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그녀의 팬이 되기로 했다
만족도: ★★★★★
브런치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글은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끝 문장에 가 있는 신통한 재주가 있었다.
잘 읽히고, 잊고 있던 깨달음에 노크를 하게 해주고, 육아라는 거친 파도에 잡아먹히지 않게 격려와 위로를 건네주었다.
'아넷맘'이라는 닉네임의 그녀가 궁금해졌고, 그녀의 책이 궁금해졌다.
책을 접하며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엄마>라는 제목이 다소 아쉬웠다.
좀 더 임팩트 있게 지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며 목차를 넘겼다.
'아하! 이래서 제목을 이렇게 지었던 거구나'
아차! 싶었다.
제목과 목차는 한 몸인 듯 똘똘 뭉쳐 있어 단단했고, 모든 내용이 제목에 꽉 채워져 있었다.
제목과 목차는 좋은 콤비를 이루고 있었기에 책에 무한 신뢰가 갔다.
섣불리 제목을 판단한 나의 무지가 낯부끄러웠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아들 넷 엄마라는 꼬리표를 달고 힘든 육아를 헤쳐나가는 여성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근데 그 이상이었고, 나와 닮은 점도 많았다.
꿈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지만 현실에 의해 엎어져 버리고 만 것.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마음에 생긴 상처를 치료할 시간도 없이 육아에 치이며,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간 것.
힘든 시간을 흘러 보내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
육아라는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아슬하게 피했던 시간이 그녀에겐 10년.
험난한 파도를 피하며 넘기기도 바쁜 현재 진행형의 6년 차인 나.
앞으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그녀와 같아질까.
힘든 고비를 넘기다 보면 빛을 발하는 시간이 어느새 내게도 오리라. 그녀의 말처럼.
10년 동안 꿈이라는 무모한 보석 상자를 등진 채 앞에 놓인 현실을 헤쳐 나가기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형 한 명에 아우 셋. 그것도 세쌍둥이.
세쌍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겁이 난다.
4살 터울인 두 남매를 키우는 것도 버거운데, 장남에 세쌍둥이라니.....
책을 읽기 전부터 험난했을 현실이 상상된다.
그녀는 벼락같은 현실에 망연자실해하는 시기를 지나왔고 누구보다 엄마 되기가 두렵고 힘들었던 사람이었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 엄마가 되어 힘겨운 육아를 이어갔던 한 엄마의 절절한 이야기가. 지난 십 년간 엄마로서 겪었던 삶의 여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진실한 글 뒤에는 아픈 사연을 통해 얻은 진실이라는 무기가 있다.
고통으로 깨달은 진실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저자 역시 아픈 사연이 있었기에, 그녀의 아픔이 진실된 고백이 되어 내 마음에 둥지를 틀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진실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무수히 존재한다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진심이 꽉 찬 책을 출간하며 드디어 날개가 돋아났고, 작가로서의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작가를 향한 새로운 꿈을 꾸어나가는 그녀의 행보가 사뭇 궁금해지며, 팬이자 같은 꿈을 키워나가는 동료(?)로써 응원해주고 싶다.
멋진 날개를 펼쳐 훨훨 비상하길.
너무 멀리 비상하는 그녀를 보면, 내 작은 날개를 보며 슬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모습에 자극을 받으며, 어제보다 높게 날고 있는 나를 고대해본다.
오늘부터 그녀의 팬이 되기로 했다.
글 쓰는 삶을 살겠다는 소명 외로도 육아에서도 그녀와 공통점이 있었다.
특별한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주위에서 지적질을 받기도 했기에, 나와 같은 행동을 한 그녀를 보며 동지의식까지 들었다면 오버일까?
나는 7개월 차인 둘째를 여태껏 컨디션이 좋은 낮에 목욕을 시킨다.
보통 아기 목욕은 자기 전에 해야 밤새 푸욱 잔다는 통설이 있다.
초반엔 나도 시도해보았지만, 자기 전에 목욕을 한다고 해서 일찍 자거나, 새벽 내내 잠들진 않았다.
낮에 하나, 저녁에 하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저녁에 아이를 목욕 시키는 것은 눈치, 스피드, 결단력이 응축되어 초인적인 에너지가 방출해야만 했다.
