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형! 이거 줘 봐!”
먹고 있던 길쭉한 감자 스낵을 내밀며 시도가 말했다. 레도는 동생이 내미는 과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개미집의 입구에 과자를 쑤셔 넣으면서 흥미로운 눈동자를 굴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과자의 습격에 체계적으로 움직이던 개미들이 사방으로 우왕좌왕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맛있는 먹잇감을 던져주면 반가워하면서 떼로 모여들어 부지런히 먹이를 옮길 줄 알았다.
그런데 반기기는커녕 개미들은 상당히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미들이 당황하는 만큼 시도도 당황스러웠다. 시도는 애초에 개미를 놀라게 할 생각이 없었다. 뙤약볕에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조금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돕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두 살 많은 형 레도가 하필이면 그 먹이를 그들의 집 입구에 쑤셔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집의 습격에 당황한 개미들이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여 대는 모습을 보며 레도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이시도, 과자 하나만 더 줘 봐.”
이번에는 시도가 흔쾌히 과자를 내밀지 않았다. 레도는 재촉하는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도는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개미들이 놀라잖아. 또 개미집에 쑤셔 넣을 거잖아.”
시도의 말에 레도는 김이 새 버렸다는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재밌잖아. 얘네들은 지금 자신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 이 공격에 방어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레도는 동생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시도는 고민했다. 궁금하기는 했다. 먹이가 될 수도 있지만, 공격이 될 수도 있는 과자 조각에 개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한 개만이야.”
시도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과자 하나를 내밀자, 레도는 기분 좋게 과자를 받아 들었다. 어느새 이전 과자를 입구에서 옮기는 데 성공한 개미들이 다시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레도가 다시금 두 번째 과자를 개미집 입구에 밀어 넣으려고 할 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레도! 집에 안 가고 뭐 하냐?”
같은 반 친구인 김동민이었다. 동민이는 학교가 파하고 어느새 집에 들렀다가 나왔는지 가방을 바꿔 메고 있었다. 아마도 학원에 가는 길일 것이다.
“학원 가는 길이지? 잘 가!”
레도는 다시 과자를 들고서 개미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잘 가!’라고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민이는 학원 가는 길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레도의 옆에 작정을 하고 앉았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동민이가 함께 바라본 곳에서 개미들이 우왕좌왕 난리도 아니었다.
“혀엉!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
시도가 이제는 흥미를 잃고서 형에게 일렀다. 그러나 레도는 동생의 말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 개미를 괴롭히는 일에는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아직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옆에 쭈그리고 앉은 동민이에게 뻔한 말을 걸었다.
“영어학원 가는 길이야?”
“아니, 수학학원!”
동민이가 여전히 개미들을 들여다보며 답했다. 레도는 동민이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너희 엄마는 왜 그렇게 학원을 좋아하냐? 그런다고 네가 천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레도의 말에 동민이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도 놀기만 하는 너보다는 내가 성적이 좀 낫잖냐.”
“그러니까 네가 학원에서 못 벗어나는 거야. 학원 안 다니는 나보다 잘하니까! 너희 엄마는 네가 학원 다녀서 잘하는 줄 안다니까?”
레도의 말에 동민이가 그런가 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처럼 못해 봐. 그럼, ‘아… 학원 다녀도 소용없구나.’ 하고 포기하실 거라니까?”
레도의 말에 동민이의 귀가 솔깃했다. 그때, 시도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도 내년에 중학생 되니까 공부 좀 해야지! 언제까지 40점만 받아올 거야?”
그 말에 동민이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는 동안 레도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시도는 형의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질 것이 뻔해 보여 얼른 집으로 먼저 달려가 버렸다.
“100점 한 번 받아왔다고 으스대는 꼴 하고는! 쳇!”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애써 누르며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 레도의 옆에서 동민이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걸어왔다.
“너도 그냥 나랑 같이 학원 다니자! 그럼 적어도 50점은 받지 않겠냐?”
“학교에서 몇 시간 동안 붙잡혀 있는 것도 끔찍한데, 내가 왜 그래야 해? 일상생활에 그다지 쓸모도 없는 숫자 공부하느라고 갇혀 있고 싶지 않아. 그것도 겨우 10점 더 받자고 내 시간을 허비하라는 말이야? 됐으니까 너나 가!”
레도의 불평 가득한 말에 동민이가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실, 엄마들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 얻고, 그래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거, 맞잖아! 안 그래?”
그러나 레도는 엄마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동민이에게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려 보일 뿐이었다.
“몇십 년 뒤에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라고? 그 행복이 진짜라는 것도 난 못 믿겠는데?”
동민이가 어이없는 얼굴로 레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길 위에 놓인 돌멩이 하나를 냅다 걷어차면서 레도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 공부깨나 잘했다는 아빠가 지금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분명히 좋아한다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해 왔다. 지금은 관리자의 자리까지 승진했다. 아빠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친척들 사이에서는 칭찬 일색이었다.
하지만 레도가 볼 때 아빠는 ‘일하는 기계’ 같을 뿐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에 퇴근하는 아빠의 얼굴은 보기도 힘들다. 그리고 볼 때마다 얼굴이 점점 쭈글쭈글해지는 것 같다. 언제나 ‘피곤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휴일에는 소파에 앉아 뒷머리를 기대기만 하면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드르렁’하는 스테레오가 터져 나온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 아빠가 이 고생을 하는 것은 다 사랑하는 너희들 때문이야. 아빠 마음 알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회사 분위기가 바뀐다 싶더니 관리자가 수주를 따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영업을 위해 뛰어다니는 아빠는 술에 흥건한 채 집에 들어오는 때가 많아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꼭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의 이 고생이 다 가족 때문이라고.
그렇게 고생하는 아빠가 레도는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레도는 ‘아빠 마음 알지?’라는 아빠의 질문에 한 번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적이 없었다. ‘누가 날 낳으랬나? 자기 마음대로 낳아 놓고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마음 알아 달라고 나발 불면 마냥 고마워할 줄 알았나 보지? 칫!’
레도의 마음은 오히려 더 꼬여만 갔다. 이상하게 요즘은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느니, 기본은 익히고 가야 나중에 고생하지 않는다느니 엄마의 잔소리가 날로 심해져 갔다. 그러나 레도의 마음속에는 그깟 공부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만 물밀듯이 밀려올 뿐이었다.
레도의 삐뚤어진 마음 자세는 최근 엄마와의 갈등이 잦아지는 이유 중 하나였다. 엄마는 하룻밤 자고 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잔소리 하나라도 더 할까? 어떻게 하면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처럼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런 엄마에게 레도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도 문제는 휴대전화를 좋아하는 나의 잘못이었고, 결론은 공부였다.
“어쨌든 잘 가라! 내일 학교에서 만나자!”
친구에게 더 이상 조언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동민이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휴대전화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레도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레도는 멀어져 가는 동민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다. 엄마하고 붙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귀에는 딱지가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음은 갈가리 찢길 것이다. 유일하게 다니는 태권도 학원은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에나 갈 수 있다. 그때까지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는 게 낫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만한 친구들이 없어 그것도 난감했다. 엄마가 집에 없다면 당장 집으로 들어갈 텐데.
“에이!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일하러 가지도 않냐고?”
빈 그네를 재미도 없게 흔들면서 레도는 불평 한마디를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