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있어야 할까? 없어야 할까?

주제_베이비박스에 대한 영상을 보고 후기 작성하기

by 금머릿

2009년에 설치된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들의 수는 해마다 증가추세였다. 2010년에 4명으로 시작한 아기의 수는 갈수록 증가하여 2013년에는 252명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베이비박스의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다른 곳에 유기했을 수 있다. 점점 미디어를 통해 베이비박스의 존재가 알려지고, 막막한 상황에서 그곳을 찾는 미혼모들이 많았을 것이다.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원도 지역에서 서울까지, 아기를 버리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미혼모도 있었다. 이처럼 통계적으로 버려지는 아기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최근 그 증가추세가 주춤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일까? 아기를 유기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니,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좀 더 발전한 것일까?

그렇다면, 베이비박스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렇게나 유기되다가 생명을 잃는 경우가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베이비박스 때문에 숱한 생명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그 박스가 오히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믿을 구석이 있을 때 발도 뻗게 되는 법이니, 베이비박스는 누군가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의견 사이에서 나 역시 정확하게 어느 쪽이다 하지 못하고, 그저 머물러 있다. 과정과 현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 땅에 태어난 아기는 소중한 생명체이고, 우리 사회가 따스한 손길로 품어 안아야 할 존재이다. 그런 아기에게 베이비박스는 가장 절박하고 위태로운 순간에, 구원의 박스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박스가 있으니 책임감을 버리고 그냥 거기에 넣자라는 생각으로 책임지기를 포기하는 어린 친구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상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팽팽한 두 의견 사이에서도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태어난 생명을 지키느라, 그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우리는 그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가능하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힘과 목소리를 모아야 하는 게 아닐까.

가정마다의 노력이 가장 기본일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칠 때,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가르침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일에 사용되는 성(性)이라는 것이, 단순히 쾌락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가르침 또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요즘 학생들의 성교육 시간에 피임법을 알려주고, 너와 내가 합의하에는 얼마든지 관계가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곳이 있다. 이러한 교육은 아이들을 험한 세상으로 너무 일찍 끌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아이들이 아니니, 안전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초등학생 학부모를 상대로 한 강연이었다.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가르치기 이전에 불신에 근거한, 사고를 수습할 방도로서의 가르침을 주는 게,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성교육이 맞을까?

아기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부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슬프게도 아기를 가질 조금의 마음도 없는 어린 친구들에게 아기가 생기는 경우도 이처럼 적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이 사회는 참 아이러니의 총합체인 것 같다.

미혼모의 아기나 장애아로 태어난 아기도 지켜져야 한다. 베이비박스가 필요한 분명한 이유이다.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기를 갖지 않도록 인간은 신중해야 한다. 제대로 된 교육과 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기들의 울음소리에 대한 면역이 강하지 못해, 영상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끝내 관심을 가지고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미어지는 마음을 감내하면서까지 영상 제작자가 그 울음을 끝내 담은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부터 내 자녀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역자들을 응원하고, 이들을 도울 만한 사회적 시스템이 잘 갖춰지기를 바라 본다. 모두가 행복하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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