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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시옷의 세계-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단어와 문장으로 그려지는「시옷의 세계」

만족도: ★★★★☆


이 책은 이웃 블로거 pasi 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좋은 책과 시인을 알게 되어 기쁘다.


사실 책을 빌리려고 책 정보를 검색하게 되면서 김소연 작가가 시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인이라 그런지 서문부터 문장의 향기가 피어올랐고, 일반적이지 않은 시선이 남달랐다.




"이번 선물은 시옷의 낱말들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사람의 사랑이, 사랑의 상처가, 실은 그 선물이, 그리하여 사람의 삶이, 삶의 서글픔이, 그 서글픔이 종내는 한 줄 시가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손길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되는. 그런 시에다 옷을 입히듯 나의 이야기를 입혀보았다. 나의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시구절과 사이좋게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 「서문」 중에서




시옷의 낱말들로 한 권의 책을 꾸려낸다는 발상은 새로웠다.

<사라짐, 사소한 신비, 산책, 살아온 날들, 상상력, 새기다, 새하얀 사람, 생일...> 이리도 많은 시옷의 낱말들로 구성된 책은 따스했고, 삶과 사람, 시간, 시를 느끼며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문학의 길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푸르스름하면서도 보랏빛을 품고, 분홍빛을 담고 있는 형형색색의 오로라를 보듯, 다채로운 빛깔의 문장, 몽롱한 표현, 흐느적거리다가 펄럭거리다가 팍! 하고 낚아채는 문장들.

단어와 단어.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진 선들마다 굵기와 채도를 달리했고, 희미했다가도 분명했다가. 단색이었다가 무색이었다가하며 단어와 문장의 번짐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글들이 그림 같아서.

단어와 문장으로 그려지는「시옷의 세계」

무수한 감성과 감정과 표상과 진리를 실어낸 그림 앞에 서 있던 내게로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쏟아졌다.


시인의 책으로 인해 알게 된, 관심이 가는 시인 두 분이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와 '심보선' 시인이다. 책에서 이 둘을 언급하는 부분이 호기심을 유발했다고나 할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은 지루한 논문에서나 나올 법한 어떤 단어들이, 아버지의 입술을 통해서나 들었을 법한 고루한 단어들이, 내가 좋아하던 시들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무미건조한 플롯들이 페이지마다 소신에 찬 어조 위에 얹어져 있었다. 처음 느꼈던 결핍감은 그 결핍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야 마는 소신으로 다가왔다.'

- 「본문」 중에서




시인에게 있어서 지루한 단어, 낡은 단어, 무미건조한 플롯들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건, 가혹한 비평일 것이다. 근데 김소연 시인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너무 가혹하게 비평했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접했을 때는 얼마나 밑줄을 많이 긋고, 페이지 귀퉁이를 얼마나 많이 접었는지 모를 만큼 처음 느꼈던 실망감을 왜 느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비스와봐 쉼보르스카'는 비미를 향한 미적 태도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용감하게 선택하지 않았기에 그의 시는 독보적이었고, 이로 인해 김소연 시인은 '아름다워서 아름답기만 하여서 무력해 보이는 본인의 시의 함정'을 똑바로 보게 되었다고 했다.

본인의 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비스와봐 쉼보르스카'의 시의 매력이 사뭇 궁금해진다.


그다음으로는 '심보선 시인'이다.

시인은 그의 시 역시 냉정하게 평가했다. 뭔가 혹평 같다가도 그 단점으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라는 말에 궁금해졌다. 




'세심한 서정, 세련된 메타포, 시의 형식이 실험성과는 멀고, 시인 사이에 '금기어'라고 낙인찍힌 낱말들을 그는 사용한다. (···) 시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보다 시를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았는지 모른다.'

- 「본문」 중에서




궁금하다. 어떤 시를 쓰는 시인인지, 왜 시를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했는지. 그렇기에 조만간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빌려 봐야겠다.


시인들은 참 경이롭다.

단어를 가지고서 하나의 세상과 풍경과 진실을 그려낸다는 게.

그들은 아마 시로서 삶을 향한 투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struggle : 투쟁하다, 고투하다, 몸부림치다, 허우적거리다, 힘겹게 나아가다, 나쁜 결과를 막기 위해 싸우다, ~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 힘이 들다.


부조리한 상황에 대하여 지치지 않고 안간힘을 쓰는, 고귀한 삶에의 의지. 여기엔 포기하지 않는다는 억척스러움이, 꼿꼿하고 곧세지만은 않다는 인간다움이, 낑낑대는 듯한 근근함이 포함돼 있었다. 피 냄새는 조금 덜했지만, 살 냄새가 났고, 땀 냄새가 났다.'


'시인에게 '투쟁'이란 반드시 패기와 결기로 똘똘 뭉친 지사의 행동 양식만을 뜻하진 않는다. 몸부림치고 허우적거릴 뿐인 패자의 눈물 나는 행동 양식도 투쟁이다' 

- 「본문」 중에서




고귀한 삶에 대한 의지와 안간힘, 포기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으로 시인들은 시를 쓴다라...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투쟁을 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또한 살아내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로 삶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잘 쓰진 못하지만 계속 글을 쓰려 하는 것도 나의 투쟁이고,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외면하는 것도 나의 투쟁이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내 투쟁이 꼿꼿하고 굳세지만은 않을 것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내 인생, 나를 위해서 억척스럽게 멈추지 않는 것도 나의 투쟁인 것이다.

