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레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시한 산책을 끝내고 집에 왔는데, 현관부터 맛있는 냄새가 레도의 침샘을 자극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주방에 갔더니,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피자 한 판이 식탁에 떡 하니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레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식탁 옆에 서 있는 기가마미를 바라보았다. 설마... 기가마미가 요리를?
“잘 먹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시도가 씻지도 않은 손으로 피자를 집으려 했다. 그러나 시도의 손을 막는 기가마미의 손이 더 빨랐다.
“외출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해요. 피자는 앞으로 6분간 따뜻함을 유지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손을 씻고 오도록 해요.”
기가마미의 친절한 말에 시도가 멋쩍은 표정을 지은 뒤, 욕실로 향했다.
“기가마미!”
“네, 엄마!”
외투를 벗으며 엄마가 기가마미를 불렀다. 기가마미는 그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재빠르게 파악한 뒤 답을 했다.
“시간 맞춰 잘해 줬네. 고마워.”
“별말씀을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또 말씀해 주세요.”
“그래.”
엄마와 기가마미의 대화를 듣던 레도의 눈이 감탄스러움으로 가늘어졌다. 오는 길에 전화로 엄마가 기가마미에게 간식 준비를 지시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줄은 몰랐다.
“기가마미가 요리도 하네요! 진짜 대단하다!”
“정교한 작업은 어려워도, 이미 손질된 재료로 레시피에 따라서 요리하는 건 가능해. 맛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손을 씻고 나온 아빠가 레도에게 설명해 주었다. 레도는 다시금 신기하게 기가마미를 바라보았다. 기가마미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걸까?
“으음! 너무 맛있다!”
손을 씻고 나온 시도가 제일 먼저 피자를 한 모금 베어 먹고는 외쳤다. 레도도 서둘러 손을 씻으러 달려갔다. 손을 씻는 동안, 피자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레도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우와! 엄마가 해 준 것보다 훨씬 맛있다!”
시도의 두 번 생각하지 않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엄마의 미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지 못한 레도가 그 말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당연하겠지. 엄마가 로봇처럼 완벽하게 맛의 비율을 맞출 수는 없을 테니까.”
“어허, 이 녀석들! 이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둔 건 엄마야.”
아빠가 엄마의 눈치를 보며 큰소리로 을러댔다.
“재료 준비야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아요? 맛있게 하는 게 중요한 거지.”
레도의 말에 여전히 눈치 없는 시도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지. 근데 그 맛의 비,법,을, 누,가, 입,력,했,느,냐,도 중요한 거지.”
지극히 또박또박 내뱉는 엄마의 말에 레도와 시도의 피자를 씹는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형제는 동시에 엄마를 바라보았다. 작위적인 미소가 엄마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작위적인 미소 뒤에 감춰진 엄마의 심기 불편함이 그제야 레도에게 느껴졌다. 레도는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기가마미를 보면서 어째서 엄마가 늘 못마땅한 표정이었는지 이제야 레도는 알 것 같았다.
“엄마, 기가마미 질투해요? 질투할 대상이 없어서 로봇을 질투해요?”
레도의 한심하다는 투에 모두의 얼굴이 경직됐다.
“엄마, 난 기가마미가 아무리 뛰어나도 엄마가 더 좋아요. 질투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시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도 그래, 여보. 기가마미가 좋은 건 당신을 닮았기 때문이야. 로봇하고 당신을 비교하다니 어디 말이나 돼?”
아빠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한마디 했다. 레도는 어깨를 으쓱이며 새로운 피자 조각을 집어 들었다. 산책을 하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모양이다. 한 조각을 다 먹었음에도 레도의 허기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새 조각을 베어 물기 위해 레도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런데 그 입이 피자를 향해 다물어지지 못했다. 노려보는 엄마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레도, 넌... 엄마 자식이지? 엄마가 열 달 동안 배 속에서 고이 기르고, 14시간을 진통하다가 결국에는 수술을 해서 낳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아주느라 밤잠 설치게 한 우리 아들, 그렇지?”
레도는 한숨과 함께 피자를 와구 씹었다. 머릿속에서는 지루한 레퍼토리가 또 시작될 것에 대한 염려가 피어올랐다. 엄마는 또 뭐가 불만인 걸까? 시도와 아빠가 기분 좋은 말을 한마디씩 해 줬는데도 만족이 되지 않는 걸까? 끝내 큰아들의 말까지 들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걸까? 그러나 오늘도 레도는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건 아빠와 시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인정하세요, 그냥! 괜히 비교하면 엄마만 슬플 거예요. 로봇이니까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 오히려 속 편할 거예요.”
