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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게 된 작가 고수리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만족도: ★★★★★



고수리 작가는 우연찮게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떤 루트로 그녀의 글을 읽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브런치에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그녀의 브런치에 안착해버렸고, 글을 읽고는 완전히 매료 돼버렸다는 것만 기억난다.

이어 그녀의 작가 소개란과 그녀의 사진, 잊히지 않을 이름, 인간 극장 방송작가였다는 그녀의 이력이 나의 마음을 또 한 번 움직였었다는 것도.


그녀의 글을 접하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란 생각을 했다.

매 이야기가 시 같고 동화 같았으니까.


고수리 작가를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녀의 첫 책 <우린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읽은 게 두 달도 채 안 된다.

따뜻하고, 정감 어린 단막극을 한 번에 수십 개를 본 듯 몽롱했기에 완독 후에 그 감동을 어찌 정리해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여태 주춤하며 미루고 있던 중 그녀의 두 번째 책을 읽어버렸다.

이번엔 완독하면 어떻게든 그녀의 이야기를 나의 빛깔로 풀어내겠다는 포부를 다잡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목을 투명하게 비쳐주는 핑크핏 유산지(?)와 아름다운 목차 디자인. 중간중간 짧은 글귀와 함께 꾸며진 일러스트, 흔하지 않게 쪽수표시를 오른쪽 하단에 이쁘게 꾸민 정성만 봐도 출판사 관계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분....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소중히 다뤄지며 사랑받고 있구나.'


충분히 그럴만하다 싶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따스하고 아름다운 동화 속에서 시를 읽는 느낌이랄까.

그녀의 글의 분위기는 신비로우면서도 프리즘을 통과하는 파스텔 빛깔과 닮았다.

그녀의 감성으로 녹아난 글들은 슬픈 이야기더라도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녀만의 소녀적인 감성이랄까. 시인 같은 감성이랄까... 이건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을 그녀만의 고유함이다.

각각의 이야기들 모두 아름답게 우수수 내게 쏟아져 내리기에 감흥을 쉬이 정리하기 어려운? 그녀의 책.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공유가 김고은과 캐나다에 가서 <사랑의 물리학>을 읊을 때의 그 장면과 분위기.

따스한 햇볕,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 속 아릿한 배경음을 바탕으로 한 소녀가 웃으며, 그에게로 다가온다.

모든 장면은 슬로우 모션이 되고, 매력적인 공유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시를 읊을 때의 분위기.

공유가 '쿵쿵 소리를 내며'라고 읊을 때 시간, 미소, 눈물, 아픔, 좌절, 인생, 사랑, 행복에 관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작가의 글은 공유가 읊는 시와 닮았고, 그 안에 담겨진 감성들은 공유와 김고은이 자아내는 표정의 떨림, 눈빛과 닮아 보는 이들에게 따스하면서도 아릿하게, 행복하면서도 애잔하게 다가온다.



첫 책에 이어 두 번째 책을 읽으며 한편으론 그녀의 많은 이야기들은 과연 어디서 출발되어 나오는 건지.

오래전 기억들을 어찌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지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적었던 일기의 흔적이지 않을까?

일기의 기록으로 인해 그녀가 간직한 이야기들이 세상의 빛을 발하게 된 것이겠지?!

역시 그날 그날의 기록은 한 사람의 보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이니까.



한 사람의 삶의 흔적 그 안에 담겨진, 꽃다운 시절이었지만 슬픔으로 얼룩졌던 집안사로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던 아픔들을 진심을 다해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써 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담담히 아픔을 덜어내려는 그녀의 간절함.

그로 인해 그녀의 진심들이 내게 울려대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아픔을 마주하면 나도 경건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상대방이 진실된 마음으로 내게 고백하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경건하게 그녀의 마음을 마주하게 된 것이겠지.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시 몇 편이 소개되는데, 이 책의 분위기와 한대 어울려 아름다운 낭독회를 하는 듯했다.

나는 시가 왜 아름답고, 시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인지라 시에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좋은 시들을 많이 알고 싶은 욕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몰랐던 시들을 접하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시들과 시인을 알게 되어 좋았다.

