌고요. 그녀처럼 철학을 쉽고 재밌게 풀어낸 책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책을 읽게 된다면 여러분께도 당연히 소개해 드릴게요.
책을 읽을수록 나의 좁은 식견에 눈이 가면서 고무되었다.
내 무지가 부끄럽고 걱정된다. 텅 빈 머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좀 더 넓은 눈을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상과 시각을 만난다면 포괄적인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유영만 교수님의 <책 쓰기는 애쓰기>에 해답이 있었다.
나만의 사유의 씨앗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낯선 생각과 접속할 수 있는 다양한 책을 읽고 다시 나의 관점에서 이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고 그냥 덮으면 그 순간 거기서 사유도 끝난다. 사유가 나의 관점에서 다시 잉태되기 위해서는 읽으면서 느낀 점을 기록해놓고, 그것이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야 한다.
(중략)
나의 경험만은 우선으로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와 다른 사람의 지혜에 부지런히 접속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나의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적 통찰력에 비추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이렇게 낯선 생각과의 부단한 접속을 통해 내 생각도 성장한다.
- 『책 쓰기는 애쓰기다』 중에서
해보자고 다짐한다.
뭐가 맞는진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