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선물(1)
출산하느라 갖은 고통을 경험한 어머니들.
비교적 수월하게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고,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힘겹게 낳은 사람도 있다. 출산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우리는 또 동생을 낳는 걸까?
그래서 하나만 낳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 낳아 기르는 것도 힘들어, 둘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혼주의, 딩크족, 외동 자녀 가정도 물론 많다. 그러나 내 주변을 보면 둘 이상 아이를 키우는 가정도 적지 않다.
남자들이 모여 군대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고 박장대소하듯, 여자들은 모여 출산 이야기를 끝없이 나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보다 더한 아찔한 스토리들이 즐비해 놀라곤 한다.
나는 아이가 셋이다. 첫 아이의 출산을 원만히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두 살 터울의 둘째도, 여섯 살 터울의 셋째도 모두 수술로 낳았다. 위로 두 아들을 출산하는 과정이 너무 힘겨웠던 탓에, 셋째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다둥이 엄마가 되었을까?
둘째가 아들이어서 아쉬운 마음이 잠깐 들긴 했다. 첫째가 아들이니, 둘째는 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둘일 것인데, 아들과 딸로 골고루 구성된 가족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그림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잠깐이었다. 심장 기형으로 인한 이슈가 생긴 탓에 그 아쉬움은 아주 하찮은 일이 되었고, 우리는 성별을 따져 기분을 느낄 틈도 없이, 아이의 건강만을 바라며 사랑을 쏟는 일에 집중했다.
주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진통이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날 오전 7시경. 나는 첫 수술 대상이 되어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무도 추운 겨울이었고, 난방도 충분치 않았다. 무거운 배를 안고 직접 오른 수술대는 너무도 차가웠다.
그 차가운 곳에 누울 때, 온몸이 시렸다.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고, 발가락 끝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척추에 마취 주사가 들어갈 때는 얼음물을 뼛속에 집어넣은 듯한 감각이었다. 그때, 나는 굳게 다짐했다.
‘다시는, 이 수술대에 오르지 않아야지! 절대! 결단코!’
그러나 정확하게 3년 6개월하고도 하루 만에 나는 같은 수술대에 올랐다. 같은 병원, 같은 수술실. 진통이 먼저 오고, 급하게 수술대에 오른 순간, 지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그 다짐은 어디로 갔나?
그렇게 굳게 다짐해놓고서는 왜 그랬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정말로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우는 동안, 출산의 고통을 거의 잊었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두 살 터울의 아들을 키우는 것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작디작은 두 아이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서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의 다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 예쁜 딸 하나 입양할까?”
둘째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 남편은 종종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예뻐하는 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예쁜 마음에 감동하기는 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너무 버거워 살이 쏙쏙 빠지고 있는데, 하나를 더 기른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도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입양이라니!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지만, 나 정도의 마음으로는 함부로 선택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졌다. 입양은 내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