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10화

by 금머릿

꼬르르륵! 학교에서 급식을 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시도가 병원으로 가고, 아빠의 연락을 받고, 게임을 하느라 무얼 먹을 정신이 없었다. 그랬다는 것을 텅 빈 배가 소리로 증명했다.


그러나 레도는 그 소리에 반응할 수가 없었다. 손발이 꽁꽁 묶인 채라 무엇을 먹으러 갈 수가 없었다. 기가마미가 차린 엄마의 음식들은 이미 식어 빠졌을 것이다. 아까운 엄마의 요리....


“기가마미!”


“네?”


레도의 얼굴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한참 만에 부른 기가마미는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레도는 기가마미가 제 기능을 되찾았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다시 기가마미를 불렀다. 잠시 오작동을 한 거였나 보다.


“기가마미!”


“네?”


“나 좀 도와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역시! 레도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내 손과 발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줘!”


상냥한 얼굴로 기가마미가 레도에게 다가왔다. 레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기가마미가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온다면 손발이 자유로워지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게임을 하는 대신 숙제를 할 거라고 레도는 다짐했다.


“제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녀석,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을 수도 없고!”


상냥한 얼굴로 다가오던 기가마미는 뜬금없는 말과 함께 멈춰 섰다. 레도가 놀란 눈으로 기가마미를 바라보았다. 기가마미의 목소리가 변한 건 아니었지만, 어투가 변했다. 저 어투는 늘 엄마가 하소연하며 하던 말....


레도는 입안에 고인 침을 꼴깍하고 삼켰다.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엄마의 모습을 녹화하며 엄마 공부를 했던 기가마미였다. 기가마미는 엄마의 모든 모습을 녹화했고, 엄마의 속상해하는 말까지 모두 입력한 모양이다.


기가마미의 친절하지 않은 행동은 모두 엄마의 부정적인 발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순간, 레도는 엄마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자신을 향한 미움과 못마땅함이 기가마미까지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엄마의 간섭과 구속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벌주고 싶은 마음까지 기가마미에게 입력한 엄마가 레도는 너무도 미웠다.


‘엄마가 뭔데? 대체 엄마라는 존재가 뭐길래 자식을 이토록 괴롭게 하는 거야?’


레도의 마음속에 분노가 솟아올랐다. 엄마는 그렇게 완벽해? 아들을 비난하고 판단할 만큼 그렇게 대단해?


“기가마미!”


“네?”


“엄마를 보여줘.”


“네, 엄마 폴더로 이동합니다.”


엄마 폴더라! 도대체 엄마가 어떤 모습을 기가마미에게 보여줬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레도는 궁금했다. 그래서 엄마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기가마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하고서는 돌아섰다. 기가마미의 등에 있는 브라운관이 켜졌다.


켜진 화면은 기가마미의 시선으로 녹화가 된 것이었다. 화면 속에서 엄마는 언제나처럼 길지 않은 머리카락을 한곳으로 모아 묶고 있었다. 자는 동안 풀어 두었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모아 묶는 것으로 엄마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말끔히 세수한 얼굴로 엄마가 기가마미에게 다가갔다.


“기가마미!”


“네?”


“잘 잤어?”


“네, 덕분에 숙면을 취했어요.”


사람처럼 잠을 잘 리가 없는 기가마미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이미 준비된 멘트에 엄마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상황에 맞게 입력된 답변이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네. 레도와 시도가 좋아할 만해.”


혼잣말을 한 엄마는 뒤이어, 기가마미에게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아빠가 마시고 갈 미숫가루를 타는 법, 레도와 시도의 날씨에 맞는 옷 찾는 법, 아침밥을 차려야 할 시간 등을 자세히 설명하며 차근차근 일을 해 나갔다.


식탁 위에 올려진 엄마의 휴대전화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자, 엄마는 아들들의 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시도와 엄마의 코맹맹이 대화 소리가 들렸다. 화면을 지켜보던 레도가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자신을 향한 엄마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릴 차례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담담히 ‘일어나라.’고 이른 뒤, 엄마가 계단을 내려갔다. 레도의 주름진 미간이 펴졌다.


‘아! 그날이구나. ‘엉덩이 톡톡’을 건너뛴 날. 그날 아침 반찬은....’


레도의 기억대로 엄마는 골뱅이를 무치고 있었다. 전날 준비해 두었던 재료와 양념으로 서둘러 무치면서 엄마는 기가마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골뱅이무침은 레도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야. 아침에는 입맛 없어 하는 레도가 아침마다 먹고 싶어 하는 반찬이지. 근데, 사실 이렇듯 손이 많이 가. 전날의 준비가 없다면 바쁜 이 아침에 만들 수 없는 반찬이지.”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엄마의 입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늘은 바쁜 아침이 아닌가요?”


기가마미의 질문에 엄마가 여전히 골뱅이를 무치면서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렇긴 한데.... 어제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레도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 그 녀석....”


