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순 있습니다
나는 올해 두 번째로 고3 수험생의 엄마가 되었다. 2년 전, 큰아이의 입시를 나름 잘 치러내고 이제는 작은아이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다.
잘 치러냈다고는 하지만, 실은 내가 한 게 거의 없다. 입시에 관한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였다. ‘입결’이 뭔지, ‘수능 최저’가 뭔지, ‘2합, 3합’은 무슨 말이며, ‘사탐런, 과탐런’이란 도통 무엇의 줄임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기껏해야 평소 시험 결과로 점수가 매겨지는 내신과 학생부 종합 생활기록부(일명 ‘생기부’)로 수시 모집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과, 대학 수학 능력 시험(수능)을 치르고 그 점수로 정시 모집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었다.
오죽하면 아이가 나를 앉혀놓고 ‘엄마, 이건 이런 뜻이야.’라며 설명을 해줘야 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참 서운하고도 답답한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 듣는 용어가 많고, 도무지 학교마다, 전형마다 다른 제도라는 것의 복잡성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뒷전에 물러나 버렸다.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독립성을 키웠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제 나름 열심히 알아보고, 상담하고, 성적을 유지하고, 교내외 활동에 최선을 다하며, 입시 준비를 차근차근해 나갔다. 뒤늦게 보습학원의 도움을 받으며 시작한 공부였지만, 꽤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원하는 학교의 학과에 떡 하니 합격을 했다.
알아서 잘해 낸 큰아이의 경험이 있으니, 자연스레 작은아이에게 바라는 바도 비슷했다. 알아서 공부하고, 생기부를 채우고, 수능 준비를 해 나가는 것. 출결을 챙기고, 체력도 유지하며, 학교생활 즐겁게 잘 감당하는 것.
그러나 큰아이에게 쉬워 보였던 그 모든 과정이 작은아이에게는 얼마나 힘겨운 산인지를 절감해야 했다. 아이는 그리 활동적이지 못하다. 무언가를 챙기는 일에 소질이 없다.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가고 싶은 대학을 선정하지 못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대학에 가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다.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의 심드렁은 점점 심해졌다. 시험 기간이 되어도, 보고 싶은 책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모의고사 시험지에는 문제를 푼 흔적보다 아이가 끄적거린 시나 소설의 일부가 더 많았다.
답답한 마음에 타일러도 보고, 으름장을 놓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와의 관계만 나빠질 뿐,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주었던가. 온갖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좋은 말들을 쏟아놓다가, 먹히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를 많이 냈던 것 같다.
고 3이 된 아이는 다행히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다. 성적이 좋아진 건 아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좋아하는 글을 원 없이 써대고 있다. 글을 쓰는데 대학이 필요 없다는 아이에게 ‘그래도 스승이 있으면 더 낫지 않겠냐’는 말로 타일러, 그쪽 분야로 입시의 방향을 잡기는 했다. 하지만 첩첩산중이다. 과연 아이는 입시 제도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갈 수 있을는지.
이틀 전, 학부모 입시설명회에 다녀왔다. 설명회장에서 만난 안면 있는 학부모들이 ‘다 아는데, 왜 왔어?’라고 물어왔다. 큰아이 때 다 해봤는데, 왜 왔냐는 거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우왕좌왕했던 게 또 반복될까 봐 무서워서 왔다고 했다.
한 번 겪고 나서인지, 이제는 뭐가 뭔지 대체로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첫째가 고 3인 학부모들이 이해가 잘되지 않아 바쁘게 필기를 해대고, 설명 스크린을 열심히 찍어댔다. 2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났다.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이들에게 그래도 알려줄 게 있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교과 전형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수능은 봐야 해요. 수능 최저를 원하는 학교들이 있거든요.”
“2합 7이라는 건 두 과목 합쳐서 7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국어 4등급, 영어 3등급, 이런 식으로요.”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에 지원할 수 없어요. 잘 생각하고 원서를 써야 해요.”
“학교마다 전형이 워낙 다양해서 5월에 나오는 모집 요강을 꼼꼼히 살펴야 해요.”
전문 강사가 한 번 다 설명한 것들이었지만, 다시 짚어주었을 때 듣는 이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경험자는 다르네, 라는 칭찬과 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입시 제도를 예전보다 더 잘 이해했다고 해서 과연 내가 작은아이의 입시를 잘 치러낼 수 있을까. 씁쓸한 마음이 가장 큰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본 그 순간, 씁쓸한 마음이 물러났다. 또다시 걱정과 염려와 원망이 다시 자리하겠지만, 그래도 아이의 즐겁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엄마의 마음이리라. 문득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다.”
부디 최선을 다해 남은 입시 기간을 잘 보낼 수 있길 바란다. 그러나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마음. 내 마음에 아이가 흡족하지 않다더라도, 제도라는 틀 안에 아이가 성공적으로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오롯이 사랑할 수 있기를. 그 마음을 붙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