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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베어 물어보시겠어요?

겨울에 돌아보는 여름 책 이야기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by 금머릿

아이러니했다. 무작위로 들리는 속마음이 저주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작가는 ‘유찬’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그런데도 두 인물의 이야기를 1인칭 주인공 시점, 그야말로 마음속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어떤 의도였을까?


회차마다 글의 앞자리에는 두 인물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지금부터 하지오의 마음을, 유찬이의 마음을 이야기해 줄 테니, 마음껏 들여다보라는 꽤 설득력 있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듯했다. 어찌 보면 친절한 안내 같기도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강요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터.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 속마음을 들여다볼 것인지, 말 것인지는 독자의 선택이다. 찬이와 내가 다른 것은 그것일 테다. 찬이는 그것을 선택할 수 없어, 에어팟으로 꾸역꾸역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반면, 그러한 찬이의 마음이 너무도 궁금해, 나는 기꺼이 속마음 들여다보기를 선택했다.


‘이꽃님’이라는 작가의 유명세도, 최근 여름마다 주변에서 언급되는 이 책,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의 유명세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굳이? 라는 마음으로 선뜻 선택하지 않았던 이 소설이 마치 운명처럼 내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차 가게 된 도시에 유명한 서점이 있었고, 시간이나 때우자며 들어간 곳에서 중학생 딸아이의 부탁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사다 달라고. 첫 문장부터 힘 있게 나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은 지오와 찬이의 이야기는 지금 이렇게 내가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감상문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얼른 두 사람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안달 난 만큼, 찬이는 듣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쳐야 했다. 수업 시간에도 에어팟으로 귀를 막을 수 있기 위해서는 공부를 월등하게 잘해야 했다. 전교 1등, 전국 3등. 누구도 그 에어팟을 빼라고 간섭하지 못할 정도로.


그런 찬이에게 ‘하지오’라는 전학생이 나타난다. 찬이에게 지오는 단순한 전학생이 아니었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는 존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존재. 찬이에게 지오는 구원과도 같은 아이였다.


실수로 찬이의 에어팟을 밟아 망가뜨린 지오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버린 아빠의 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물어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 이 설정은 두 친구의 엇갈린 마음 상태를 드러내기에 매우 탁월했다.


물어줄 돈이 없어서 지오는 필사적으로 찬이를 피하고, 찬이는 어떻게든 곁에 있고 싶어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이 대비가 독자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목적이 다른 두 고군분투가 눈물겹다가도, 어서 그 속마음을 서로가 알아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되는 것이다.


사연 깊은 두 친구는 서로에게만큼은 제법 용기 있고, 솔직한 면모를 드러낸다. 그것이 속마음이 들리게 된다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그 소리를 잠재우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희망적이고도 설레는 요소와 어우러져 매우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너희 둘은 함께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관계야, 라고 고백하게 할 만큼.


사실, 지오의 특별한 존재감을 먼저 느낀 것은 찬이였다. 물리적으로 그 의미가 너무도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오의 찬이를 향한 관심은 속도가 좀 느렸다. 필요에 의한 동행이 아니었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생채기 난 지오의 마음을 찬이가 두드린 뒤에야 움직인 마음이었다.


속도의 차이가 결국 둘의 어긋남으로 끝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야기 초반에 찬이는 지오에게 말했다. “네가 내 에어팟이 되어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부탁한 것이지만, 지오의 감성을 건드려 버렸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속마음이 들리는 능력’, 그것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다가 점점 믿게 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어느새 지오는 찬이의 고요를 위한 에어팟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찬이를 아프게 했던 5년 전 사건의 전말도 드러난다. 앞에서 조금씩 ‘5년 전’이라는 떡밥이 뿌려져서 대충 예상은 했지만, 막상 회수되는 그 떡밥에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찬이의 부모님을 앗아간 화재는, 안타깝게도 추위에 떨던 새별이와 관련이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피웠던 불씨가 화재의 원인일 것 같아, 파출소에 가서 자수했던 열세 살 아이.


부모도 없이 줄줄이 동생이 딸린 소년가장으로서 늘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그 아이를 지오의 친부였던 남 경사가 안쓰럽게 여겼고, 급기야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감싸 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오히려 찬이 부모의 죽음의 원인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찬이는 슬픔의 나락에 빠지게 되고, 원치 않는 속마음을 들어야 하는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듣게 된 그 능력은 오히려 찬이를 용서의 마음으로 이끄는 장치였는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의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소리가 가장 역겹고 끔찍했던 찬이여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또한 찬이 할머니네 담벼락에 와서 너무도 미안해하며 사죄하는 새별이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을 죽게 한 새별이와 그 죽음을 방관한 남 경사와 마을 사람들. 찬이는 그들 모두가 불행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수사도 없이 사건을 종결해 버린 그들의 위선이 찬이로서는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찬이는 그들이 불행에 닿는지를 관찰하는 힘으로 살아왔다. 지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찬이가 듣지 못한 속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능력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마음이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에게 비슷한 상처가 하나씩 있었다. 그것은 불을 끄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뜨거운 불 속에서 찬이가 들었던 ‘살아야 해’라는 마음의 소리는, 죽어가면서까지 아들을 지킨 부모님의 마음과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한 데 섞인 소리였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최선의 선택이 항상 옳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 그것은 나에게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 남 경사와 마을 사람들은 최선의 선택을 한 거였고, 각자가 품은 선한 마음으로 새별이와 찬이를 돌보았던 것이다.


