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마미의 출현

3화

by 금머릿

레도는 크지 않은 두 눈을 있는 대로 크게 키우고 있었다. 옆에 나란히 앉은 동생 시도도 호기심 가득한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가 퇴근하는 길에 데리고 온 로봇을 보고 있는데,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대학 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이번에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했는데 말이야. 경쟁사에서는 이미 동물 형태의 로봇을 만들어서 출시 직전까지 왔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네 회사에서는 사람형태의 인공지능 로봇을 출시하기로 했대. 출시하기 전에 장단점이나 부작용에 대해 알아볼 체험단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얼른 신청했어.”


빠르게 내뱉는 아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시도는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엄마의 모습과 상당히 닮은 로봇이 신기해 그저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하필 나하고 얼굴이 같아요?”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듣고 있던 엄마가 불만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체험신청 할 때, 당신 사진을 보냈지.”

“그러니까 왜 내 사진을 보냈냐고요?”


엄마가 여전히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엄마는 이번 체험이 못마땅한 것이 분명했다.


“여보, 이번에 출시되는 로봇은 ‘돌봄형 엄마로봇’이야. 그래서 이름도 ‘기가마미’!”


기가마미? 레도는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학교에서 동민이와 그저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소원 하나가 떡! 하니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당신, 이번에 동화공모전에서 당선될지도 모르잖아. 공모전에 우수상 이상 당선되면 상금도 상금이지만 포상으로 유럽 여행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빠의 이야기는 형제에게 새로운 소식이었다. 엄마가 밤잠 설쳐 가면서 키보드를 두드려 대는 일에 그런 상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동화라니…?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만 쓰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도 생긴 걸까?


하긴, 웹소설을 쓰면서도 엄마는 자주 말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인어공주’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그래서 언젠가 그런 예쁜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고. 그리고 인어공주를 탄생시킨 안데르센을 만나보고 싶고, 안데르센의 나라인 덴마크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이번에 동화공모전에 우수상 이상 당선이 되면 안데르센의 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당선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가기로 결정한 것도 아닌데….”


엄마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뒷말을 흐렸다.


“일주일 동안 사용하면서 당신이 기능을 입력해 넣을 수가 있어. 아이들 돌볼 수 있는 기능이 제법 있다더라고. 입력 잘 되고, 성능 괜찮으면 애들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는 거잖아.”


아빠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자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레도의 마음속에서는 ‘제발!’이라는 간절한 외침이 들리고 있었다. 엄마가 공모전에 합격을 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동안은 정말로 꿀맛 같은 자유를 만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터로 나가는 것만큼 길고 규칙적인 시간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그 며칠간이 더욱 달콤할 것 같다. 제발, please!


“그럼, 다시 갖다 줄까?”


여전히 대답 없는 엄마에게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레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생을 엄마의 의견 존중하는 데 정성을 쏟아 온 아빠는 오늘도 아들의 마음 따위는 헤아리지 못했다. 밥 차려 주는 사람의 마음만 맞춰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혹시 당선이 안 되더라도 엄마 일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레도는 자신의 조급한 마음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노력하며 이야기했다. 엄마의 시선이 레도에게 옮겨졌다.


“엄마 혼자서 집안일하랴, 우리 돌보랴, 글 쓰랴 얼마나 고생이 많아요? 이번 기회에 그 일을 기가마미와 나눠서 하면 좋잖아요.”


엄마는 의심 가득한 얼굴로 레도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레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설마… 속마음 들통났나?


“엄마,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가 피곤할 때마다 항상 그랬잖아요. 엄마하고 똑같은 사람 한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시도도 신기방기한 로봇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는지 엄마에게 설득하는 말 한마디를 보탰다. 레도가 거의 처음으로 시도를 기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집에서 ‘귀염둥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시도였다. 그런 시도의 의견에 엄마의 불만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가마미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한 20년 전쯤의 당신 얼굴 같지?”

“엄마보다 팔다리가 훨씬 기네요. 더 가늘기도 하고요.”


아빠와 시도가 기가마미를 살피는 엄마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는 아빠와 시도를 차례로 노려보았다.


“아무리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어도 엄마 머릿결은 못 따라가네요.”


레도의 작정한 칭찬에 굳어 있던 엄마의 얼굴이 그나마 펴졌다. 엄마는 자신의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의 끝을 먼저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기가마미의 인공 모발을 매만졌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만든 모발이 자연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탄력 있음에 놀라는 듯했다.


“설명서 어디 있어요?”


