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기억(1)
“소매치기야!”
잠을 설친 것도 아니었다. 나름 깊은 수면에 빠져있었다. 남쪽의 겨울과 비할 수 없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더욱 이불 속을 찾아들게 하던 그런 날이었다. 이중창문을 꼭꼭 닫고 커튼까지 꼼꼼하게 쳐두었지만,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을 막아주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던 남편을 나는 만류했다. 소매치기범에게 소지품을 빼앗긴 젊은 여성의 고함은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두려웠다. 우리 집 바로 앞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언제고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확대 해석으로 발전했다.
그즈음 나는 여러모로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처음의 낯섦과 초라함을 극복하고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끼고 있던 차, 그 행복이 단단해지기도 전에 공격을 받았다.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불리는 동네에 인접해 있었던 탓이었을까.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천당 밑에 분당에 위치해 있었고, 우리의 거주지는 그곳이 아닌 그곳에 인접한 변두리 동네에 있었다.
신혼부부가 새롭게 등록했으니 반가워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따뜻하게 맞이하고 관심 가져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러나 심방이랍시고 우리 신혼집을 찾은 이들의 표정과 말에서 나는 그만 상처를 받고 말았다.
“물질의 복을 주시라고 함께 기도할게요.”
“어서 이런 동네에서 벗어나야죠.”
나름 애정을 가지고서 한 말일 거라고 이해를 해보려 했다. 애정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런 조언을 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로 내가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우리 동네가 점점 싫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주택들이 즐비해 있는 동네였다.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데굴데굴 구르지 않기 위해 거의 기다시피 그 언덕을 내려와야 지하철역에 당도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 근처는 넓게 펼쳐진 유흥가였다. 밤에는 온통 비틀거리는 사람들투성이였고, 새벽에는 길 여기저기가 토사물로 장식되곤 했다.
참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그것이 좋아진다. 그 무엇이 정말로 좋게 바뀌지 않았음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고 좋아졌다가도 누군가 그것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해버리면 금세 그것이 또 싫어진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닐 테다. 일명 멘탈이 강한 말뚝귀들은 주변에서 어떤 좋지 않은 평을 해대도 자신의 긍정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에 강한 영향을 받는 팔랑귀들은 단번에 긍정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부정의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와중에 소매치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싫은 동네가 더욱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애정 어린 누군가의 조언처럼 어서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한 밤이었다.
그렇게 ‘이놈의 동네,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이를 갈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나는 부지런히 골목 안팎을 살폈다. 어젯밤 범죄의 현장이었던 집 앞을 더욱 유심히 보았다.
긴장된 마음으로 두 눈 부릅뜨고 살핀 골목 안은 찬란한 햇살만이 그저 눈 부시고 있었다. 다녀오겠다며 손을 흔드는 남편의 얼굴도 해맑을 뿐이었다.
골목 안 어느 집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 두어 명이 나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집에서는 밥 먹으라고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어느 집 아이의 피아노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간밤에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골목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기가 돌고 있었다.
이웃들은 어젯밤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방범이 허술하고, 취객이 즐비한 이 동네가 그들은 어떻게 느껴질까? 나처럼 지긋지긋하니 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까?
골목에서 그리고 골목 밖 슈퍼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전혀 그런 성격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
비록 가진 것이 비교적 적어서 누군가에게는 안쓰러워 보일지 모를 사람들이지만, 아침에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일 뿐이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