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기가마미

5화

by 금머릿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레도는 방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면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기 바빴던 요즘의 레도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는 아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기가마미에게 덩달아 시선을 두었다.

하루 종일 엄마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기가마미에게 입력했다. 일하는 모습을 녹화하도록 했고, 그것을 통해 할 일의 패턴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그랬더니 신통방통하게도 기가마미는 제법 엄마로서의 일을 잘 감당해 내고 있었다.

지금도 레도가 시선을 떼지 못하는 곳에서 기가마미는 진공청소기를 밀고 있었다. 엄마가 설거지하는 동안 집안 정리를 부탁한다는 말에 기가마미는 너무도 의연하게 움직였다.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다 파악했는지, 거실에 널린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거실에는 주로 시도가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이 흩어져 있었는데, 기가마미는 그것을 담을 통을 찾아와 모두 정리한 뒤, 놀이방으로 가져다 두었다. 그러고는 다용도실에서 진공청소기를 가지고 와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기가마미!”

“네?”


레도의 부르는 소리에 청소기를 잠시 끄고서 기가마미가 대답했다.

“너 정말 못 하는 게 없구나!”


레도의 진심이 듬뿍 담긴 칭찬에 기가마미는 언제나처럼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과찬이세요. 앞으로 더욱 노력할게요.”

레도는 상냥한 음성의 기가마미 때문에 자꾸만 웃음이 지어졌다. 시도는 만족하는 형의 모습에 덩달아 싱글벙글이었다.

“형! 기가마미가 물도 떠다 준다?”


시도가 신이 나서 레도에게 이야기했다. 레도가 놀란 눈으로 시도를 바라보자, 시도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기가마미를 불렀다. 기가마미는 마침, 청소기 돌리는 일을 끝내고 가만히 서서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기가마미!”

“네?”

“목이 말라.”

“저런, 물을 가져다드릴까요?”

“응!”


시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가마미는 주방으로 향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부딪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기가마미는 컵을 정수기에 갖다 대며 물을 받았다. 그러고는 시도에게 물 컵을 내밀었다.


시도가 기분 좋게 물컵을 받아들자, 레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컵에 따라진 물을 들여다보았다. 레도는 저도 모르게 휘파람 소리를 내며 감탄을 표했다.

맹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도가 목이 마를 때, 엄마가 받아주는 딱 고만큼의 물의 양이었다. 어제 아침에 자신과 동생이 평소에 먹는 밥의 양을 알려주는 모습을 잠깐 봤었는데, 따라주어야 할 물의 양까지 엄마는 기가마미에게 입력한 모양이었다.

“기가마미 진짜 똑똑하다!”

엄마가 후식으로 깎아준 사과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레도가 말했다. 그러자 시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가마미의 신기한 모습에 대해 아는 대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녀왔을 때, 인사를 해 주는 모습이 마치 엄마 같다고 했다. 손부터 씻고 숙제를 하라는 잔소리까지 입력했는지 기가마미는 엄마의 말과 행동 패턴을 고대로 따라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지겨운 느낌도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기가마미의 상냥한 말투 때문일 것이라고 레도는 생각했다. 필요해서 늘 내뱉는 엄마의 말이었지만, 그 말들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 문을 쾅 하고 닫히게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랬던 것이 상냥함과 공손함을 덧입었을 때, 얼마나 기분 좋은 말이 될 수 있는지 레도는 새삼 깨닫고 있었다. 기가마미의 상냥함을 엄마가 좀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기가마미를 좋아하는 가족들 앞에서 엄마의 얼굴은 늘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그늘진 얼굴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런 엄마에게 달갑지 않은 말을 굳이 내뱉고 싶지는 않았다.

“기가마미!”

“네?”

“고마워!”

“별말씀을요. 제가 더 고마운걸요.”

이번에도 미소 짓고 있는 레도에게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레도가 의아한 마음으로 엄마를 돌아보았을 때, 더욱 굳어진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레도는 도무지 엄마가 인상을 펴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처음 기가마미가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처럼 그저 마음 편하게 웃으면 안 되는 걸까?

자꾸만 못마땅한 얼굴로 기가마미와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레도의 마음까지 무겁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기를 즐기지 않는 레도는 오늘도 거기에서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즐거운 일을 끄집어내기 위해 기가마미를 불렀다.


“신나는 음악 틀어줘.”


