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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이규천

만족도: ★★★★★


아빠의 입장에서 양육에 대한 생각이 엄마와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던 차에, 가수이자 법조인 이소은의 아버지라는 저자의 수식어가 나를 잡아당겼다.


예전에 가수 이소은이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엄친아니 당연히 부모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저 자리에 갔겠구나.'라는 생각과 '역시 있는 집 자식들은 출세하기 쉽구나.'라는 현실에 대한 체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국제상업회의소 뉴욕 지부에서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그녀의 이력을 보며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의 울타리가 내 주위로 쳐져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이소은을 보며 부러움과 거부감이 들었음에도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을 읽어보니 이소은은 생각처럼 잘 살지 못했고,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다.

나의 편견이 한 사람을 달리 바라볼 뻔했다.

잘 살진 못했어도, 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무한한 지지를 보내준 아빠와 엄마가 있었기에, 그녀들은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책 뒤표지의 문구가 나를 끌어당긴다.


"내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엄마 아빠의 필독서!

아빠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딸들. 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아빠. 피아니스트 이소연, 가수이자 법조인 이소은, 두 딸을 독립적이고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인도한 아빠의 믿음과 절제, 기다림의 이야기."



이 책은 두 딸이 어떻게 독립적이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순간순간 가족과 함께 해온 아빠의 삶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아빠와 엄마의 양육관이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답을 찾아보기 위해 펼쳐든 책이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양육관도 동상이몽일 거라 생각했지만, 저자 부부는 일심동체였다.

각각 아빠, 엄마라는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라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고, 성별의 차이가 아닌 개개인의 가치관으로 양육관은 차별성을 띄우는 것이었다.


각각 추구점이 다르더라도 그 사이에서 중간지점을 찾아 화음을 내면 큰 문제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다행히 나와 신랑은 양육관이 비슷하다. 더구나 저자와 닮은 생각을 하는 부분이 많아 얼마나 밑줄을 그었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 역시도 '방목'이라는 양육관을 추구한다.

부모가 아이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지적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깨달으며 나아가기보단, 잔소리로 치부하기 쉽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소한 잘못이나 비뚤어진 모습을 하더라도, 스스로 경험하며 얻은 깨달음으로 옳고 그름을 알아 나가며 성장해 나간다고 믿는다.

만약 너무 엇나간다면 그건 바로잡아줘야겠지만, 그 선 안에서는 아이들을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방목'이란 단어가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방목'의 핵심은 믿음에서 출발하고, 말하기는 쉬워도 부모의 절제와 고통이 따른다.


아이의 어설픈 생각과 쉬운 길이 뻔히 옆에 보임에도 어려운 길로 들어서려는 안타까움을 참아야 한다.

아이를 믿어주는 마음, 기다려 주는 마음, 아이들이 손을 내밀면 들을 준비를 하고 부모의 자리에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있어줘야 한다.


저자 역시 이처럼 두 딸을 키웠고, 우리 집도 부모님이 바빠 자질구레한 간섭을 일일이 받은 편은 아니었다.

어쩔 땐 너무 무관심한 게 아닌지 서운하기도 했다.


연락도 없이 외박하는 고1인 딸에게 연락을 주거나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주변 친구들에게 통금 시간이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친구들과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았다.

부모님이 간섭을  안 하니  원 없이 놀고, 친구들과 해보고 싶었던 리스트들도 경험할 만큼 하니,  고 2 때부터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느꼈다.

또한 스스로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고 깨닫고 고치는 부분도 생겨났다.


'엄마는 우리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깨달으며 성장한다고 믿어주었던 걸까?'

'본인이 느끼지 않으면 부모가 뭐라 말해도 잔소리로만 들릴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 외로도 부모님은 우리가 하려 하는 모든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고 지지해주셨다.

개성 만점인 우리 언니,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작은 딸, 막내아들의 도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내 꿈을 위해 뒤에서 든든한 지원과 지지를 해주셔서 고맙기 그지없다.

나라면 아빠의 디자인 계통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디자인 전공인 두 딸들이, 본인들의 꿈만 생각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딸들이 회사를 물려받는다면, 더 크게 키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우리에게 훈계하거나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으셨고, 우리의 꿈을 지지해주셨다.