그새 식어버린 피자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레도가 말했다.
“어휴, 진짜!”
손으로 부채질을 해 대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아빠가 레도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그러나 레도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영문을 모르기는 시도도 마찬가지인지 엄마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며 두 눈을 끔뻑였다.
기가마미는 엄마를 돕기 위해 데리고 온 로봇이다. 그래서 엄마가 기가마미에게 필요한 기능을 입력하고 맞춤형 도우미로 세팅 중이다. 기가마미는 엄마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집 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돌리고 말렸으며, 간단한 요리도 했다.
레도와 시도의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알람 역할도 했으며, 아빠가 챙겨 먹어야 할 약을 시간 맞춰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 기가마미가 집에 온 이래 5일이 지났다. 5일 만에 집안 분위기는 많이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끙끙대는 소리가 사라졌다. 글을 쓰는 일에 오전 시간을 할애하다가 저녁나절에 집안일을 몰아서 하는 엄마는 언제나 육신의 피로를 호소하곤 했다. 그러나 기가마미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면서 엄마의 피로는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는 것을 온 가족이 느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불편함 한 줄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기가마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로 좋으면서도, 엄마의 얼굴은 그다지 환하지 않은 것이다.
“여보, 기가마미 어때? 도움이 좀 되는 것 같아?”
퇴근 후, 아빠가 겉옷을 벗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그만 좀 물어요. 그 질문을 퇴근하고 올 때마다 한다는 거 알아요?”
오늘도 냉랭한 엄마의 말에 아빠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옆에서 레고 놀이를 하던 레도가 고개를 좌우로 저어댔다. 아빠가 매일 똑같이 질문하는 이유를 엄마는 모르나 보다. 언제나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 의아해서 묻는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내일이 공모전 발표 날이지?”
아빠의 말에 엄마가 무심코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되었다. 순간 긴장이 됐는지 엄마가 심호흡을 했다. 그런 엄마의 옆에서 함께 긴장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레도였다. 또다시 단어 하나가 레도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발, please!’
“기가마미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결과 기다려. 당선도 되고 무사히 여행도 갈 수 있을 거야.”
아빠의 긍정적인 말에 솔직히 레도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당선이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러나 레도는 재빨리 방금 했던 부정적인 생각을 털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아빠의 말처럼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바라고 바라던 게임의 날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아빠, 엄마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레도는 시도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철도 없고, 눈치도 없는 녀석! 희망에 재를 마구 뿌리는 녀석! 레도는 행여 시도의 말이 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 두려워 고개를 돌리고 ‘퉤퉤퉤!’하고 침 뱉는 시늉을 했다.
“어떡하긴 어떡해?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지.”
정말로 오랜만에 미소를 띤 엄마가 말했다. 시도가 방긋 웃으며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레도는 웬일로 기분이 좋아진 엄마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정말 기뻐.”
자상함을 버터처럼 느끼하게 바른 엄마의 말에 레도의 미간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향하여서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갑자기 가까이 다가선 엄마가 레도에게 말했다.
“동생 말이 씨가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레도야. 우리 아들이 엄마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줄도 모르고 엄마가 괜히 심술만 부린 것 같아 미안해.”
불길한 예감이 든다 싶더니, 엄마의 오른손이 레도의 엉덩이를 톡톡톡 두드렸다. 레도가 기겁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누르며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레도는 이를 악물고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안 되면 어쩌나 하던 시도의 말에 ‘퉤퉤퉤!’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엄마를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아, 정말 힘 난다! 기가마미가 엄마 일도 잘 도와주고, 우리 아들들도 언제나 엄마를 응원해 주고, 우리 고마운 남편님, 언제나 마음을 헤아려 주니... 정말 고마워요, 모두!”
레도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유지했다. 버럭하는 자신의 뒤에서 아빠가 몰래 속삭이는 말이 무엇인지 레도는 사실 다 안다. 질풍노도! 그러나 레도는 어째서 그 말이 엄마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 같은 마음의 상태는 엄마의 상태와 더 닮은 것 아닐까? 레도는 어색한 미소를 짓느라 쓴 입가 근육이 아팠다. 그래서 이제는 입 근육을 자유롭게 놓아둔 뒤, 그저 레고 만들기에 집중했다.
‘누가 더 정서적인 동요가 심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번에는 입가 근육이 삐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