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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을 다녀와서...

다녀오길 잘했다

by 금머릿

시댁의 막내 이모부님께서 돌아가셨다. 성탄 발표 준비로 정신없는 와중에 남편이 귀띔했다. 다녀와야겠다고. 알겠다고 했다. 늘 그렇듯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남편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뭐가 문제지?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의 장례식에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결혼생활 20년 동안 단 한 번의 교류도 없는 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이 이유가 되어, 집안의 대소사에 자발적으로 제외된 적이 많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도 없는데, 뭐 굳이 슬픔을 애도하고 자시고 할 것인가.

그런데 남편의 떨떠름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전화를 걸었다. 언제 갈 거냐 물었더니 곧 출발할 거란다. 집에서 30~40분 걸리는 멀지 않은 안성이라는 곳이란다. 같이 가자고 했다. 반가워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하는 게 이거였어?

오로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행했다. 이제 막내도 많이 컸으니, 아이들 핑계로 어딜 못 가지 않는다. 아무리 멀지 않은 곳이라 해도, 혼자 운전해서 조문을 다녀오려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그저 그런 가벼운 마음, 아니 남편에 대한 애정으로 출발한 발걸음이었다.

“아이고, 너희들이 왔구나. 내가 늘 너희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는데. 상이 나니,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나를 알아보는 막내 이모님의 반김이 어리둥절했다. 티 내지 않고 ‘네, 네, 이모님, 저희가 왔어요. 그간 안녕하셨어요?’라고 응대했지만, 여전히 속마음은 나를 어떻게 아시지? 라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네 엄마와 날마다 통화하면서 너희들 이야기를 들었어. 언니가 죽고 없지만, 지금도 나는 너희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너 직장은 여전히 잘 다니고 있어? 삼 남매는 잘 자라고 있지? 며늘아기는 아직 전도사로 섬기고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오신 것만 같았다. 외모도 많이 닮으셨는데, 목소리나 어투까지 어쩜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나이 들어 등이 굽은 모습이나 한쪽 다리를 저는 모습마저 우리 어머니와 너무도 닮아서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쁘다고 그렇게 칭찬하더니, 정말로 너무 예쁘네.”


어머니께서 당신의 동생에게 나를 가리켜 예쁜 며느리라고 소개하셨다니, 더욱 울컥하는 마음이었다. 살아계실 때, 그다지 살가운 며느리가 아니었다. 그저 당신 아들을 사랑하니, 내 아이들의 할머니이시니, 최소한의 도리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그런데 이모님과 대화하시며, 이토록 우리를 예쁘게 묘사하셨고, 사랑하는 마음마저 전달하며, 또 하나의 기도를 일으켜 세우셨다니. 내가 잘했고, 내가 잘나서 잘 지내나 싶었는데...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기도를 하나님은 사용하고 계셨던 거다.

나 역시 기도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도리이지 싶다. 장례가 마지막까지 무사히 잘 치러지기를, 병환도 없이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신 분으로 인해 온 가족의 마음이 황망할 텐데 그 마음 하늘 소망으로 잘 보듬어지기를, 반쪽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모님이 많이 외롭지 않으시기를, 남은 생애 주님과 동행하며 늘 평안하시기를...

형제들 대표로 참석하여 조의금만 전달하려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천천히 식사하며 이모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한없이 고마움을 표하는 사촌 동생들에게도 진심을 담은 미소를 건넸다. 발인예배까지 참석하며, 한적한 가족의 자리를 채웠다.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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