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기가마미

4화

by 금머릿

“얘들아, 일어나야지! 학교 갈 시간이야!”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도 어김없는 코가 맹한 소리에 시도는 같은 코맹맹이 소리로 응대했다. 레도는 아직 뜨지도 않은 눈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쪽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오늘은 ‘엉덩이 토닥’에서 끝나지 않음을 알겠다.


계단을 올라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레도는 엉덩이를 벽으로 바짝 붙였다. 정신이 들었으니 오늘은 ‘엉덩이 토닥’을 미리 막아보고자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일어났지? 어서 내려와서 세수해.”


예상치 못한 건조한 말이 가만히 떨어졌고, 계단을 올라왔던 엄마는 순순히 계단을 내려갔다. 레도는 실눈을 뜨고서 엄마가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웬일이지? 의아한 마음으로 엄마의 가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엄마의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기가마미가 보였다. 기가마미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기가마미!”

“네?”

“녹화 잘하고 있지?”

“네, 그럼요. 엄마의 모든 모습이 저에게 입력되고 있어요.”


답하는 기가마미에게 웃어 보여준 뒤, 엄마는 밥그릇에 밥을 담았다.

“기가마미!”

“네?”

“레도는 요만큼... 시도는 요만큼.”

“네, 잘 알겠어요.”

아침에 주는 밥의 양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는 밥을 담은 그릇을 기가마미에게 보여주었다.

“엄마, 기가마미에게 엄마 일 다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눈을 비비며 눈곱을 떼던 시도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래, 엄마 없는 동안은 기가마미가 엄마니까!”


“당선됐어요?”


어느새 다가온 레도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레도를 바라보았다. 뭔지 모르게 기분이 묘했다. 당선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당선되어 얼른 떠나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직은 몰라.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렇다는 거지.”


레도는 조금은 김이 샌 모양으로 식탁에 앉았다.

“어? 골뱅이무침이다!”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올라온 것에 반색하며 레도가 기분 좋게 젓가락을 들었다. 엄마가 차려 준 반찬과 밥을 먹으면서 레도와 시도는 자꾸만 기가마미를 힐끔거렸다. 살짝 미소 지은 얼굴이 가족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레도는 기가마미의 얼굴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정말 엄마 얼굴 맞아? 한 20년 전에는 엄마도 예뻤던 모양이다. 그래서 일곱 살까지는 엄마가 예뻐 보였었나 보다.


레도는 부지런히 밥알을 씹으면서 앞에 앉은 엄마의 얼굴을 관찰했다. 눈 주변으로 적지 않은 양의 기미가 편만했다. 그 사이사이를 자잘한 주름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엄마의 얼굴은 적당히 메이크업 상태인 기가마미와 대조를 이루어 더 초라해 보였다. 가슴에서 무언가 물컹! 하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못된 불평 하나가 레도의 마음 가득 울려 퍼졌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얼굴에 색칠 좀 하지. 꼭 아픈 사람 같잖아.’


저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 속에 ‘색칠’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레도는 어깨를 크게 들썩했다. 깜빡했다. 오늘 미술 시간에 수채화물감을 짜서 말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며칠 전부터 짜 뒀어야 했는데….


“엄마! 혹시 내 알림장 확인했어요?”


다급한 레도가 밥알을 튀기며 빠르게 뱉은 말에 엄마는 의아한 얼굴이 됐다.

“네 가방 손도 못 대게 하는데 엄마가 어떻게 확인을 해?”


“아, 진짜! 나 오늘 준비물 있단 말이에요! 수채화물감 짜서 말린 거 가져가야 하는데!”

짜증 가득한 레도의 외침에 엄마의 얼굴도 기분 나쁘게 일그러졌다.

“잘한다, 잘해! 준비물이 등교 시간이 다 돼서 생각난다는 게 말이 되니? 너, 진짜. 언제 정신 차릴래? 이래서 내년에 중학교 들어갈 수 있겠어?”

레도는 먹던 숟가락을 탁! 하고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엄마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더욱 일그러졌다.

“뭐 하는 거야? 또 밥 안 먹고 가겠다는 거야?”


레도는 대꾸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실수에 언제나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가 레도는 너무도 싫었다. 물감 하나 챙기지 못했다고 해서 중학생이 될 자격이 없다니! 엄마의 비약이 오늘도 레도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실수할 수도 있지! 엄마도 맨날 잊어먹는 일투성이면서 나만 갖고 난리야!’


불만이 마구 솟아났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돌릴 수는 없었기에 레도는 그저 말없이 가방을 울러 멨다.


“물감 어떻게 할 거야? 미술 시간에 어떻게 할 거냐고?”


기어이 엄마의 찢어지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신경 쓰지 마세요! 동민이 것 빌려 쓸 거예요!”


