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_쓰고마비 최종 후기
1. 나는 웹소설로 드라마 제작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2. 나는 뱃속 아기를 지울 뻔한 적이 있다.
3.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얼마 전,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가졌다. 같은 교회 공동체였고, 적어도 나와 최소 1년 이상, 최대 14년을 함께해 온 이들과의 모임이었다. 모임의 인도자는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 3가지를 적으라고 했고, 그 중 2개는 진실, 1개는 거짓으로 쓰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맞춰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음 문을 여는 오프닝 게임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의외로, 그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인상 깊게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위의 3가지를 나열했고 차례로 발표했다. 사람들은 너무 쉽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어댔다. “3번이요!” 하나같이 같은 번호를 외쳐댔다.
나는 너무 의아했다. 내가 웹소설을 쓴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어서, 당연히 1번이 거짓이라는 것을 다 알 줄 알았다. 내가 쓴 웹소설로 전자책을 출간한 적은 있지만, 드라마 제작에 대한 어떤 제의도 받은 적이 없다. 그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동네방네 알리고도 남았을 거다. 그런데 몇 분이 그러셨다. “제의받고 거절하신 거 아니에요?” 하하... 이 사람들, 나를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민망한 웃음만 나왔다.
우리 집 세 아이 중 둘째 아이는 심장이 기형이다. 다행히 기능에 이상이 없어서 아무런 수술적 치료 없이, 일상을 너무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태아 시절, 장애에 대한 가능성과 사산에 대한 위험이 있어서 온 가족이 아이의 생명을 어찌해 볼까 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흘린 눈물을 모두 모은다면 작은 연못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위험 부담에도 남편은 아이를 낳자고 말했고, 나는 동의했다.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어서라기보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심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2번은 진실이다.
3번도 진실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째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3번이 거짓이라고 외쳤을까? 사실, 그 이유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와 맞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모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나일 때가 많다. 한 명이라도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어도 끝까지 머물고 싶어진다. “조금만 더 있다 가세요.”라는 말로 누군가를 붙잡아두기를 반복하는 나를 가리켜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쟤는 혼자 있는 거 싫어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해.”
나는 분명히 말했다. “저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해요.” 글쓰기는 혼자 있을 때 가능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농도 짙게 오래 지속되면 꽤 괜찮은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그 시간을 최선을 다해 누리고, 또 혼자 있는 시간에는 내면의 나와 깊은 만남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누릴 게 있는 것. 그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이 글쓰기 모임이다.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는 게 맞아서, 얼마든지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동시에 심리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동료들과 함께 있는 것이어서, 수다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이 묘미를 아는 사람,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혼자 있으나 혼자가 아니다. 25명이 북적대고 있어 시끄러운 듯하지만, 또 어떤 때보다도 고요하기도 하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본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도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 나의 삶을 깊게 숙고하면서도 누군가의 삶에 기꺼이 응원 하나 보낼 수 있는 것.
그것의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봄과 여름에 이어 가을의 열매는 꽤 달콤하다. 혼자서는 맺기 어려웠을 가을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까. 이미 한 편 한 편에 대한 피드백은 충분히 받았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없는 곳에서의 작정한 호의들이지만, 받아먹어도 해롭지 않을 무수한 댓글들.
나에게도 맛있었던 그 호의를 표현함에 있어 나 역시 인색할 필요가 없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읽었고, 반응을 보였다. 글을 읽고 감상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로움. 글을 정독할 수밖에 없고, 글쓴이에게 엄청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읽은 것과 피드백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글쓰기 공동체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길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나를 들여다본다. 함께 쓰는 시간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 두 시선이 만나는 지점에, 사랑이 있다. 분명...
성경에서 말하는 십계명 중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는 신의 편지다. 그 계명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 탐내는 마음까지 잘못이라며, 마음마저 다스리란다. 그 율법이 어렵다면, 그냥 글쓰기 공동체에 오면 된다. 이거저거 따질 것 없이, 그저 사랑하게 된다. 글쓰기 동료라는 이웃을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욱 좋아하게 된 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사람이다.
쓰고마비 동료 여러분, 한 달이라는 적절한 시간 동안 함께여서 참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저마다 쓰는 깊이가 달랐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도 달랐고, 뱉어낸 양도 달랐지만... 이곳에 있었고, 나와 함께 너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음은 분명한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에 의미를 두며 이 10월을 잘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디 좋은 기억만 가지고서 같은 마음으로 이 쓰고마비를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쓰고마비를 열심히 했으니 진정한 천고마비의 계절을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높은 하늘을 만끽하며 커다랗게 숨 고르시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니만큼 잘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