둘째를 목욕시키는 동안 첫째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신경전을 펴야 하며, 첫째의 부름, 짜증으로 인해 분노의 목욕질로 나아가지 않도록 예민함을 지혜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첫째가 다른 곳에 신경이 가 있는 사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최대한 빨리 둘째를 씻겨야 한다.
길지도 않은 10분이라는 시간은 내 온 신경을 첫째와 둘째에게 쏟아야 하기에, 하고 나면 진이 빠져버린다.
굳이 저녁에 둘째의 목욕을 시키며, 촉박하고 빡빡한 마음으로 예민하게 하루의 끝을 향해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둘째의 컨디션을 보며 느긋하게 목욕을 시켜 보았더니, 나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하고, 신랑도 편하고, 모두에게 이로웠으며,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낮에 목욕을 시키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방식을 고수할 듯하다.
간혹, 주위에서 지적질을 받기도 하지만 내가 좋고, 우리 가정의 저녁이 평화롭다는 데 바꿀 이유가 없다.
이 책 저자도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와 같이 아이의 컨디션을 봐가며 주로 낮에 목욕을 시킨다는 소리에 든든한 아군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수많은 육아 방식과 일반적인 통설이 있음에도 엄마가 편하고 좋다면 약간 어긋나더라도 그게 바로 답이라는 것을.
또 하나의 공통점은 아이의 머리를 직접 깎아준다는 것이다.
5살 이상의 아이는 그나마 미용실에 가는 게 수월하지만, 5살 이전인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것은 고된 일거리다.
다행인 것은 첫째가 여자이기에 미용실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됐기에, 5살전에 미용실에 데리고 간 것은 두어 번 정도에 불과하다.
저자처럼 어린 세쌍둥이 남자아이들을 미용실에 데리고 간다는 것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가마솥 안에 뛰어드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두 돌 즈음에는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 앞에서 뽀로로를 틀어주며 아이의 행동과 기분을 오롯이 엄마가 케어해주어야 했고(미용사들은 아이 머리를 서둘러 자르느라 정신이 없다.), 4살 즈음엔 예상치도 못한 아이의 행동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며 조마조마하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미용실 가는 것은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는 궂은 일거리였다.
나처럼 하나라면 그나마 아이를 케어할 수나 있지 세쌍둥이는 엄마 몸을 세 개로 나눌 수도 없고, 남편이 도와준다고 해도 손이 모자라 고생을 사서 하는 게 눈에 보듯 뻔하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서 아이 머리를 잘라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역시도 3달에 한 번은 머리를 잘라주어야 하는 둘째로 인해 집에서 바리깡으로 밀어주고 있다.
둘째는 머리숱이 많아 생후 100일차부터 잔디인형처럼 머리가 하늘을 향해 삐죽 서 있었다.
목도 못 가누는 둘째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자니,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가는 과정, 미용실에 가서도 첫째와 둘째를 케어해주어야 하는 만발의 준비, 남편을 대동한다고 해도 주말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 조급한 마음에 첫째가 등원한 사이 혼자서 둘째를 데리고 미용실에 간다고 해도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케어해야 하는 것은 엄마의 몫이기에 귀찮기도 했고, 엄두도 안 났다.
필연인지 주위에는 남자 아기 머리를 집에서 깎아주는 부부가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홈 커트를 결정할 수 있었으며,
쉽고 빠르게 머리를 자를 수 있는 바리깡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세상에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사용하는 바리깡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같은 제품의 바리깡인거야...!?'
소리가 크지 않고, 방수 기능이 있어 물에 씻어낼 수도 있으며, 플라스틱 보조 기구를 끼워 원하는 머리 길이로 밀 수도 있고, 가격도 2만 원대라니... 분명 같은 제품이리라.
검색 당시 무소음, 방수 가능, 저렴함을 갖춘 기구는 이게 유일했으니까.
와우! 또 한 번의 교집합 발견!!!
교집합의 바리깡으로 둘째 머리를 깎아준 횟수는 지금까지 4번째다.
처음엔 거실에서 점보의자에 앉히고 미용 커버를 입힌 뒤 한 명은 앞에서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노래, 장난감, 표정 놀이 등을 하며 케어하고, 그 사이 한 명은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어주었다.
100일 아기가 불편한 점보의자에 앉아 있기란 힘든 일.