'열심히만 해라.' '최선을 다해라' '실수해도 괜찮다.' 잘했다. 괜찮다.' 와 같은 말을 해주시며 말이다.

그런 아빠의 태도에 너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죄송하다.



부모가 되니 이제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자식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과정까지 부모의 감정들을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대신해 줄 수 없음을, 좌절과 절망으로 괴로워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내 부모님도 이랬겠구나....'


나도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나의 울타리를 지어 살아가듯, 내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우리 아이들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함께 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20년 안팎이다. 

100세 시대에 20년을 함께 하는 것이니 그렇게 보면 길다고도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나중엔 함께 하고 싶어도 서로 바빠 모이기도 힘듦을 알기에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차곡차곡 내 마음에 쌓아 나가야겠다.


이 책은 무엇보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여 나의 부모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자식들이 원하는 바를 지지해주었던 나의 부모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좋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기에, 크게 엇나가지 않고, 지금의 위치에 바르게 서 있다.







어른의 관점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자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p.12~14]

아이들이 출세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을 어떻게 내려놓을지 고민했다. 아내와 나는 정말 그 욕심을 최대한 내려놓고 살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간다. 결코 내 인생이 아니다. 새롭게 세상을 살아갈 아이에게 이미 충분히 살아온 어른의 관점에서 욕심을 주입하는 것은 아이가 나아갈 대로를 샛길로 좁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른의 관점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자.'


(···)


나는 자식이 소유물이 아니기에 내 뜻대로 해서는 안 됨을 잊지 않으려 했다. 난 그저 아이가 힘들 때 와서 쉬도록 넉넉한 언덕이 되어주고 싶었다.


머리가 둥근 우리 인간은 생각을 아무 쪽으로든 바꿀 수 있지만, 부모는 아이의 그 자유로운 흐름을 교육이라는 틀에 가두려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나 교육 환경 탓이기도 하다. 아이가 뇌를 암기용 기계로 쓰지 않고 둥글둥글 활용하며 용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는 이것이 늘 고민이었다.


(···)


아이는 '어른보다 나이를 덜먹은 인격체'로 어른의 소유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들이 옳다고 판단할 때면 지체 없이 그 의견을 수용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사 학년일 때 내가 한 교육 과정을 제안하자 아이는 당돌한 요구를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 깊이 뉘우쳤다.

"엄마 아빠, 나한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유익한 것을 하라'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사실 부모가 아이의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아이를 진심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는 길임을 확신했다.





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들




[p.25]

삶이 내게 던져준 가르침은 아주 많지만 나는 최소한 의무 중심의 삶, 부지런한 삶, 열정과 끈기 그리고 자기 책임의식만큼은 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p.46]

나는 내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p.257]

아내는 항상 딸들에게 성공과 성취로 얻는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얻는 만족과 기쁨이 곧 보상이라고 말한다실제로 아내는 아이들의 삶 안에 들어오는 다양한 일과 사건이 당사자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그들을 삶의 다른 경험으로 안내하고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남들의 칭찬과 찬사는 들을 때는 기쁨도 주고 격려도 받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 진정한 힘은 삶의 어려운 경험에서 터득한 '앎'으로부터 나온다. 직접 부딪쳐서 터득하고 알게 된 것은 평생의 자산이다.






부모의 노력/양육관


[p.39~40]

우리 부부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하는 진솔한 대화, 자녀 존중, 탈권위와 인격적인 일상의 대화가 아이들과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나는 아이가 본성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양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p.42~44]

아이들의 성장이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려면 부모가 정보의 주입이나 반복을 강요하기보다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이 드러나고 발전하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가 아니면 누가 아이들의 잠재 능력을 최대로 드러나게 도와줄 수 있을까? 가정은 학교나 사회에서 위축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보듬고 감싸 원기를 되찾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다.

(···)

누군가가 내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느냐고 물어올 때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방목'이다. 내게 방목이란 매우 단순한 것이다.


'아이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이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절제된 간섭,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인내심, 원활한 가족관계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다.






[p.55]

방목은 무관심이나 무절제가 아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게 아이들의 본성과 독특함을 

최대한 보장하고 유지해주려는 세심한 배려다.