레도의 말에 시도의 표정까지 환해졌다. 기가 막힌 선곡으로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기가마미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기가마미의 대답에 레도와 시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은 음악을 틀기에 적절한 시간이 아니에요. 음악 감상이 가능한 시간을 변경하시려면 재입력을 해 주시기 바라요.”

여전히 상냥한 어투였지만, 원하는 답변이 흘러나오지 않아 레도의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 레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혹시 엄마가 시간설정 했어요?”


엄마는 주저함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시간 기가마미의 성능 좋은 스피커로 흘러나올 음악 소리가 이웃들에게 폐를 끼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레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왠지 엄마가 길들인 기가마미가 엄마처럼 앞뒤가 꽉 막힌 존재가 될 것 같은 묘한 불안이 레도를 감쌌다.

기가마미에 대한 묘한 불안은 주말에도 이어졌다. 아빠가 늦게까지 업무를 하다가 새벽녘에 퇴근한 토요일 오전. 매콤한 고추장 향이 온 집안에 가득 찼다. 토요일마다 엄마가 즐겨 하는 요리, 떡볶이의 냄새였다.

엄마가 해 주는 떡볶이를 레도와 시도는 좋아했다. 맵지 않을 정도로만 고추장을 넣고, 마늘을 다져 넣은 떡볶이는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오늘도 두 형제가 부지런히 떡을 씹는 동안, 기가마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 맛있는 떡볶이 냄새를 맡고도 안 일어나다니...!”

엄마가 떡볶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아빠를 깨우기 위해서였다. 안방에서 일어나라는 소리에 이어 잠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빠의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도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포크를 내려놓자, 시도가 의아한 표정이 됐다.


“어? 더 안 먹어?”

씹는 속도가 빨라 언제나 시도를 긴장시켰던 형이 생각보다 일찍 포크를 내려놓았다. 레도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왜? 맛없어?”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서 기쁘면서도 의아한 마음이 들어 시도가 물었다.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너무 자주 먹으면 질려. 넌 안 질리냐? 벌써 이번 달만 떡볶이가 몇 번째야?”

입술에 묻은 떡볶이 양념을 혀로 핥으면서 레도가 말했다.


“그럼, 안 먹으면 되겠네!”


레도가 뜨끔한 마음에 어깨를 들썩였다. 어느새 아빠를 깨워서 데리고 나오던 엄마가 레도의 마지막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빠, 떡볶이 좋아하죠? 제 걸로 드세요! 진짜 맛있어요!”

레도는 아빠를 생각하는 척을 하며 내려놓았던 포크를 내밀었다. 엄마의 못마땅한 눈초리가 레도에게 가 닿았다. 온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휘감긴 아빠는 얼떨결에 레도의 포크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아빠의 손에 있던 포크는 잽싼 엄마의 손으로 옮겨 갔다.


“너 콧물 나던데... 먹던 포크 주면 아빠 감기 옮아!”

냉랭하게 뱉은 엄마의 말에 레도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어른인 아빠가 나보다 약하다는 말이에요?”

자주 먹는 떡볶이가 질린다는 말에 엄마의 기분이 상한 것은 알겠다. 그렇다고 가벼운 감기에 걸린 아들을 병균 취급하는 말에 레도의 기분도 상하고 말았다.

“몰랐니? 맨날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아빠가 얼마나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너 몰랐어? 전자파가 얼마나 사람한테 안 좋은 건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아빠야!”


엄마의 짜증 섞인 말에 레도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사실, 최근에 우리 가족 병치레는 아빠가 다 한다. 일교차가 심해진 뒤로 감기에 가장 먼저 걸린 것도 아빠였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병원 진료에 약까지 챙겨 먹는 것도 아빠뿐이었다.

시도와 레도는 웬만큼 감기에 걸려도 이삼일이면 거뜬히 나았다. 약을 먹지 않아도 말이다. 게다가 아빠는 평소에 소화불량 때문에 고생을 하고 걸핏하면 설사를 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나 뭐라나?


지난주에는 왼쪽 눈의 흰자위가 빨개서 온 가족이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아빠가 좀비라도 된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과로해서 눈의 실핏줄이 터진 거라고 했단다. 다행히 며칠간 안약을 꼬박꼬박 챙겨 넣어서 잘 나았나 싶었는데, 다음에는 귀가 아프다 했다.

밤새 하도 아파하길래 엄마는 중이염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했지만, 병원에 갔더니 외이염이란다. 레도와 시도는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안약 넣기가 끝나자마자, 아빠는 귀에 물약을 매일 한 방울씩 넣어야 했다.