이렇게라도 몸부림치고 아등바등하지 않는다면 나는 삶의 의지를 잃고 말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글쓰기로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성취를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책에서 성공에 관한 개념을 정리한 부분이 있었는데, 뜨끔했다.




'성공 :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기초로 한다.'




이 표현이 기가 막하게 들어맞는 거 같다.

성공을 하는 것은 나와 타인의 시선의 비율은 4:6 정도가 아닐까 한다.

성공을 하여 많은 것들을 얻을 순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사는 모습을 어깨에 힘 빡 주고 보여주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성공이라는 한자말을 검색해 봤다.

성공 ( 이룰 성,  공 공) 은 '공을 이루다' 즉, '뜻한 것이 이루어지다.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라고 정리되어 있었다.

뜻한 바를 이루어 사회적 지위를 얻어 남들에게 과시하는 것.


그보다는 성취( 이룰 성  나아갈 취: 목적대로 일을 이룸)을 추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성공으로 타인들에게 과시하며 복수하고 싶은 욕망의 허무함을 나는 안다.

그렇기에 성공보단 성취를 위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성공보단 성취를 위해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서.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며 인생의 진리들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아름다운 글로 꾸려진 책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옷의 세계>는 깊고, 넓고, 높은 진실들을 파고들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 사랑한 글귀들


[p.27]

 의심의 대지 위에 믿음을 가건물처럼 세워두는 것을 허가했던 것이다.



[p.29]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 올리브 H. 하우게,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p.30~31] 

산책


걸어주자고, 화분에 물을 흠뻑 주듯 내 육체를 위해 흠뻑 걸어주자고 야심한 밤에 길을 나섰다.

(···) 우리는 돌멩이를 신발로 툭툭 차듯, 실없는 얘기들을 툭툭 내던지며 두어 시간을 걸었다.

(···) 농구공이 땅에 부딪히며 공명하는 힘찬 소리가 발바닥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 외로움의 끝자리엔 이 밤하늘만큼이나 텅 빈 생각이 홀연히 찾아온다고도 말했다.



[p.62~64]

채워 넣고 채워 넣는 것으로 평생을 보냈을 엄마의 하루하루가 난데없이 몰려와서, 그릇만 물끄러미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허기가 포만감처럼 밀려왔다. 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엄마라는 이름에 담긴 슬픔들이 국그릇 엎어지듯 쏟아졌다.

(···) 사람이 세상에서 처음 배우는 말. 가장 쉬운 말. 그러나 물컹한. 거대한. 너무 따뜻해서 도리어 슬프고,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쉽지 않을 말.

(···) 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제 육체의 일부를 입에 물려 갓 태어난 목숨의 허기를 달래주는 사람.



[p.97]

아, 어쩌면

누군가가 여기에다 부려놓은

고통을 내가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조은, 「소용돌이」에서



[p.168~169]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추억이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지친 걸음과 같겠구나. (···) 추억은 경험치라는 편견의 도수에 맞춰진 안경이었다.



[p.171~172]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부분



[p.180~181]

열아홉 살은 희망 따위를 믿는 마지막 나이다. 진정으로 유유할 수 있는 나이가 스무살일 거라는 희망을 주먹 안에 꼭 쥐고 있을 나이가 열아홉이다.

자신이 살아온 찌질한 일상과는 확연히 다른, 더러는 자신감에 차오르고 더러는 겸손해지기조차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키가 크는, 진정으로 세상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중심까지를 날렵하게 가로지르는 튼튼한 날개가 어깻죽지에서 돋아날 수 있는. 그래서 절망과 설렘 사이에서 쉼 없이 멀미를 하는 나이.








[p.212]

소통


진심으로 우리에게 소통이 가능하다면, 삶 자체가 비슷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사는 이는 외국인과 같다. 삶만이 우리를 연결할 수 있다.     


    

[p.44]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도종환, 「단풍 드는 날」에서


(···) 시인은 살아남기 위해 버린다는 것을 곧 아름다워지는 것임을 입증했다



[p.121]

시의 장소에서는 질서를 꿈꾸지 말아야죠. 허우적거려야죠. 혼돈을 혼돈으로, 불안을 불안으로, 공포를 공포로 말해야죠. 그렇게 해도 되는 마지막 장소니까요.



[p.125]

눈물을 기록하다 보니 눈물을 오해 없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눈물은 목적이 따로 있었고, 어떤 눈물은 맹목이었다. 어떤 눈물은 가뭄에 쏟아진 소나기였고, 어떤 눈물은 골절되어 살갗 바깥으로 삐져나온 뼈였다. 그렇게 눈물의 맛을, 눈물의 너머를 감지하는 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을지 모른다.



[p.171~172]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에서



[p.183]

그녀의 악몽은 세포분열을 일으키며 개체의 수를 불리는, 끔찍하리만치 생명력이 강한 미생물과 같았다. 그녀는 그것을 곰팡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희망에 온기가 생기고 습기가 생길 때에 번번이 악몽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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