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레도야, 시도야! 일어날 시간! 어서 일어나!”
아직 꿈나라에서 현실로 돌아올 마음의 준비가 덜 됐는데!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가 레도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게 했다. 내 엄마지만 진심 짜증이 났다. 마치 엄청 자상한 엄마라도 되는 듯한 어투가 더욱 그랬다.
“아들, 어서 일어나야지. 곧 학교 갈 시간이야!”
1층 침대에서 자고 있던 시도는 엄마가 엉덩이를 토닥이며 내뱉는 코맹맹이 소리에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하며 똑같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레도는 소리 없이 구역질을 했다. 저 녀석은 어쩌면 저렇게 비위가 좋은지 모르겠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지, 아직 어려서 그렇지!
“이레도, 잘 잤어?”
여전히 코감기에라도 걸린 소리로 이야기하며 엄마가 침대 2층으로 올라왔다. 엄마가 레도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였을 때 레도는 정색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 좀! 엉덩이 두드리지 말라고요!”
아침부터 냅다 지르는 아들의 역정이 엄마에게 정겹게 들릴 리가 없었다. 코가 맹한 소리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 대신 아랫배에서부터 우러나온 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눈 밑 까만 것 좀 봐! 어제 늦게까지 또 휴대폰 하다 잤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있으니까 잠도 푹 못 자고, 키도 안 크고, 면역력도 떨어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너 오늘 하루 동안 휴대폰 압수야!”
엄마의 고함은 오늘 하루도 시작이 원만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소리였다. 엉덩이 두드리지 말라는 말이 어째서 휴대전화 이야기와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늘 그랬다. 어딘가 몸이 좀 아프면 그것은 다 휴대전화 때문이란다.
피곤해도, 입맛이 없어도… 하다못해 동생하고 트러블이 생겨도 그것은 다 휴대전화의 영향이란다. 한숨을 내쉬던 레도는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를 오른손으로 꼭 쥐었다. 얌전히 휴대전화를 내놓을 생각 따위 아예 없었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뺏기 위해 달려드는 엄마를 밀어냈다. 그러는 동시에 레도는 2층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애지중지해? 정말로 중독이야?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화장실로 향하는 레도의 꽁무니를 쫓아오면서 엄마는 늘 하던 이야기를 오늘도 해댔다.
“중독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요. 나는 내가 알아서 절제할 테니까 엄마나 절제하세요!”
홱 돌아보며 하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꽁꽁 언 얼음처럼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어이없어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레도는 왠지 모를 통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언제나 지적만 당해왔다. 그런데 우연히 내뱉은 말에 엄마를 지적하는 말이 담겨 있었다. 그 말에 엄마가 저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다. 당황하는 엄마의 모습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레도는 왠지 모를 통쾌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 기분에 승리감까지 맛보고자 비난을 좀 더 보태 보았다.
“엄마는 아무도 읽어 주지도 않는 인기 없는 글 쓰느라 밤잠 설치잖아요! 그렇게 잠 못 자서 피곤하면 맨날 우리한테 신경질 다 부리고 그런다는 거 모를 줄 알아요? 엄마도 밤에 글 쓰는 거 절제하고 푹 주무세요!”
레도의 지적에 엄마는 그제야 할 말이 떠올랐는지 두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떴다. 그리고 아들을 노려보았다. 레도는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엄마의 꿈은 작가다. 어릴 때 갖고 있던 꿈을 어른이 된 지금 이루어 보고자 엄마는 부단히도 노력 중이다. 결혼과 동시에 육아에 전념하던 엄마에게 꿈을 위해 노력하는 요즘이 얼마나 행복한지 레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꿈을 이루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날에는 자신에게도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도 잘 알았다. 밤잠을 설치고 피곤이 극에 달한 날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예고도 없이 본편부터 귀청을 두드려댄다.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피곤으로 인한 짜증 수치가 올라가는 날이 잦아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레도가 목소리를 높여 본 것이다. 예상대로 엄마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눈시울을 붉히는 작전을 쓸 모양이다.
레도는 가슴이 뜨끔했다. 레도는 어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속어가 가슴 가득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젠장!’
