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공격적인 성향
두 아들이 24시간 나와 함께 지내던 시절. 아직 기관이나 시설에 다니기 전,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문 앞에 놓인 신문을 가져오곤 했다. 다섯 살, 세 살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세상 소식에 관심이 많아서였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 당시 TV에서 방영되는 뉴스는 물론, 사건 사고 소식에 아예 관심을 끊고 살았다. 훈훈한 기사보다 끔찍하고 안타까운 소식이 훨씬 많은 보도를 두려워한 때였다. 어쩌다 들리는 소식에도 애써 고개를 돌리고, 귀를 닫던 시절이었다.
결혼하기 전, 강도 높은 놀이기구를 즐기고, 스릴러 영화도 곧잘 보며,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다. 그러나 지극히 작고 약한 존재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되었을 때, 나의 위험을 대하는 면역력은 아이의 시선만큼 낮아졌다.
아이에게 들려줄 수 없는 소식은 나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가 그 소식을 접하면서 느끼게 될 충격과 공포가 가늠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회피하기 바쁜 나날이었다. 내가 느끼는 것을 행여 아이들도 느끼게 될까 보아, 애써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큰아이가 태어난 해였던 2006년부터 작은 아이가 세 살 되던 2010년까지 무섭고 끔찍하고 마음 아픈 사건이 그렇게도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신종플루 대유행, 아이티 대지진, 태안 앞바다 유류 유출 사고, 두 대통령의 서거,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뿐만 아니라 마포 살인 사건, 연쇄살인범 정남규와 강호순의 사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조두순 사건 등 최근에 와서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그 일들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다.
세상은 시끌벅적했다. 핵이 터지고, 전염병이 휩쓸고, 바다는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대통령의 죽음이 연이어 찾아왔고, 군함은 침몰했으며, 포성이 하늘을 흔들었다. 골목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 돋는 살인자들이 활개쳤고, 어린아이조차 안전하지 못했다.
그 모든 소식이 연일 신문 지면을 가득 메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문을 가져와 거실에 펼쳐놓은 이유는 전혀 달랐다.
우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한 면을 다 차지할 만큼 크게 인쇄된 광고용 자동차 사진을 가위로 오려냈다. 두꺼운 마분지에 붙이고 실루엣을 따라 오려내면 아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혼자 놀이에 몰입할 수 있는 장난감이 완성된다.
그다음은 돌돌돌 신문지를 만다. 끈적한 테이프로 마감 처리를 하면 기다란 막대기가 완성된다. 행여 몸에 맞는다 해도 아픔이 크지 않은 비교적 안전한 무기 장난감이 되는 것이다. 어제까지 가지고 놀던 너덜너덜한 막대기에 비해 오늘 새롭게 만든 막대기는 두 아이의 눈을 초롱초롱 빛나게 한다.
저들끼리 얍, 얍 거리며 두 막대기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엄마의 손은 더욱 바쁘다. 신문지를 이리 접고 저리 접다 보면 모자가 완성되고, 머리만 집어넣을 수 있는 신문지 옷이 만들어진다.
모자를 씌워주고, 옷을 입혀주면 아이들의 놀이는 더욱 실감 난다. 서로를 공격하는 놀이를 하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엄마가 개입하여 수위 조절을 하기도 하지만, 좀 과한 가격에 감정이 상하거나, 울음이 터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주곤 했다.
“얘들아, 원래 이런 무기는 사람을 향하는 게 아니야. 보이지 않는 존재를 무찌르기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해. 미워하는 마음, 욕심부리는 마음, 게으른 마음. 우리를 공격하는 것들은 바로 그런 못된 마음들이야. 그런 마음들을 우리는 무찔러서 이겨야 해. 할 수 있겠지?”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들이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옳은 것을 알려주다 보면, 언젠가 깨닫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해준 말이었다. 그런 말과 함께 놀이는 여러 날 지속되었다. 작은아이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쭈욱.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