당연히 머리 자르는 내내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막판엔 목소리 내기도 힘들어 끄윽!! 소리만 내며 서글피 흐느끼는 아기의 모습에 미안했고, 미용실에 가야 했던 건 아니었는지 후회가 되었다.
어느새 머리는 자라 고슴도치처럼 하늘을 향해 뻗기 시작했고, 또다시 바리깡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은 또다시 흘러 둘째는 생후 7개월 차가 되었고 머리를 밀어주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이 땐 환경을 전면 수정했다.
커트하는 위치는 거실에서 욕실로 변경했고, 큰 욕조와 아기 욕조에 물을 받고, 머리를 깎을 때는 큰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놀게 하며 머리를 자르니 몰소리에 묻혀 바리깡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고, 물놀이하느라 둘째는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머리를 깎고서는, 몸에 묻은 머리칼을 씻어내고, 작은 욕조로 옮겨 평소처럼 몸을 씻겨주니, 아기도 평온, 나도 평온, 기발하고도 딱 맞는 노하우가 생겨 앞으로도 머리 자르는 날이 두렵지 않다.
별일 없다면 둘째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내가 잘라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홈 커트가 마음에 들었던 점은 세 달에 한 번 드는 미용실 경비를 아낄 수 있고, 집에서 원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머리를 깎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처음엔 무모하고 겁부터 났지만 지금은 낯설었던 시간들에서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온전해져 가고 있다.
차선책이 최선책이 되는 순간이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더욱 대담해졌고, 현실의 역경 앞에서도 겁부터 내지 않고 덤덤히 헤쳐나가는 담력이 생겼다.
그렇게 엄마는 한 뼘 더 자랐다.
[p.38]
뜻밖의 사실을 전해들은 남자의 표정은 굳어지고 그 이후로 여자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이별은 그들에게 당연한 수순이고 홀로 남겨진 자는 뜨거웠던 그날 밤의 대가를 혼자 치러야 한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 없이 진실했던 그날의 감정마저 모독하는 것이었다.
[p.40]
병원을 나와 그와 나란히 걸었다. 토요일 오후, 수많은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우리 옆을 지나친다. 빠르게 지나가는 그들의 시간 옆으로 우리의 시간만 멈춰 있는 것 같다. 마치 이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정지된 시간의 영역을 한참 동안 헤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p.60]
당시 나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외로움 이면에 숨겨진 자유라는 녀석은 보지 못했다. 매일 숨 쉴 수 있는 충분한 산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듯 자유가 있어 행복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그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그 시간 안에도 행복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도 똑같이 느낄 것이다. 자유라는 것이 그토록 찬란했던 것인지. 육아를 하면서 뒤늦게야.....
독립운동가들이 자유를 위해 한 목숨 바쳐 투쟁했던 이유도 모두 온전한 자유와 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토록 자유라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소와도 같은 것이다.
혼자 무턱대고 걷는 것도, 지루해서 소파에 털썩 누워 초점 없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며 TV를 멍하니 바라보던 것도, 나가도 싶으면 언제든 원할 때 외출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자유.
내 삶과 일상에 찰싹 붙어있어 쳐다보진 못했지만 떼어내고서야 휑한 추위가 느껴지듯 자유가 떠나니 휑한 삶과 서러운 현실의 추위를 체감하게 되었다.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진실.
일상의 자유가 얼마나 값지고 찬란한 것인지 잃고서야 뒤늦게 깨닫고 마는 안타까운 아이러니.
그럼에도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p.73]
하지만 그들의 비판은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힘들다고 투정 부린 적이 없었던 삶, 모두가 꺼려 했던 일들을 도맡아 해왔던 삶,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나라는 존재는 하루아침에 어느 곳에도 섞일 수 없는 벌레가 되어 있었다.
[p.86]
출산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아기와 내가 한마음이 되어 서로 힘을 도와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출산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길을 열어주는 보조적인 역할만 수행할 뿐 그 길을 걷는 것은 오롯이 아기의 몫이었다. 엄마가 극심한 진통을 받고 있다면 태중의 아기는 그 진통의 수백 배를 고스란히 견디며 그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산의 고통보다 아기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극심한 고통과 처절한 괴로움에 허덕이는 나의 모습만 떠오른다.