“엄마 꿈이 작가라는 거 잊었어? 너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해? 네가 엄마처럼 꿈을 위해서 노력하느라 잠을 설치는 거면 엄마가 이렇게 잔소리하겠니? 의미 있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거라면 엄마가 왜 간섭을 해? 네가 자꾸만 쓸데없는 일에…….”
“나에게는 이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엄마가 꿈을 위해서 잠을 아끼듯이 나에게도 관심 있는 일이 있는 거라고요. 엄마 눈에 나빠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못하게 하지 마세요! 엄마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잖아요!”
과하게 내질러진 레도의 말에 엄마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그렁그렁한 두 눈이 원망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채 레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의 눈이 젖어드는 것에 마음의 가책이 느껴졌다. 그러나 레도는 오히려 더 이를 악물었다. 기회가 온 김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자는 결심을 했다.
“다른 엄마들은 다 직장에 나가서 일한대요. 그러면 혼자 버느라 고생하는 아빠의 어깨도 좀 가벼워지고, 우리도 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어디 일할 데 없어요?”
마음에만 담고 있던 이야기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술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레도는 스스로도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번 열린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간섭하는 엄마 때문에 숨이 막혀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텔레비전 보고, 휴대폰 하고, 게임도 하고 싶어요. 자유를 주면 내가 알아서 할 만큼 하다가 절제하고 공부도 하고 그럴 텐데… 보기 시작할 때부터 엄마는 압박을 주잖아요. 시간 재면서!”
레도는 엄마의 두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눈이었다. 1학년이 되던 때였던 것 같다. 언제나 ‘엄마가 제일 예뻐,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던 순진하고 착한 첫째 아들이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변했다고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제일 예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엄마는 그 말에 저런 슬픈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배신감이 느껴진다는 말과 함께.
“엄마가 너에게 하는 말과 행동들은 다 너를 걱정하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그걸 모르지는 않지?”
겨우 속상함을 감춘 엄마는 좀 더 위엄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오늘 레도는 그런 엄마의 속상함이든 배신당한 마음이든 알아주고 싶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두가 학원 가느라 같이 놀 친구도 없는데, 이 휴대전화마저 없으면 정말로 지루한 그네만 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싫은 레도는 어떻게든 휴대전화를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려 댔다. 아, 그래! 단식투쟁! 엄마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방법!
“엄마만 날 걱정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내 걱정할 줄 안다고요. 그러니까 좀 내버려 두세요. 내가 알아서 하게!”
레도는 정말로 고드름처럼 꽁꽁 얼어버린 엄마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져서 휴대전화를 순순히 내놓고, 착한 아들 코스프레를 하고 나면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강하게 마음을 먹은 레도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대충 옷을 갈아입은 뒤, 정리도 하지 않은 책가방을 울러 멨다.
“뭐 하는 거야? 밥 안 먹어?”
“생각 없어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레도는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최대한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을 나섰다. 그러면서 레도는 긴 숨을 내쉬었다. 아침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엄마에게 충격적인 행동을 보였다는 것을 잘 안다.
어쩌면 엄마는 자신의 진담 반 연기 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전 내내 생각에 잠길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한쪽 구석에서 꿈틀댈 때, 레도는 다시 말했다.
“아, 몰라! 나도 힘들어! 내 행동 보고 엄마도 뭔가 느끼시는 게 있겠지. 잘했어. 정말 잘했어, 이레도!”
입으로는 잘했다고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어째서 오른발은 집 앞에서 발견한 돌멩이 하나를 학교 정문 앞까지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폭풍같이 몰아친 반항의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정이라도 들었나?
정문 앞에 두고 온 돌멩이를 레도가 아쉬운 듯 돌아볼 때, 문득 운동장 쪽에서 ‘와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운동장 쪽 스탠드에는 일찍 등교한 친구들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발동한 레도가 발걸음을 그쪽으로 빠르게 옮길 때, 건물 벽면에 새겨진 명언들이 스쳐 지나갔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레도는 등하교 때마다 보게 되는 저 문장을 정말로 믿었다. 전쟁 같은 엄마와의 마찰도 학교에서는 잊을 수가 있다.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는 동안에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레도는 요즘 계속 저 말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다. 보이지 않는 동안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자연스레 사라지듯이, ‘구속하고 간섭하려는 마음도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다. 엄마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레도의 하굣길이 그렇게 긴 것이다. 엄마와 마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같은 반 친구인 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나다 못해 흥분이 고조된 목소리였다. 레도는 서둘러 아침에 있었던 엄마와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준이가 내밀어 보이는 로봇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 회사에서 이번에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인데, 진짜 대화가 가능해!”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들이 준이가 설명하는 강아지 형태의 로봇에 집중되고 있었다.