가족들의 염원을 담은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체험을 하기로 결정을 한 엄마가 설명서를 찾고 있었다. 레도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엄마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여행을 떠나 준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는대도 크게 나쁠 건 없다. 적어도 4주 동안은 기막힌 장난감을, 그것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사용설명서를 살펴보는 동안, 레도는 시도와 함께 기가마미에게 다가갔다.


“조심해. 망가지면 큰일이야.”


레도는 로봇의 여기저기를 만져 대는 시도에게 주의를 주었다.


“참, 이거 진짜 비싸겠지? 망가지면 진짜 큰일이겠다.”


형의 의견에 한껏 동의하며 시도가 두 손을 잠시 허리 뒤로 감췄다. 시도의 조심스러운 행동에 만족하며 레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레도의 머릿속 생각은 시도와 좀 달랐다. 망가져서 물어주는 것도 큰일이긴 하다. 그러나 레도에게는 그것보다도 망가져서 체험이 무산되면 꿈꾸던 자유시간이 날아갈지도 모르기에 큰일이었다.


“자, 여기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면….”


작동법을 숙지한 아빠가 엄마에게 천천히 설명을 하면서 기가마미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감겨 있던 기가마미의 두 눈이 반짝하고 떠졌다.


“우와!”


레도와 시도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눈뜬 모습을 보니 정말로 로봇이 아닌 사람 같았다. 돌아보니 아빠와 더불어 엄마 역시 감탄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


“기가마미!”

“네?”


아빠의 부름에 기가마미는 단번에 답을 했다. 이번에도 온 가족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저를 반겨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레도는 학교에서 준이가 보여주었던 ‘디지멀’이 부르는 소리에 한 번에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여러 번 부르고 나서야 대답하던 답답한 디지멀에 비해, 기가마미의 반응 속도와 정확성은 탁월함이 분명했다.


“기가마미!”

“네?”

“기가마미!”

“네?”


말하는 투는 그야말로 기계 같았지만, 사람이 하는 말에 응대한다는 것이 신기한 레도와 시도는 연속해서 기가마미를 불러 댔다. 레도는 온몸이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이런 로봇을 만든 아빠의 친구와 그의 동료들이 정말로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할 만한 노래 한 곡 들려줘!”

“따스 님의 ‘첫 만남’ 들려 드릴게요.”


아빠의 요청에 따라 서정적인 음악이 곧 흘러나왔다. 따스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엄마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음악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한 시도는 또다시 기가마미를 만지며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다!”


시도가 기가마미의 뒤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소리쳤다. 모두가 시도가 가리킨 곳을 함께 바라보았다. 기가마미의 등에는 마치 과거의 브라운관을 닮은 텔레비전 같은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네모진 화면 옆으로 스피커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으로 소리가 입력되고, 출력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빠가 설명서로 확인한 다음,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그래, 여기로 우리의 소리가 들어가고, 원하는 콘텐츠가 출력되기도 한다네. 기가마미!”


설명보다는 직접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겠다고 여긴 아빠는 다시 기가마미를 불렀다.


“네?”

“재미있는 영상 보여줘!”

“ABS ‘개그야, 사랑해’ TV 콘텐츠를 보여드릴게요.”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자, 유명한 TV 프로그램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레도는 저도 모르게 자그마하게 읊조렸다. 기가마미 대박…!


이 외에도 기가마미의 기능은 무궁무진했다. 다양한 정보를 찾아줄 수 있어서 학교 공부는 물론 언어 공부, 숙제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음악 감상은 물론, 다양한 영상을 볼 수도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도 가능했다. 정말 기가마미 하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 레도와 시도가 그렇게 기가마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 엄마의 냉랭한 말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래서 얘가 왜 ‘마미’인 건데? 이런 거 시키려고 데려온 거 아니잖아요?”


엄마의 말에 아빠가 싱긋 웃으며 다시금 설명서를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 마미로서의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입술이 평소보다 툭 하고 튀어나와 있는 것이 레도는 답답했다. 엄마는 저렇게 꽉 막힌 데가 있다.


새로운 세상의 물결에 언제나 불평부터 해 대는 습관이 있다. 선천적으로 기계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아마도 스마트폰이 출시된 이래, 가장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구매한 사람일 것이다. 답답한 엄마의 교육은 아빠에게 맡기기로 하고, 레도는 다시금 기가마미를 바라보았다.


“기가마미!”

“네?”

“사랑해!”


레도의 말에 엄마는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한 3년여 만에 처음으로 아들의 입에서 들린 단어였다. 이어 기가마미의 답변이 흘러나왔다.


“믿어지지 않는군요.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재밌어하는 두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았다.

이전 02화전쟁 같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