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자유시간

8화

by 금머릿

“너 진짜 좋겠다!”


하교하는 내내 동민이가 부러운 얼굴을 했다. 기가마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였다.


“근데, 아직은 몰라. 결과 발표가 오늘 오후라고 했거든.”


“이런 기회가 오다니 진심 부럽다, 친구야!”


동민이의 부러움을 담은 말에 레도가 씨익 웃었다.


“그치? 근데, 아직은 아니라니까! 발표가 나 봐야 안다고. 엄마가 가실지 안 가실지.”


레도는 엄마의 공모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선이 되어야 누릴 수 있는 자유시간에 대해. 그러나 여전히 부러운 얼굴인 동민이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신 게임기도 부러운데, 디지멀도 아닌 기가마미라니! 어째서 그런 기가 막힌 기회는 너한테만 오는 거냐?”


레도는 그제야 부러움의 포인트를 알았다. 엄마 없는 자유시간이 아니었다. 동민이가 부러워하는 점은 신기한 엄마로봇, 기가마미를 체험할 수 있다는 그 자체였다.


“보러 갈래? 기가마미!”


레도의 제안이 들리자마자, 동민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좋은 친구, 최고의 친구, 의리있는 친구, 멋진 친구 등을 운운하며 동민이는 레도의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 레도도 기분이 좋았다. 기가마미의 놀라운 기능 앞에서 입 다물지 못할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났다.


학원 갈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라고 떠벌리는 동민이와 함께 레도는 집에 도착했다. 띠리리! 레도가 도어록에 손바닥을 대자마자 현관문이 왈칵 열렸다. 깜짝 놀라 바라본 곳에 시도를 등에 업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레도야, 엄마 병원 다녀올게.”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 엄마는 슬리퍼를 오른쪽 왼쪽 반대로 신은 채였다. 그렇다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엄마는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이 2층이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보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도는 왠지 불안했다. 슬리퍼를 반대로 신고, 가볍지 않은 시도를 업은 엄마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불안했다. 레도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의 뒤를 쫓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을 헛디딘 엄마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레도가 업힌 시도를 붙들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시도와 함께 계단을 구를 뻔했다. 엄마에게 업힌 시도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레도야, 엄마 다녀올게.”


아까 했던 말을 다시 내뱉으며 엄마는 이번에는 좀 더 조심하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레도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아파하는 시도도 걱정이었고, 당황하는 엄마도 걱정이었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동민이가 있는 현관 앞으로 돌아왔다.


“시도가 아픈 모양이네. 어디가 아픈 거지?”


함께 염려해 주는 동민이와 함께 레도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기가마미!”


레도는 대뜸 기가마미부터 불렀다.


“네?”


기가마미의 목소리가 들리자, 동민이의 두 눈에는 호기심이 잔뜩 어렸다.


“시도가 아파?”


“네, 배가 아프다는 말에 엄마가 매실차를 주었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어요.”


동민이의 눈이 하염없이 커지는 동안, 레도는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엄마가 어느 병원으로 가고 있는지 알아?”


“네, 오른쪽 아랫배를 눌렀을 때 아픔을 호소하는 것으로 보아 충수돌기염이 의심이 되어 응급실 가실 것을 권유해 드렸어요.”


레도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동민이를 바라보았다.


“충수돌기염이 뭘까?”


레도의 말에 동민이가 부푼 가슴을 안고 기가마미를 바라보았다.


“기가마미!”


“네?”


단번에 답하는 기가마미의 목소리에 동민이가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충수돌기염이 뭐야?”


“맹장 끝에 달린 충수돌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을 말해요. 흔히 맹장염이라고 불리지만 옳은 표현은 아니에요.”


“아, 맹장염!”


동민이가 밝은 목소리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외쳤다. 그래서 레도는 동민이가 설명해 주길 바라면서 친구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사촌 형이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고....”


“수수우울?”


레도의 얼굴은 삽시간에 근심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동민이의 밝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딱 3일 입원한 다음, 바로 퇴원했어. 금방 예전처럼 똑같이 생활했고. 큰 병 아니야. 큰 수술도 아니고. 수술받고 입원 치료받으면 금방 낫는 병이야.”


동민이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는 바람에 레도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야말로 다행이었다. 눈치 없고, 철도 없는 동생이었지만 큰일이라도 나는 건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친구의 설명 덕분에 시름을 접어 내린 레도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희망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동민아, 수술하고 나서 얼마나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응? 아, 3일?”


레도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막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시도를 간호하기 위해. 아픈 동생을 앞두고 기뻐한다면 정말로 나쁜 형일 것이다. 레도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의 시간 때문에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나쁜 형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기가마미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동민이는 학원 갈 시간이 다 되었다며 돌아갔다. 레도가 서둘러 손을 씻고 게임기의 리모컨을 찾았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언제나 리모컨을 서랍에 넣어 둔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레도가 서랍 속의 리모컨을 꺼내려는데 손이 달달 떨렸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동생이 수술할지도 모르는 이 긴박한 순간에 게임을 하려는 생각이 들다니... 마음 한구석에서는 레도의 자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기회를 단순히 걱정만 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을 하든 하지 않든, 시도는 수술을 잘 받고 다시 건강해질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레도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조용한 집안에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레도는 발신인을 확인했다. 아빠였다.


“레도야! 엄마, 지금 뭐 해? 엄마 기분 많이 안 좋아?”


레도는 아빠의 낮은 목소리만으로도 결과를 예측할 수가 있었다. 엄마는 공모전에 당선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결과를 확인한 아빠는 엄마가 우울할 거라 생각하고, 레도에게 먼저 전화를 건 거였다.


레도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엄마가 당선에 실패했고,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타이밍에 시도가 아픈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인지도 모른다. 단 3일이라도 실컷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


“아빠, 시도가 아파서 엄마가 병원에 데려갔어요.”


“뭐어?”


아빠의 목소리가 크고 높아졌다.


“기가마미 말로는 맹장염 같대요.”


“어, 그래. 알았어, 레도야. 아빠가 엄마한테 전화해 볼게.”


“네.”


레도는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리고 어서 게임기를 켜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게임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아빠는 레도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레도가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답하자, 아빠는 말했다.


“기가마미 있으니까 괜찮지? 혼자 있을 수 있지?”


레도는 피식 웃는 소리를 냈다. 그딴 걱정을 하시다니. 내가 어린 애도 아닌데 아빠도 참....


“그럼요. 기가마미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 걱정보다 엄마에게 얼른 연락해 보세요. 시도 많이 아파 보였어요.”


믿음직스러운 레도의 말에 아빠는 전화를 끊었다. 레도는 당장에 게임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가슴 설레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실보다도 더욱 실감 나는 하늘과 구름, 그 아래 키보다 더 큰 검을 든 레도의 아바타가 보였다.


레도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 기대했던 대로 엄마의 당선과 여행이 가져다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다가온 이 시간을 후회 없을 만큼 만끽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레도의 온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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