“여기 스피커처럼 생긴 곳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그걸 알아듣고 이 로봇이 대답을 해 주는 거야.”
강아지 로봇은 슬쩍 보아도 살아있는 실제 강아지와 생김새가 비슷했다. 강아지의 배 부분에는 스피커 모양의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것은 소리를 출력하는 기능 말고도 소리를 입력하고 그 소리에 적합한 정보를 다시 출력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준이가 설명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 가운데에는 실제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눈빛들이 섞여 있었다. 준이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준이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디지멀! 나 오늘 무지 심심해!”
“저런, 그렇다면 저랑 대화를 나눠요!”
준이의 말에 강아지의 배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켜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오!”라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의심의 눈초리들은 대번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변했다. 말을 알아듣고 그에 적절한 답을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대답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상냥한지 몰랐다. 지켜보는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르르 녹일 정도였다.
“디지멀! 재미있는 노래 들려줘!”
“까불이의 ‘신나게 놀자!’ 들려 드릴게요.”
곧이어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 음악에 맞춰 ‘디지멀’은 꼬리를 흔들었다. 친구들은 신기한 마음에 박수를 쳐댔다.
강아지 로봇의 앙증맞은 모습을 보면서 레도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런 장난감 하나 있으면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날에도 따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음악을 들려주는 기능뿐만 아니라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언어 공부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저런 고급 장난감이 자신의 손에 쉽게 들어올 리가 없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레도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돌아서서 교실로 향하는데, 어제 하굣길에 만났던 동민이가 다가왔다.
“왜? 재미없어?”
동민이는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레도가 새로운 기기를 보고서도 별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해 물었다.
“재미없는 게 아니라 ‘그림의 떡’이라서 그런다.”
레도의 힘없는 대답에 동민이가 더욱 가까이 다가와 이야기했다.
“아빠한테 부탁해 봐! 작년 생일에도 최신형 게임기 사 주셨잖아!”
동민이는 은근 기대하며 레도를 바라보았다. 레도는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이날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생일 선물 다 합쳐서 겨우 받은 선물이야. 아무리 아들 부탁 잘 들어주는 아빠여도 작년에 무리하신 거였어.”
동민이는 금세 시무룩한 얼굴이 됐다. 하교 후 학원에 가기 전까지 잠깐 짬이 날 때마다 레도의 집에 가서 했던 최신 게임은 기가 막히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절제하지 못하는 레도에게 그의 엄마가 내린 ‘주말만!’이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내가 받은 내 선물인데, 내가 마음껏 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주말만!’ 조건에 붉으락푸르락 흥분했던 레도였지만, 지금은 단호한 엄마의 규칙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대신, 엄마가 예기치 않게 외출을 하는 기회가 생기면 레도는 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실컷 게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레도는 엄마의 외출을 언제나 손꼽아 기다린다.
레도가 디지멀을 갖게 되는 날에 어깨 너머로 함께 체험해 보기를 기대했던 동민이는 조금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활짝 웃으며 레도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진짜 신기하지 않아? 말하는 강아지라니!”
“그러게! 근데, 난 말하는 강아지보다 내 말 잘 들어주는 엄마로봇이 있으면 더 좋겠다!”
“엄마로봇?”
동민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레도에게 물었다. 레도도 그런 로봇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하고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강아지 로봇 덕분에 잊었던 엄마와의 마찰이 떠올랐고, 그 김에 소원 하나를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요리, 청소, 빨래는 다 해 주지만 내가 하는 일에는 어떤 간섭도, 강요도 하지 않는 엄마 로봇!”
레도는 저도 모르게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레도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동민이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