'엄마가 극심한 진통을 받고 있다면 태중의 아기는 그 진통의 수백 배를 고스란히 견디며 그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저자의 글에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하다.
좁은 길을 온몸을 웅크리고 짓이기며 형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얼룩졌을 아기를 생각하니 부끄럽다.
어째서 아기의 고통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보다 더 한 고통을 이겨내며 세상으로 나와 준 아기는 나보다 더 위대했다.
자고 있는 둘째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좁고, 어둡고, 힘겨운 고행을 이겨낸 승리자. 그것이 아기였다.)
[p.96]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없다는 것은 마치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하는 것과 같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아기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p.121]
글쓰기는 내게 고립된 육아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이자 아무것도 아닌 내가 여전히 어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p.164]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아들 넷 엄마라는 꼬리표가, 삼십 대 중반의 기혼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경단녀'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감에 있어 누구의 엄마로 불리기보다는 내 이름 석 자로 불리고 싶다는 것을. 그렇기에 다시 꿈을 찾고 싶고 도전하고 싶다. 그 길이 멀고 험해도.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p.213]
할 수 있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의 실낱같은 희망과 해야만 한다는 절실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그 작은 날갯짓은 결국 커다란 변화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p.222]
그저 내 소신대로 주관대로 나는 커다란 배의 돛이 되어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듯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나의 여행에는 로맨틱한 드라마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끝없는 실패가 있었고, 그 실패를 이겨내는 고통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끝에는 햇살 같은 순간도 찾아왔다.
[p.229]
베이비 사인에는 단계별 유형이 있는데 1단계는 하품하기, 눈 비비기, 귀 잡아당기기 등이 있고, 2단계는 놀이를 하다가 흥분하는 경우, 많아지는 웃음, 소리 지르기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칭얼칭얼대는 울음, 짜증 섞인 울음, 엄마 품 파고들기 등이 있다.
엄마는 아이가 보내는 베이비 사인을 적절히 캐치하여 1단계, 적어도 2단계의 베이비 사인을 보였을 때 아이를 재우는 것이 좋다. 만약 3단계까지 간다면 재우는 시간은 곱절로 늘어날 것이며 아이의 잠투정도 심해질 것이다.
[p.232]
엄마에게 육아는 거대한 산과도 같다. 한 고개, 두 고개, 세 고개 힘들게 오르지만 곧이어 또 다른 고개와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산. 그러나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양육자인 엄마 자신뿐이다. 그 길이 지름길이든 둘레길이든 내 아이에 대한 육아의 정답은 오직 엄마만이 찾을 수 있다.
[p.243]
언젠가는 전쟁 같은 오늘 하루도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사무치게 그리울 날이 오리라는것을.
[p.274]
엄마라는 존재가 없다면 이 별것 없는 일상은 마치 포말 위의 집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다.
(나는 종종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면, 내가 없어져 남은이들이 위태롭게 외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들은 그동안 내가 짊어졌던 육아라는 무게를 실감하며, 나를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를 것이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는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집을 지탱하는 기둥과 같아서, 엄마가 사라진다면 집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걸 알기에, 신랑이 짓궂게 놀리거나, 미적지근하게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내게 장난스러운 시비를 걸면 두말 없이 시원한 한방을 날린다.
"그럼 잘 있어. 나는 떠날게! 내 뒤를 부탁해. 아이들 잘 키우고!"
"안돼 그럴 순 없지. 여보가 사라지면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야!"
신랑은 바로 꼬리를 내린다.
그럼에도 내가 사라진다면 집안 분위기는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해본다.
8개월도 안된 둘째도 어린이집을 다녀야 할 것이고, 신랑과 퇴근이 늦은 어머니로 인해 아이들은 집에서 멀더라도 더 늦게까지 운영하는 어린이집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아침이면 아이들을 등원 시키기 위해 1분 1초를 운운하며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고, 급박했던 아침 전쟁을 뒤로하면 어느새 퇴근시간.
그것은 또 하나의 장거리 레이스의 출발선에 서야 함을 뜻한다.
신랑이든 어머니든 최대한 빨리 하원을 시키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어린이집을 향하고, 아이들은 어둑해진 밤하늘이 띄워져서야 어린이집에서 나올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안쓰러운 어머니는 일손을 포기하고 일찍 퇴근하시는 날도 많으리라.
