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눈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눈
지난 4월 25일, 넷플릭스 채널을 통해 [약한 영웅 Class 2]가 8부작 전편 공개되었다. 2022년에 방영되었던 시즌 1이 후속편의 개봉을 앞두고 업데이트되었기에, 나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이 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다.
시즌 1을 워낙 인상 깊게 보았기에, 나는 후속작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시리즈물의 성공은 대체로 쉽지 않다. 특히, 완성도가 높은 전작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전작의 감동이 계속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와 더욱 흥미로울 거라는 기대를 동시에 안은 채, 시즌 2를 시청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우려는 기우였다. 전작에서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친구를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안수호’라는 인물이 죽지 않고 식물인간으로나마 살아있다는 설정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여전히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깊이 있는 우정의 서사는 무게감을 잃지 않았다.
폭력을 싫어했지만, 폭력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속에서 아름다웠던 우정이 깨져 버렸고, 그로 인해 주인공 ‘연시은’은 깊은 절망에 빠져든다. 세 친구의 우정이 더욱 빛나기를 바랐던 시청자의 입장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시즌 2가 있다는 암시가 다시금 희망을 간직하게 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얼마든지 회복될 여지가 있어.’
그런 기대를 가진 시청자들에게 수호의 생존은 희망에 더욱 불을 지피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줄거리는 마냥 판타지스러운 희망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시은은 전학 간 은장고에서 또다시 지긋지긋한 폭력의 세계를 맞닥뜨려야 했다.
‘이전 학교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과장된 소문이 돌아, 시은은 위협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소문을 믿고 섣불리 건들지 못하던 불량 학생들이 시은의 주변 인물을 지속적으로 괴롭힘으로 인해 결국 시은은 다시 싸움을 선택하게 된다. 한숨이 끝없이 나오는 드라마였다. 새롭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다시금 소중한 우정을 쌓아가려는 찰나에 악의 무리는 끊임없이 시은을 흔들고, 조용히 지내려는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폭력이 옳지 않은 것을 안다. 그래서 폭력을 쓰지 않기를 원한다. 폭력을 밥 먹듯이 행사하고 약한 자를 제압하는 도구로 쓰는 이들과 거리를 둔다.’ 그것이 수호를 잃을 위기에 놓인 시은의 기조였고, 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은은 안간힘을 쓴다.
그런 시은의 눈은 너무도 슬프다. 언제나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고 있다. 친구들 속에서 푸근히 웃을 법한 순간에도 입은 웃되, 눈은 울고 있다. 그 눈은 불행의 연속인 우리네 삶의 현실을 반영한 듯하다. 잠깐 숨을 쉬고, 잠깐 웃을지언정, 맘 편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고달픈 우리들의 삶 말이다.
시은의 슬픈 눈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눈일지도 모른다. 오늘 감사했고 행복했지만, 언제 또 불행이라는, 고통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뒤덮을지 모르는 불안과 슬픔.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변한 시은의 눈이 드라마가 끝난 지금에도 내 마음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건들지 마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이의 삶을 흔들지 마라.”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러한 말을 몇 번이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박후민’이 가르쳐 준 싸움 기술로 악한 일을 도모하는 ‘나백진’이라는 인물의 행태는 시은과 새 친구들(박후민, 서준태, 고현탁)과의 관계를 무자비하게 흔들어 버린다.
불안했다. 시즌 1의 실패가 시즌 2에서도 이어질까 두려웠다. 19세 관람 불가 드라마이지만, 행여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되어 품게 될 생각이 염려스러웠다. 친구를 ‘믿을 수 없는 존재, 내 인생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게 만드는 존재’쯤으로 비하해 버리면 어떡하지?
비단 미성년자뿐 아니라, 이 드라마를 시청하게 될 어른들에게 끼칠 영향도 걱정이었다. ‘그렇지, 어딜 가나 악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되지’ 하며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가 조장될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시은이 유학을 포기하고 친구들을 선택함으로써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넌 아무 잘못 없어.” 수호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시은에게 친구들의 믿어주는 말은 무너진 시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마음이었다.
시은의 명석한 두뇌가 기지를 발휘한다. 후민 역시 백진을 향해 가졌던 죄책감에서 벗어나며 친구들을 지키겠노라 결심한다. 두 친구의 계획에 흔쾌히 함께하기로 다짐한 은장고 친구들과 나백진 무리의 마지막 혈투가 벌어진다.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폭력 장면이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안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해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은 여러 차례 시큰거렸다. 옳고 그름보다는 그저 자신이 속한 무리의 승리만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과 무엇이 그리 다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철없는 아이들의 유치한 싸움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가진 힘으로 약한 자를 제압하는 게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계산적인 생각을 한 거였고, 누군가는 더 이상의 폭력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거였다. 그러기 위해 주먹을 내뻗고, 다리를 치켜올렸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거친 욕설을 입에 담았다.
너무도 다행히 폭력을 반대하는 주인공 무리의 승리로 싸움은 끝이 났다. 단지 내 주먹의 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쓰러진 친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희생적인 버팀’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나는 이것이 그저 드라마라서 가능한 결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은 우리 안에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를 짓밟아야 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곳에서 그려진 우정은 단순한 친구 간의 의리가 아닌, 사람 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이며, 그것을 인정할 때 내가 소중하듯 너 또한 소중하다는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에 수호가 깨어났다. 시종일관 슬픔을 머금었던 시은의 눈이 달라졌다. 수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력을 다해 뛰어올 때, 시은의 옆에는 새 친구들이 있었다. 시은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짊어주었던 친구들, 이제는 시은의 기쁨과 감격을 함께 누려주려는 친구들.
깨어난 수호는 시은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묻는다. 시은은 “친구들.”이라고 답하고, 수호는 “보기 좋네.”라고 말해 준다. 그 장면에서 정말로 눈물이 많이 났다. 시은에게는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가 돌아왔고, 새롭게 만난 이들을 친구라고 소개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이제야 생긴 것이다.
전편을 보고, 후기를 쓰면서도 언급했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한 학원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통찰이 담긴 드라마이며, 아이들뿐만이 아닌, 어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의미 있는 드라마이다.
이러한 결말을 선사해 준 작가와 제작진에게 진심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시즌 3에 대한 예고는 없었지만, 누구나 3편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지킬 만큼 강한 싸움 기술을 가진 이 친구들이 한데 어우러져 약한 친구들을 돕고,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울 거라는 것을. 그 안에서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