엄마가 무슨 말을 더하려 했지만, 출근 준비를 끝낸 아빠가 다가와서 이야기가 이어질 수 없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미숫가루 쉐이크가 담긴 유리컵을 내밀었다. 다 마신 아빠가 바쁘게 현관으로 걸어갈 때 그 뒤를 따르며 아빠의 목걸이 사원증과 자동차 열쇠를 챙겨 주었다.


밝은 미소와 함께 아빠를 배웅하고 나자, 세수를 마친 시도가 엄마에게 다가왔다. 엄마는 오늘 날씨가 어떠한지를 설명하면서 입을 옷을 건네주었다. 시도가 옷을 입는 동안, 뒤이어 레도가 일어났다. 엄마는 레도에게도 옷을 건네준 다음, 다시 주방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기가마미에게 설명을 하며 밥을 그릇에 담은 엄마가 레도와 시도의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았을 때, 레도의 흠칫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도는 저도 모르게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레도의 기억대로 화면 속의 레도는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엄마! 혹시 내 알림장 확인했어요?”


그리고 언짢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골뱅이무침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는 레도의 뒤에다 대고 엄마는 고함을 쳤다. 동민이는 뭔 죄냐고, 덜렁대는 친구 덕에 걔는 왜 불편함을 겪어야 하냐고.... 멀리에서 레도의 화가 난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어깨가 축 처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어 시도가 어두운 얼굴로 인사를 하고서 집을 나섰다. 애써 작은아들에게 미소를 보여주었지만, 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마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가마미!”


“네?”


“정말... 정신없지?”


“네! 정말 정신이 없어요.”


엄마는 또다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기가마미에게 다가갔다.


“에휴... 답답한 심정을 로봇에게 이야기하는 신세라니.”


“힘내세요, 엄마!”


엄마는 좀 더 밝은 얼굴로 기가마미에게 웃어주었다. 그러고는 레도와 시도가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잠옷을 정리하며 이야기했다.


“어제,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레도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로 생각이 많아졌어. 난 레도가 나를 사랑하지만 정말로 쑥스러워서 그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내가 더 많이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도 의식적으로 많이 했고, 엉덩이도 많이 두드려 줬지.”


엄마의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지 마땅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한 기가마미가 끼릭, 끼릭 하는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아까 레도가 들었던 기가마미의 소리와 같은 거였다.


“근데, 서슴없이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보니, 단순히 쑥스러워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레도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언제나 다그치는 엄마, 피곤에 절어 고함치는 엄마... 나라도 싫을 것 같아.”


엄마의 눈자위가 붉어지고 있었다. 기가마미는 이번에도 답변 대신 끼릭 하는 기계음을 냈다.


“그깟 골뱅이무침이 뭐라고, 전날 조금만 준비하고 아침에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 건데, 그걸 못 해줬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오늘은 해 준 거야. 아들로서의 모습만 강요했지, 난 엄마로서의 모습이 부족했던 건지도 몰라.”


답변 없는 기가마미를 엄마가 바라보았다.


“기가마미!”


“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네, 엄마의 이야기를 폴더를 만들어 따로 저장해 두어도 괜찮을까요?”


“응... 그래. 그러는 게 편하면 그렇게 해.”


그리고 엄마는 다시 돌아서서 레도의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 엄마의 손에는 물감 세트가 들려 있었다. 욕실에 가서 지저분한 팔레트를 씻는지 물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깨끗해진 팔레트에 물감을 하나 하나 손수 짜면서 다시 기가마미를 불렀다.


“좋은 엄마란 뭘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친구처럼 대화를 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죠.”


레도는 화면 속의 기가마미의 답변이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누군들 못하겠는가. 이미 입력된 식상한 그 말은 그다지 귀담아들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여겼다. 그런데 화면 속의 엄마는 그 말에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껏 눈시울을 붉힌 엄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어려워.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게. 아이들의 마음을 다 읽기도 어렵고, 친구처럼 대화해 주고 싶지만 쉽지 않아. 어떻게 하면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이번에도 기가마미가 끼릭 하는 소리를 내는 동안, 엄마는 안방에서 드라이기를 가지고 나왔다. 팔레트에 짠 물감을 말리기 위해 엄마는 드라이기를 한참이나 들고 있었다.


드라이기로 물감을 말리는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바라보던 레도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저 시간은 엄마가 졸리지 않는 온전한 정신으로 글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 말랐다. 기가마미!”


“네?”


“학교 다녀올게.”


“네, 즐거운 학교생활 하시길 바라요.”


엄마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입력된 멘트로만 답하는 기가마미가 엉뚱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는 화면을 바라보며 레도의 고여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레도는 그 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교실로 찾아온 엄마에게 자신이 얼마나 쌀쌀맞게 대했는지가 떠오르자, 눈물이 더해졌다. 고맙다는 말 마디를 하지 못했음이 떠오르자 미안함이 온 가슴을 에워쌌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레도의 젖은 눈이 반짝하고 떠졌다. 전화벨 소리였다. 누가 전화 한 걸까? 혹시, 엄마? 설마, 정말... 엄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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