말하기는 쉬워도 사실 방목은 부모의 절제와 고통의 산물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신명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도록 돕는 방식 중 방목만 한 게 없다.





[p.57]

양육에서 내가 늘 주의한 것은 내 욕심을 고집하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일이었다. 딸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는 언제나 이렇게 강조했다.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 것이지 엄마 아빠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너희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p.104~105]

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이는 사소한 잘못이나 비뚤어진 모습을 어른들이 판단이나 비난 없이 기다려주면, 때가 되어 아이들 스스로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알고 그 시기를 벗어난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부모가 인내하고 배려하는 것은 아이들의 넉넉한 품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을 너그러운 품성의 소유자로 자라게 하며 외유내강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부모가 아이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믿음이다.


(···)


믿음이라는 매개체를 미래사회의 화두가 되는 융합이나 호환성을 키우고 확대하는 데 최적인 가정의 필수 덕목인 것 같다. 믿음은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면 아이를 향한 부모의 믿음이 커진다. 부모가 아이에게 준 믿음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와 자녀의 관계 맺음에서 그 기저에 믿음이 자리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부모와 상의한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믿음의 통로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p.127]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동기는 자긍심에서 나온다. 자긍심의 기본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이 외적 요소, 즉 시험 성적이나 아이의 잘잘못에 따라 변하면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친구와의 갈등으로 불편해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견을 묻고 조언하며 함께하면 아이는 문득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감을 찾는다.






[p161]

부모가 바르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p.165]

흔히 청소년기를 맞은 아이들은 심리 변화에 따라 자신의 문제를 잘 털어놓지 않지만, 아빠와 함께 운동을 하면 그 심리적 장벽이 쉽게 허물어진다. 어릴 때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운동 습관은 아이들이 사춘기를 원활하게 보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p.171~172]

아이들은 어른의 '기다림'을 먹고 자라는 열매다. 빨리 결실을 맺게 하고자 조급하게 다그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과일이 익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들의 성장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

지나친 간섭은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스펀지 같은 뇌를 가진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은 가능한 한 배제할수록 좋다.

우리는 성질이 급한 민족이다. 일처리도 빨라야 하고, 밥도 대개 대화 없이 빨리 먹고, 경제발전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눈부시게 빨랐다. 하지만 교육에 관한 한 기다림,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부족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더라도 그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아이가 스스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어떨까? 과외나 사교육은 아이가 무언가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약간 도움을 주는 정도로 충분하다. 특별히 아동기는 정보의 축적보다 미래에 채우게 될 크고 튼튼한 저장소를 만드는 시기다.

(어쩜 이렇게도 내가 추구하는 양육관과 같을까.)





[p.262]

내가 귀담아듣지 않았으니 소통이 될 리가 없었다. 소통은 상대의 말을 온 마음으로 듣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당신이 하실 말씀만 하고 내 생각은 도통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내가 왜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반발심이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말을 무시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특히 사춘기 자녀와 원만하게 보내지 못하면 이후의 관계를 건전하게 지속해 나가기가 어렵거나 아이들이 성장한 뒤에도 관계 회복이 쉽지 않다고 한다.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빠와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더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 열어두었던 마음의 문을 닫고 열쇠까지 채워버린다.





[p.270]

걱정과 노파심에서 하는 말은 자칫 훈계나 잔소리로 변질되기 쉽다. 빈 마음으로 아이들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야 한다. 설사 미숙하고 설익어 될 성싶지 않은 생각이나 계획을 늘어놓아도 속내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아이는 아이니까 얼마든지 어설플 수 있다. 그 어설픔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 격려하면 된다.

인류 역사에 부모로 살다 간 모든 사람이 지금의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살았을 테고, 우리의 아이들 역시 그런 부모로 살아갈 것이다.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더욱더 인간적인 완성에 가까워진다.





[p.276]

나는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고 내 방식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미래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내 방식이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칫하면 과거에 얽매여 그 잔재를 되풀이하기 쉽다.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지키려는 5가지 과제


1. 아이들이 잘못하거나 실수한 것을 강조하기보다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2.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좋은 성적 자체만 칭찬하지 말고 그 노력을 더 많이 칭찬한다.

3. 아이의 실패를 의연히 받아들인다.