시간이 더 생긴다면, 책과 글도 좋지만, 다양한 시를 접해보고 흉내 내 보고도 싶다.


그녀의 두 번째 책 역시 내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첫 번째 책에 이어 두 번째 책도 내 책장에 아름드리 간직하며 감성이 메마를 때면 꺼내 읽어줘야겠다.

그녀의 진실된 글들은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이어나가야 됨을 확인시켜주었다.

살기 위해. 살아 내기 위해, 하다 보면 삶을 사랑하고야 말테니.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고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살고 싶어서. [p.245] "







[p.57~58]

"엄마는 왜 맨날 약속을 못 지켜."

남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애.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속상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안 오는 게 아니라 못 오고 있다는 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지만 못 지키고 있다는 걸. 그 애는 알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휴대폰 너머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학원 선생님인 친구가 그랬었다. 요즘 애들은 밖에서 놀 시간이 없다고. 엄마 아빠는 맞벌이에 바쁘고, 학교 끝나면 아이들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학원 여러 개를 뱅뱅 돌린다고. 저녁 시간 학원에 오는 애들이 '선생님 배고파요. 밥 못 먹었어요.' 소리가 정말 마음 아프다고. 어른이고 아이고 다 안타까운 현실이지 뭐.

그땐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아서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애를 보고 있자니 이게 진짜 우리 세계 이야기구나 싶었다. 그렇담 너무 쓸쓸한 세계였다.



[p.65]

블라인드에 걸린 해가 눈부셨다. 먹먹해진 시야가 제 색깔을 찾는 사이 어떤 글자들이 떠올랐다. 먼 데서 봄이 온다.




[p.69]

그걸 바라보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곧 다가올 겨울, 한지 몇 장으로 추위를 막을 순 없다. 커튼 살 형편은 안 되니 우리는 이대로 겨울을 나야 할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 셋 손길이 닿은 시가 하늘에 걸려 있을 것이다. 읽고 또 읽겠지. 겨우 몇 줄의 문장에 불과한 글자들이 우리에겐 따뜻함이 되겠지. 시를 껴안고 쏟아지는 햇살이 나른했다. 우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밥은 미루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긴 늦잠을 잤다.




[p.81~82]

포근한 저녁 공기와 뺨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 쉬이 쉬이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달리고 있을 뿐인데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와락 품에 안겨 오는 자유로움이 너무 좋아서, 나는 차릉 차릉 경적을 울리며 어두워진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

자전거가 달린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비벼온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스친다. 짙은 풀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풍경들이 영화처럼 지나간다. 단지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뿐인데 기분이 좋았다. 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행복이 내게 안겨 왔다. 자전거를 타는 저녁은 그랬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산다. 한때 내가 자전거를 잊고 살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만원 전철과 불 켜진 건물에 갇혀서 자전거 타는 법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하늘과 바람을 느끼는 일조차 빠듯한 하루가 안타깝다. 세상 사는 일도 자전거를 타는 일처럼 조금만 여유롭다면 참 좋을 텐데.



[p.107~108]

밖으로 나왔다.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철 지난 정장은 추웠고, 나는 상처받았다. 창피했다. 한심했다. 속상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엄청난 감정들이 마구 뒤엉켜 머릿속이 새하얬다.

(···)

괜찮다는 말조차 건넬 수가 없는 최악의 하루. 나마저 나를 다그치고 비웃는다면, 다시는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라도 나를 위로해야 했다.

실패도 좌절도 절망도 다 내 것이라고 애써 나를 토닥였다.




[p.200]

결국에는 나도 그런 자식이었던가. 오늘 나는 내 이기심을 보았다.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며 사실 나는 내 걱정이 먼저였다.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말에, 내려가야 하나. 얼마나 있다 와야 하나. 하던 일은 어떡하지. 애들은, 또 남편은 어쩌나. 내 걱정부터 했다.

괜찮다는 말에 다행이다 안도했던 건 엄마에 대한 걱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었을지도. 그 마음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전화하지 못했고, 그래서 오지 말라 딱 잘라 말했을 것이다.

아아. 사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더 염치없는 딸이 될까. 저밖에 모르는 끔찍한 딸이 될까. 이런 게 자식이라니. 기가 차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p.226]

반짝반짝. 까만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까만 밤을 지키던 할머니의 텔레비전. 소리 없이 반짝이는 불빛 아래 우리는 나란히 잠이 들었다. 그런 밤이 나는 좋았다.