“아빠, 내 포크 쓰지 마세요.”


레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레도의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레도는 애써 정돈한 머리카락을 헤집는 아빠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있는 대로 짜증을 부렸다가는 버르장머리 없다는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냥 참았다.

“아빠, 우리 오늘 공원으로 산책하러 갈까요? 호수 공원에 분수대가 새로 생겼대요.”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정보를 이야기하며 시도가 말했다. 아빠는 아직 피곤이 가시지 않았는지 선뜻 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차려 준 잣죽을 후루룩하고 떠먹을 뿐이었다.


“참! 호수 공원 옆에 짓고 있던 도서관 공사도 끝났다는 것 같던데, 개원했는지 모르겠네.”


갑자기 밝은 음성으로 엄마가 말했다. 시도가 엄마의 설레는 말에 역시나 즐거워하며 대꾸했다.

“했대요. 사람들 엄청 모인대요. 우리도 한 번 가 봐요, 엄마! 산책도 할 겸.”

시도가 엄마의 마음을 움직여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 했다. 마음 없어 보이는 아빠를 움직이려면 엄마를 움직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여보, 죽 한 그릇 얼른 먹고 우리 나가요. 오랜만에 온 가족이 산책하는 거예요.”


“앗싸!”


시도는 벌써부터 신이 나는지 공중제비를 두어 바퀴 돌았다. 그런 시도의 모습에 아빠의 입가에도 어쩔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럼, 우리 오랜만에 모두 함께 외출할까?”

“전 빼주세요.”


즐거워하던 엄마와 시도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레도가 뱉은 말 한마디에 집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침묵 속에서 엄마의 날카로운 눈빛만 칼끝처럼 레도를 향하고 있었다.


“같이 가자, 레도야. 뭐 달리 할 일 없지 않아?”

“형, 같이 가자! 재밌을 거야, 응?”


아빠의 권유에 이어 시도가 레도에게 간절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난 그냥 집에 있는 게 더 좋아. 셋이서 즐겁게 다녀오세요!”


레도는 은근 기대했다. 가족들이 없는 토요일 오후, 혼자서 집에 있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래! 그럼 레도는 집 지키고 있어.”

레도는 의외라는 듯 이맛살을 슬며시 들어올렸다. 웬일로 엄마가 저렇게 쉽게 허락을 하지? 설마, 꿈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는데? 미심쩍은 마음이 들면서도, 레도의 머릿속은 이미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정말? 나 오늘 게임 할 수 있는 거야?’

초롱초롱한 레도의 눈이 엄마를 응시했다. 그러나 레도는 눈을 가늘게 떠 보였다. 엄마의 미소 띤 얼굴이 무언가 의미심장했다. 도대체 뭘까? 저 미소 뒤에 숨겨진 계략은?

“대신, 집에 있는 리모컨은 엄마가 모두 가지고 갈 거야. TV 리모컨은 물론이고, 게임 리모컨, 에어컨 리모컨도 갖고 갈 거야!”

그럼 그렇지! 레도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에이컨 리모컨은 옵션인가? 쳇! 게임에 대한 꿈은 이렇게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레도는 한 가닥 희망을 잃지 않았다. 게임은 휴대전화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세요.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레도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대꾸했다. 절대로 당황하지 않은 척 해야 한다. 그래야 엄마는 게임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집에서 쉬고 싶은 거라 생각하고 이쯤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런데 레도는 도저히 더 이상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엄마가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


“와이파이도 끄고 갈 건데... 괜찮겠니?”

에잇! 이번 달 데이터를 다 썼다는 것을 엄마는 어떻게 알았을까? 레도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는 기가마미에게 다가갔다.

“기가마미!”

“네?”

“오늘 날씨 어때?”


레도는 귀찮은 산책만이라도 막고 싶은 마음에 기가마미에게 물었다. 창밖에 해가 쨍쨍인 걸 보니, 비 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렇다면 미세먼지라도 나빠라!


“오늘은 구름만 조금 낀 아주 화창한 날이에요. 미세먼지도 좋아요. 최고 기온 20도, 최저 기온 10도,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이에요.”

레도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에 세찬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아빠와 엄마, 시도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레도는 조금은 원망의 눈으로 기가마미를 바라보았다. 엄마를 닮은 기가마미, 상냥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왠일인지 오늘은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레도는 두말없이 현관으로 갔다. 운동화를 꺼내 신으면서 외쳤다.


“빨리 안 나오고 뭐 하세요? 야, 이시도! 빨리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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