내가 없는 일상은 어머니, 신랑, 아이 모두에게 큰 타격을 주며,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가 내리막길을 질주하듯 곤두박질치고 말겠지.
그렇기에 내 위치, 내가 맡은 역할이 평온한 가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안다.
그래서일까.
힘들 때면 내가 사라진 풍비박산의 집안을 상상하며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즐겁다.)
[p.288]
자식보다는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엄마, 자신만의 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의 희생은 하고 싶지 않은 엄마, 힘든 상황에 어떤 공감도 해주지 않는 엄마, 그런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자신만의 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의 희생은 하고 싶지 않은 엄마... 이게 내가 바라는 엄마 표본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인생이 있고, 한 번뿐인 삶이 중요하기에, 과도한 희생은 하고 싶지 않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정한 선을 만들어, 그 이상의 희생을 요구할 때면, 잠깐 멈춰 서서 희생이 합당한 상황인지 고민하며, 아니다 싶을 때는 희생이 모성으로 치부되는 관념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칠 것이다.
나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의 무게중심을 아이에게로 쏠리지 않도록, 내 인생도 소중히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p.296]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라지 못했던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에는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한 한 불행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사랑받는 법보다는 동생에게 사랑을 양보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학창 시절 반장을 도맡아 했고 집안의 아들 역할을 자처했으며 부모님에게 듬직한 딸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했다. 그것이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나도 둘째다.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장손에 장남인 남동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언니는 첫째라는 이유로 부모의 관심을 받았고, 남동생은 장손에 장남이기에 보살핌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사이에 끼었던 난.
어릴 적부터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게 모르게 체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듬직하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항상 착하게 지내며,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초등학교 때도 모범생을 자처하며, 바른 행실을 갖췄고, 성적도 올 수. 간혹 우가 썩이는 정도였다.
내 모습에 선생님도 부모님도 관심과 사랑을 주었기에, 초등학교 내내 일관된 모습으로 지냈다.
6학년 때는 부반장 선거에도 나가 엄마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날 아침이 잊히지 않는다.
빨간 마이를 장만한 엄마는 누가 봐도 딸이 한눈에 보이게 입혀주었고, 앞머리는 닭벼슬 머리로 드라이해주며 스프레이를 듬뿍 뿌려 머리에 힘을 팍팍 주었던 엄마의 손길.
부회장 후보 연설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가는 내 모습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던 엄마가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이 마무리되고 중학생으로 곧 올라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 있는 왈가닥 모습을 숨기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활발하게 지낼 수 있었음에도, 내가 만들어 놓은 갑옷에 끼워 맞추려 얌전한 아이로 지내야 했기에, 쾌활한 아이의 모습을 숨겨야 하는 내 모습이 갑갑했다.
점점 내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면, 내 모습 그대로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도 드렸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모범생의 탈을 벗고 내 모습 그대로 지내며 느꼈던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양 어깨에 매달았던 짐들을 벗어던지니 홀가분했다.
그 이후부턴 공부와도 멀어져서 중하위권을 맴돌았지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벗어던진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성적을 운운했던 분이 아니었기에, 살아가는데 큰 이탈이 아니라면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내가 바라던 모습 그대로 지낼 수 있었다.
저자도 나와 같이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도 이제는 안다.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기보단 내 안의 자신에게 사랑을 듬뿍 준다면, 그 이상의 행복이 담긴다는 것을.)
[p.310~311]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은 식탁 모서리에 세워둔 유리잔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깨어진 파편들은 멀쩡했던 손가락을 순식간에 파고든다. 평범한 일상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아이와 함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는 지치고 무료하지만 평범함이 깨어지는 순간 하루하루 온전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특히 아이가 아프면 일상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바뀐다. 엄마는 온몸의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고 아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축 늘어지고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아이가 아프면 사소한 일조차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이의 밥을 먹이는 일, 재우는 일, 놀아주는 시간까지 모든 순간에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아이가 아프다는 건 곧 엄마가 힘들어지는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p.338]
한꺼번에 세쌍둥이를 품에 안자 다리가 휘청거려 뒤로 넘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마치 연말 시상식 무대에서 꽃다발을 품에 한가득 안은 것처럼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을 때면 매번 가슴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