   : 무엇보다 실패가 곧 부모의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한다.

4. 아이들의 호기심을 격려해 그 범위를 넓혀줌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한다.

5. 아이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족 모두가 나서서 함께 충분히 기뻐해 준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누구든 아픔을 겪는다




[p.73]

실망과 낙담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와 실체를  체험한 딸아이는 엄청난 절망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커피숍 테이블에 있는 냅킨 한 통을 우느라 다 써버렸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실망이 컸을까. 어떤 위로나 격려도 소음이나 다름없었으리라.

(이소은씨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도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이겨내며 걸어갔구나. 그녀는 천재가 아니고, 좌절을 극복하며 끈기있게 나아간 사람이었다.

국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를 선망하며, 당연히 머리가 좋고 박식하고, 집안에 돈이 많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녀는 천재가 아니므로 친구들보다 뒤떨어지는 자기의 한계를 누구보다 괴로워했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선망하는 자리에 있는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절망과 좌절을 거쳐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이 많아서, 집이 받쳐줘서 그 자리에 쉽게 갔다는 선입견은 위험한 건지도 모르겠다.

겉포장만 보지 말고, 그 내부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 그들에게 박수를 쳐줘야 한다.)





[p.244]

사람의 두뇌는 정말 경이롭다. 큰 충격과 위험을 경험하면 그다음에 오는 사소한 두려움에는 반응하지 않나 보다. 딸아이는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발휘하여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 열정은 무모함에서 발효된 용기일까. 피아노를 향한 열정과 집념으로 딸이 얻은 결실은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소중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p.267]

인생길에는 숱한 일과 사건, 사고, 문제가 널려 있다. 인생 사이클에서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온갖 고민과 고난이 함께하지만 그걸 이해하고 헤쳐가는 것 자체로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행복할 때는 행복을 누리고 고난이 닥쳐오면 '아, 이번에는 더 크게 성장하라는 거구나'하고  더 힘을 내 나아가면 그뿐이다.





공정한 사랑

형제끼리 비교와 차별은 절대 금지!



[p.255]

물줄기는 이리저리 갈라지지만 결국에는 제 갈 길을 찾아낸다. 하나의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 데는 다 뜻이 있을 터이므로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불평등과 불합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아이에게는 개성과 그 나름대로의 특별함이 있다. 더구나 자랄 때의 소외감과 부족감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 상처가 될 수 있다.





[p.256]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중에 크고 작은 편견과 오해로 억울함과 피해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성인이 되어도 치유되지 않고 굳어버린 딱지처럼 그대로 남는다.

부모는 말수가 적고 의연한 척하는 아이에게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아이일수록 오히려 관심을 더 갈구한다. 부모가 관심을 기울이면 묘하게 눈빛만 봐도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구나 하는 감이 온다.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바람처럼 휙 지나가므로 늘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딸들과의 일대일 만남으로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면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기회로 삼았다. 부모는 아이에게는 아무리 퍼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다.





[p.257]

일상생활에서 아내는 가족에게 편견이나 왜곡 없이 늘 공정하려 애썼다. 동생을 향한 큰딸의 우정과 사랑, 언니를 대하는 동생의 존중과 사랑이 오염되지 않고 지속된 데는 아내의 세심한 배려가 한몫했다고 본다.

공정함과 균형은 합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부모가 똑같이 대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아이들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늘 눈높이를 아이들의 입장에 두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부득이 차별해야 할 일이 생길때는 소외감을 느낄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인데, 가족 간의 사랑과 관심도 마찬가지다. 균형이 깨져 기울어지면 결국은 바탕까지 금이 가기 쉽다.







[p.252]

부모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자식이 고통을 겪으면 자식보다 더 아픈 법이다. 아이가 눈물을 흘리면 부모는 피눈물을 흘린다. 대신 해줄 수도 없고 정말 답답했다.






[p.278]

믿고 의지하며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삶이 더 안정되고 풍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자녀의 멘토가 되는 것은 어떨까? 지위가 높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상관없다. 관심, 사랑, 연동으로 자녀와 소통하고 아빠로서 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인간적인 친절과 인정을 바탕으로 한 관계로 충분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느리고 서툴게 아빠가 된 내 애정 어린 조언을 꼭 실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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