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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말하다-김영하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가인 그.

그러나....

나는 그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내가 읽은 그의 두 번째 책.

무수히 많은 그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열렬히 집필을 하였을까....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안았을까....


고맙게도 [말하다]를 읽으니 그의 형체가 커튼에 드리워졌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의 향기를 뿜어내는 사람인지....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이 책을 계기로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한 권 한 권 더 읽어나가며, 커튼을 활짝 걷어내어 그를 온전히 눈에 담아낼 수 있길 바라본다.


[말하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잘 쓴 글이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 글이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유시민의 글 쓰기 특강]에서 유시민 작가도 목소리 높여 강조하던 부분이다.


글이란, 나의 치유와 성장으로 물결치는 유유히 흐르는 강을 누군가가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새로 나온 사진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카메라로 더 멋진 사진을 찍는 삶입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는 삶이 아니라 휴대폰을 잠시 끄고 글을 쓰는 데서 얻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의 대부분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사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과 관련되었다는 겁니다. 글을 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극에 참여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 여기엔 대부분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 소설이라는 것은 끝까지 읽어도 주제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주제를 알기 어려운 소설일수록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능 있는 작가일수록 작품의 주제를 독자가 쉽게 찾지 못하도록 잘 숨겨둡니다. 훈련된 독자 역시 너무 간단해서 주제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는 소설보다는, 지성과 감성을 충분히 사용하면서 적절한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작품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소설을 더 좋아합니다.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 예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오감으로 글쓰기'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어렸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쓰게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학생들이 시각적인 기억에만 의존해 건조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오감을 다 표현해 다시 써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함께 남해안의 해수욕장에 놀러 간 기억에 대해 쓴다면, 저 먼 수평선에 갈매기들이 날고, 그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우는소리를 들으며 바다로 걸어들어갔는데, 해초가 종아리에 미끈거리며 감기고 수영을 하며 들이킨 바닷물은 엄청나게 짰다, 이런 게 오감의 글쓰기인데요. 일단 오감을 이용해 글을 쓰면 그 자체가 좋아집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시각만 이용해서 글을 쓸 때보다 훨씬 깊게 그때의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앞으로 10년밖에 못 산다면 뭘 할까?' 지금 마흔셋이라면 쉰셋에 죽는다고 가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명쾌하게 정리되죠. 우선 각종 경조사에 가지 않을 겁니다. 친구 아기 돌잔치? 안 갑니다. 아마 이런 인터뷰도 안 할 겁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마음껏 하며 살고 싶을 텐데, 그 일이 내겐 소설 쓰기입니다. 10년이면 기껏해야 너덧 편밖에 못 쓸 텐데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 기간을 좀 더 좁힐 수도 있습니다. '5년 밖에 못 산다면?' 저는 우리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수시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대답이 나올 텐데 그럼 또 물어보는 겁니다. '2년밖에 못 산다면?' 저 같은 경우 그 모든 경우의 수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이 소설 쓰기였습니다. 이 얘기를 듣더니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10년, 5년, 2년의 우선순위가 모두 같으니까!"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 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 아, 나는 안 돼, 이래서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죠. 그것 말고도 많이 있는데, (웃음)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작가가 될 수 없는 백 가지 이유'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이야기

   저는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도 모국어를 다 마스터하지 못해서 열심히 수련 중입니다. 그런데도 작가니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죠. 전업작가이고, 열 권이 넘는 소설을 썼으니까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글을 많이 쓴 것은 분명하겠죠.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는데, 저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는 단순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이야기가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에요. 어떤 글은 미사여구로 잘 꾸며져 있고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중략)

저는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 자기 즐거움을 위한 글쓰기라는 것은 뭐냐, 어디서 오느냐, 왜 글을 쓰면 즐거우냐에 대해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됐어요.

만약 글쓰기가 즐겁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편안하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시를 썼을까요? 감옥에 갇혔을 때, 정말 갑갑하고 괴로울 때 인간은 글을 쓴다는 거죠.

저는 글쓰기가 가진 이런 해방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제도 교육에서 글쓰기라고 하는 것은 체계적으로 해방감을 죽이는 것입니다.


- 여전히 나는 말보다는 글의 세계를 더 신뢰하며, 그 안에서 내 생각이 더 적확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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