새별이가 피운 불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 분명히 불이 꺼지는 걸 확인했다는 어린 새별의 고백이 나로서는 참 고마운 거였다. 모두가 지켜주고 싶어했던 가여운 아이를 나 역시 정죄하지 않고, 품어 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속마음은 지오를 통해서 찬이에게 전달되었다. 지오는 무작위로 쏟아지는 속마음을 멈추게 해주는 에어팟인 동시에, 반드시 들어야 할 속마음을 찬이의 귀에 닿게 하는 성능 좋은 에어팟이었다.


찬이의 일을 돌아보는 와중에 지오의 회복도 일어났다. 열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생긴 아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던 아빠는 지오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었다. 그 일을 책임지기 위한 과정에서 너무도 좋아하고 잘하던 유도를 그만두게 될 것이 두려웠다는 것을 지오는 뒤늦게 알게 된다.


그리고 새별을 지키기 위해 그가 보였던 모습을 통해 마음이 열리게 되고, 드디어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 더 이상 감추지 않고, “그때 그 아이예요.”라는 고백에 비난이 아닌 환대를 선택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흐뭇하기 짝이 없었다.


외부인에게는 극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도, 내 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받아주고 안아주고 품어주는 사람들. 마을의 역사와 자랑인 유도와 유도 선수에게 보이는 무한한 애정은 외부인일 수밖에 없는 나의 입가에도 기어이 웃음을 띠게 했다.


등장한 인물 중, 어느 한 명도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 없었다. 유도부 코치는 훈련은 제대로 시키지 않고 술 냄새나 풍기는 불건전한 사람으로 지오가 파악했었지만, 결국 새별이의 투자처를 알아보기 위해 발품을 파느라 그런 인물이었다.


국밥으로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때 그 면모를 좀 눈치채기는 했는데, 역시 꽤 괜찮은 이였다. 남 경사의 죽마고우로서 아빠가 유도 유망주였고, 너를 책임지고자 그만두고 경찰이 된 거라는 소중한 이야기를 지오에게 전한 것도 바로 그였다.


또한 같은 유도부 1학년 여학생 주유는 텃세나 부리는 철없는 친구인 줄 알았으나, 찬이를 외롭지 않게 꾸준히 찾아가는 인물이었고, 지오에게 의미 있는 말을 건넬 줄 아는 근사한 친구였다.


남 경사의 현재 아내인 아줌마, 그녀는 도시락을 꼬박꼬박 싸 주는 것 말고도 뱃속 아기의 태동을 지오에게 느끼게 해주며, 지오를 남편의 딸로 인정해주는 참 속 깊은 여인이었다.


또한 대장암 수술을 씩씩하게 받고 회복의 의지를 내보인 지오의 엄마는 지오의 행복을 위해 가장 멋진 일을 꾸미고 실행한 그야말로 믿음직한 엄마였다.


각 인물을 향한 작가의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어떠한 빌런이 없어도 얼마든지 인물들은 고통에 빠질 수도 있고, 뛰어난 히어로가 없어도 얼마든지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저 누군가의 아픔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온기를 전하는 것. 그것이 시시비비를 가려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는 일보다 훨씬 더 큰 회복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지오의 이야기는 일반 소설들처럼 과거형 문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유찬이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현재형 문장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늘 내 마음이 쓰였다. 두 인물의 어투를 구분하기 위한 단순한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5년 전의 화재 사건처럼 너무도 분명한 과거가 마음에 응어리진 유찬이에게는 그 일 말고는 그 무엇도 과거라고 표현될 수 없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에 대한 트라우마로 뜨거운 여름 햇빛을 두려워하는 찬이에게 지오는 참으로 신박한 치유를 선사한다. 주먹으로 형상화한 찬이의 여름을 마치 사과를 베어 물 듯, 한 입 베어 무는 시늉을 한 것이다.


“내가 그랬잖아. 지켜 주겠다고. 네 여름을 한 입 먹은 거, 그것부터 시작이야.”


마음의 어느 한 길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40대 중반 중년의 길을 걷는 나에게 지오와 찬이가 가만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줌마의 뜨거운 여름은 뭐예요? 한 입 베어 물어보시겠어요?”


그리고 깊은 감명에 파도치는 이 마음을 붙들고 나 역시, 내가 물어줄 만한 여름이 어디에 있을지 돌아보고 싶다. 나에게 있어 기꺼이 환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최선의 모양으로 내가 품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아니 적어도 이꽃님 작가님의 ‘여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통해 지오와 찬이의 속마음을 들은 이들이 최선을 다해 누군가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힌 이꽃님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는 바라는 바대로, ‘햇살만큼 반짝이는 이야기’였으며, ‘비 온 뒤 뜨는 무지개 같은 이야기’로 나에게 남았습니다. 그러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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