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동행, 긴 여운
비가 온다. 많이 온다.
습해서 끈적해서 한숨 나오다가도 서늘한 바람이 그 숨을 조금은 달래준다. 옷이 걸린 두 개의 방마다 제습기를 틀었다. 요즘은 잠깐 환기할 때 말고 거의 24시간 틀어놓는다. 옷에 곰팡이가 피는 거 정말 싫으니까.
비 오는 소리는 시간대에 따라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한낮에 쏴아 쏟아지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대기의 먼지를 씻어주는 듯한 청량감에 정신마저 맑아진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나 아이들 등하교 시간의 빗소리는 근심과 초조함을 안겨준다.
‘길이 많이 미끄럽겠네. 사고 나지 않아야 할 텐데.’
‘운동화가 다 젖겠네. 감기 걸리지 않아야 할 텐데.’
이 빗속을 헤치고 큰아들과 시청에 다녀왔다. 여름에 있을 단기선교를 위한 여권 발급 때문이었다. 아이는 한 주 전에 종강을 해 놓고서도 두 차례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늘에서야 시간이 났다.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더니, 방학 때도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참 열심히도 논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라고 물었단다. 모 교수님은 한국사 자격증이나 컴퓨터 활용같은 짧은 시간 준비하고 딸 수 있는 자격증을 따 놓으라고 했단다. 모 선배는 무조건 많이 놀라고 했단다. 나중엔 놀 시간이 없을 거라고.
아무래도 선배의 말에 더 귀가 솔깃한 것 같다. 나라도 그렇겠다. 자격증이 필요할지 말지는 불분명하지만, 놀 수 있는 시간이 지금밖에 없다는 말은 꽤 분명해 보이니까.
어쨌든 노느라 바쁜 아들이 겨우 시간을 냈는데, 하필 오늘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내 사정 봐주지 않고 그저 쏟아지는 폭우에 차창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와이퍼를 최대한 빠르게 작동해도 유리창에 비친 바깥은 흐물거리기만 했다.
양말을 신는 대신, 샌들을 챙겨 신었다. 젖을 각오로 신은 거지만, 막상 고인 물들을 보며, 이리저리 피해 걸었다. 어차피 다 젖을 건데, 뭘 그리 열심히 우왕좌왕했나 모르겠다.
여권 신청을 마무리했다. 둘째와 막내는 미성년자라 나 혼자 가서 신청하면 됐지만, 첫째는 만 18세 이상 성인이라 직접 방문해야 했다. 혼자 가서 하라고 하면 안 할 게 뻔하니, 자그마한 차라도 몰고 다니는 엄마가 앞장설 수밖에.
여권 신청서를 알아서 척척 작성하는 모양에 미소가 지어졌다. 도로명 주소를 묻기 위해 올려다본 눈에서 아들의 어린 시절 눈이 오버랩됐다. 어느새 훌쩍 컸지만, 초롱초롱한 눈만은 여전해 보여,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신분증을 꺼내어 내밀고, 양쪽 검지의 지문을 차례로 인식할 때, 아들의 손이 언제 저렇게 커졌는지 새삼 놀라웠다. 아직도 나에겐 어린애 같은데 사회에서는 어른이랍시고 이렇게 대우하는 것이 무언가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사진 좀 찍어줘.”
폭우 속 운전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한 이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운전 중이니 옆에 앉은 아들에게 부탁했다. 뭔 사진이냐며 핀잔을 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군말 없이 찍어서 공유해준다.
짧지만 험한 빗속을 함께 헤쳐 나온 동료애라도 생긴 걸까. 젖은 신발을 함께 벗는 기분이 꽤 나쁘지 않았다.
‘엄마랑 너, 이렇게 함께 무언가를 할 시간이 얼마나 더 있을까?’
어제 새벽까지 웬 여자아이와 통화를 한 아들에게 그렇게 물을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들로서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그 대신 엄마다운 말로 갈무리했다.
“다음엔 미루지 말고 날 좋을 때 다녀오자.”
비는 그치겠지만, 비 오는 오늘의 여운은 길게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