쾅! 하고 문을 닫고 나오는데 아직도 엄마의 고함이 레도의 뒤통수에 닿고 있었다.


“동민이는 뭔 죄야? 덜렁대는 친구 덕에 걔는 왜 불편함을 겪어야 하냐고?”


레도는 깊은 한숨과 함께 두 손으로 온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오늘 아침 반찬은 정말로 마음에 드는 거였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골뱅이무침. 아침에는 바빠서 손이 많이 가는 반찬 할 시간 없다며 절대로 아침에 내놓지 않았던 반찬이 오늘 아침에는 나온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로 밥을 다 먹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남기고 온 골뱅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레도는 터덜터덜 걸으며 저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나지막이 내뱉었다.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러나 엄마를 향한 원망의 마음은 늘 그렇듯 학교에 도착하고 나면 잊힌다. 수업에 집중하고, 친구들과의 놀이에 빠져 있다 보면 엄마와의 트러블로 인한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잊혀진 엄마에 대한 생각이 5교시 미술 시간이 시작할 즈음에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물감을 좀 나눠 쓰자고 이미 동민이에게 이야기를 해 둔 뒤였기에 레도는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레도, 엄마 오셨어!”


레도는 귀를 의심했다. 4학년이 되면서부터 글을 쓰느라 없는 시간을 쪼개며 살았던 엄마는 웬만해서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준비물을 놓고 왔어도, 다 해 둔 숙제를 두고 왔어도 가져다주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핀잔과 앞으로는 엄마에게 기대지 말고 더 정신을 차리고 잘 챙기라는 훈계를 늘어놓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부터 레도는 정말로 엄마에게 기대하는 바를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그래서 스스로 챙기는 습관이 자리 잡기도 했다.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갑작스럽게 내린 비 때문에 우산을 가져다주는 일 외에는 학교에 발걸음하지 않던 엄마가 왔다. 엄마의 손에는 물감 세트가 담긴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자!”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며 내미는 물감을 레도도 대꾸 없이 탁하고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서는 아들을 엄마도 눈 끝으로 찔러 보다 돌아서서 갔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말은 주위에 있던 반 친구들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래!”라는 말과 미소는 그 친구들에게만 가 닿았다.

레도는 자리로 와서 엄마가 내밀었던 물감 팔레트를 꺼내 보았다. 깨끗하게 세척이 된 팔레트 안에는 색깔별로 가지런히 물감들이 안착해 있었다. 레도는 의아한 마음으로 물감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조금 색이 묻어났다. 그래도 굳기가 제법 진행이 되어 미술 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언제 이걸 다 말린 거지?’


의아한 마음이 들면서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선생님의 야단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동민이와 물감을 나눠 쓰면서 겪게 될 불편도 없을 것이다.

‘오늘 방과 후에는 좀 일찍 집에 들어가서 숙제부터 해 볼까?’


잠깐 엄마가 기뻐할 만한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이내 레도는 고개를 내저었다. 엄마는 분명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공부를 시킬 게 뻔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레도는 방과 후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다.


엄마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애초에 버렸다. 단지, 또다시 디지멀을 자랑하는 준이 덕분에 기가마미가 떠올랐을 뿐이다. 엄마를 닮았지만, 엄마보다 훨씬 예쁜 기가마미와 어서 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레도의 하굣길이 정말로 오랜만에 10분을 넘지 않았다.


“기가마미!”

“네?”

“학교 다녀왔어!”

“다녀오셨군요. 저도 집에서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마치 사람처럼 대답하는 기가마미 때문에 레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슨 공부 했어?”

“엄마가 되는 공부를 했어요. 저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레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역시 ‘기가마미’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답이었다. 아침부터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녹화를 한다더니 그게 기가마미에게는 엄마가 되는 공부였나 보다.


“기가마미!”

“네?”

“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

“엄마를 많이 사랑하시나 보군요. 저도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 최고!”


조금은 엉뚱한 대답에 레도의 웃음이 터졌다.


“기가마미!”

“네?”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었어.”

“죄송해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레도는 또다시 큭큭 웃었다. 로봇이지만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사과까지 하는 모습이 레도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기가마미!”

“네?”

“너 정말 마음에 들어!”

“마음에 쏙 드셨나 봐요. 행복을 위한 노래가 준비되었어요. 들어보시겠어요?”


행복을 위한 노래? 어떤 노래일지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레도가 ‘그래’라고 대답하려는 찰나에 대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레도는 입을 다문 채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였다. 레도가 돌아본 곳에서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손부터 씻어.”


레도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욕실로 걸어갔다. 그러나 상냥한 얼굴과 상냥한 목소리로 성의껏 답해주는 기가마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입가의 웃음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전 03화기가마미의 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