행복, 슬픔, 삶에 대하여



[p.118]

"그냥 둬요. 적응하면 괜찮아져요."

이상하게도 미덥지 않은 의사의 말이 안심이 되었다. 마음의 상처들도 그냥 두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사실 그렇다. 반드시 모든 상처를 없던 일처럼 깨끗이 지워야만 제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기도 거의 불가능하고. 모든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던 날들. 돌이켜보며 나는 제 상처를 이리 건드리고 저리 건드리며 구태여 아파했던 것 같다.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방법도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p.146]

하기 싫은 건 하지 말라고. 행복은 견뎌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행복은 오늘 이 순간에만 반짝이는 조각 같은 것. 일단 잡아야 했다. 즐겨야 했다. 기뻐해야 했다. 아주 마음껏.



[p.158~159]

루쉰의 글. 젊은 날 나에게는 마음속에 간직한 글귀 하나가 있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보니 길이 된 것이다."

그때 나는 길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걸어가는 것이 내가 할 일, 내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어느 길이든 때마다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나의 속도로 걷는다. 걷다가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길게 이어진 나의 발자국이 나의 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때야 알게 되겠지.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나는 그녀들에게 마음을 보냈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p.221]

"슬픔이란 게 그런 거 같아요. 한 가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랄까요. 미움 아픔 공허 상실 같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거대한 마음이요."







글을 쓴다는 것은...



[p.77]

악몽을 꾼 날은 아침까지 잠들지 못하고 글을 썼다. 악몽에 대하여, 상처에 대하여, 외로움에 대하여, 그것들을 모두 가진 나에 대하여. 그런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쓰면서 밤을 견뎌냈다.




[p.111]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 쓰기 위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내 맴돌고 사무치다가 끝내 손끝으로 써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쓰게 될 테지만 쓰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 결국 방법은 하나뿐.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p.153]

다시 스페인 남자의 말을 떠올려본다. 죽기 전에 내 책을 쓰는 일. 그건 곧 인생을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먹고살기 바쁘게만 살았기에 의미 없는 낱말처럼 흩어져버린 내 삶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시 기록하는 일. 늦게라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몰랐을 것이다. 책을 쓰는 일은 절대 어렵지 않다는 걸.



[p.245]

한때 아프게 글 쓰던 시기를 보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미워하고 좋아했던 슬퍼하고 행복했던 내가, 진짜 나였다. 나빴고 아팠던 이야기도 모두 나의 것,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읽고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비로소 내 술픔은 따뜻해졌고 내 아픔은 빨간약이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힘이 생긴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고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살고 싶어서.






좋았던 시들



[p.139]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위로.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 메리 올리버 <기러기> -






[p.222~223]

어떤 슬픔들은 따뜻하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그 알량한 온기로

서로 기대고 부빌 때,

슬픔도 따뜻해진다.

차가운, 아니다, 이 형용사는 전혀 정확하지 않다.

따뜻한 슬픔의 반대편에서 서성이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주어야 하는가.

시린 슬픔?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다.

기대고 부빌 등 없는 슬픔들을 생각한다.

차가운 세상, 차가운 인생 복판에서 서성이는 슬픔들...


- 조병준 <따뜻한 슬픔> -






계속해. 우린 아티스트야 p.161



(···)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쓰는 일'이 결국 삶의 기록이 되었다, 라고 바꿔 말해도 이상할 것 없다. 뛰어나지 않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꾸준히 만든 것들을 모으면 나의 인생이 된다.

스물다섯이었나. 새벽에 글을 쓰다가 음악 하던 친구와 메시지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밤새워 글을 쓴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그냥 나만 좋아서 하는 일 같아."

친구가 말했다.

"계속해, 우린 아티스트야. 내가 알고 네가 알아."


아티스트란 말이 그처럼 가깝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젊은 우리 좀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밤, 우리는 주인공처럼 웃었다.

불 꺼진 세상에서 반짝.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에 무언가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나는 좋다. 응원하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날 친구의 말처럼 "계속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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