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물리쳐야 하지?(2)

아이의 공격적인 성향

by 금머릿

“엄마, D는 못된 마음이지? 악당이지? 내가 물리쳐야 하지?”


세 살치고는 너무도 분명한 발음으로 자신만만하게 뱉는 그 말에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른다. D는 우리 집 작은아이보다 넉 달 늦게 태어난 이웃집 아이였다.


우리 집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태어날 때부터 작기도 했지만, 워낙 입이 짧아 몸집이 더욱 작았다. 반면 이웃집 D는 잘 먹는 만큼 몸집이 큰 아이였다. 아직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누군가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인지가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그야말로 아기였다.


그런 이웃 아이를 보며 물리쳐야 하는 악당, 못된 마음과도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니. 순간, 내 아이의 마음 상태가 너무 걱정됐다. 이 엄청난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똑같은 놀이, 똑같은 가르침. 그러나 첫째와 둘째의 반응이 확연하게 달랐다. 아기가 장난감을 빼앗아도, 첫째는 아기의 뭣 모르는 짓이라 여겼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장난감을 골라 놀았다.


그러나 둘째는 달랐다. 다시 장난감을 확 뺏어 오거나, 때로는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빼앗기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성향은 종종 거친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경쟁자가 존재한 상태에서 태어난 둘째들의 숙명이라고도 했고, 부모의 공격적인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오래 머문 생각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놀이’였다.


‘못되고 악한 존재가 있다면, 용기를 내어 싸워야 한다’는 그 어려운 가르침이 어린아이에게는 전혀 다른 뜻으로 새겨졌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폭력으로 해결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신박하고 근사하다 여겼던 나의 가르침이, 이제는 정정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했다.


나는 아이를 부드럽게 안았다. 그리고 최대한 자상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S야, 그렇지 않아. D는 네가 사랑하고 품어줘야 할 어린 동생이야.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면 돼. 때리면 안 돼. 다치게 되니까. 너보다 어리고 약한 동생이니까 더 사랑으로 대해 줘야 해.”


막대기를 만드는 놀이는 멈추었지만, 폭력이 나쁘다는 가르침은 안타깝게도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몸집이 작은 탓이었을까. 그래서 느끼는 위기감이었을까. 유독 덩치가 큰 친구들에게 드러낸 폭력성 때문에 나는 여기저기 사과하고 다닐 일이 많았다.


나에겐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가 누구에게는 폭력적이고 나쁜 아이로 비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픈 시기를 지나야 했다.


많은 분이 기도해주신 덕분인지, 포기하지 않은 온유에 대한 가르침 때문인지.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이의 폭력성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온유한 청소년이 되었다.


“엄마, 폭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어리석은 짓이야. 나만큼 소중한 누군가를 해치는 일이니까.”


이제 아이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인내라는 옷’을 입고 전달될 때, 아이는 그 진심을 느끼고 스스로 옳음을 선택하게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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