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의젓해진 큰아이 업어주기
그런 날이 가끔 있었다.
늘 밝던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혼자 놀이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날. 느긋하게 앉아 아이의 모습을 관찰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없던 날.
세 아이를 돌봐야 하는, 그것도 홀로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엄마에게 하루란, 숨 쉴 틈도 없이 흘러가는 잔혹한 시간이니까.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주로 막내의 귀여운 모습을 담고자 촬영한 영상 속에서 더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영상 속에서 막냇동생은 아이의 머리를 찧었다. 뾰족한 장난감을 얼굴로 들이밀기도 했다. 갑자기 끼어들어 놀이를 방해하기도 했다.
“엄마, Y가 다 망가뜨렸어!”
아이의 속상한 목소리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함께 담긴 나의 목소리는 Y를 향한 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면 안 돼.’라고 나무라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프지 않잖아.’,‘다시 만들면 되잖아.’ 아이에게 이해하라는 식의 말이 주를 이루었다.
그때 스쳐 간 아이의 표정은 찰나였지만, 내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그늘이었다.
두 동생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자포자기한 마음은 그런 걸까. 가끔 과하게 화를 내거나 떼를 쓸 때가 있었다. 그럴 때 그러면 안 된다며 야단을 치면서도, 그 마음이 참고 참다 폭발하듯 발현된 마음인 것 같아 마음이 아릴 때가 있다.
그날이 좀 그런 날이었다. 쌓이고 쌓인 마음을 영상으로 확인하고 난 다음 날. 유독 힘없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유독 미어진 날.
그날에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오랜만에 업어줄까?”
잠시 흔들리는 아이의 눈을 발견했다.
‘나 초등학생인데 업혀도 되나?’
‘어린 동생들이 있는데 내가 업혀도 되나?’
그 고민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이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응!’하고 신나게 답했다. 나는 막냇동생을 업을 때 사용하는 포대기를 가져와서 아이를 업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동생들과 함께 있으니, 더 커 보였던 것 같다. 엄마의 손이 부족하니 늘 이런저런 부탁을 했다. 체력이 달리니 가능한 한 스스로 해나가기를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어리디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얼마든지 업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만한 무게였다.
나는 아이를 업은 채 노래를 불러주었다. 거실을 거닐면서 벽에 걸린 사진을 함께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아이를 떨어뜨릴 것처럼 기울이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이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가 어릴 때, 늘 하던 것처럼 놀아주었을 때, 아이의 밝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 모습에 막내가 샘을 낼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곁으로 다가온다. 둘째는 재미있다는 듯 휴대폰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 준다. 사진 속에 담긴 아이의 웃음은 지금도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주는지 모른다.
서툴기 짝이 없는 엄마가 세 아이를 돌본답시고, 지나온 시간 속에서 알게 모르게 받은 상처가 많았을 아이. 그 생각을 하면 늘 자책이 되고, 미안함과 함께 슬픔이 자리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아이를 업어주고, 아이의 웃음을 유발했던 그 날의 경험.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아직도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해결되지 않은 눈물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세 아이를 키우며 남보다 3배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힘듦의 해소는 과연 아이들의 웃음이 아니었나 싶다. 자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부모들의 고백을 들을 때가 있다. 그 말에도 크게 동의하는 바다. 잘 때만큼은 아이들이 절대 미운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나에게 있어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 묻는다면, 단연 아이들이 웃고 있을 때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웃으면 내가 웃게 된다. 아이들의 마음이 환하다는 걸 알게 되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늘 완벽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자책할 때가 많은 나. 그 부족함에도 괜찮다고 해주는 아이들의 비언어적 반응 중 가장 사랑하는 것은 아이들의 웃음이다.
큰아이는 올해 스무 살이 되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잘 자랐다.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며, 동생들에게도 든든한 형과 오빠로서, 멋지게 생활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이 크다.
이제는 아이를 업어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포대기로 등에 업어줄 수는 없지만, 말로써 얼마든지 업어줄 수 있다.
사랑해,
멋져,
잘했어,
함께해서 좋아,
네가 자랑스러워...
이제는 시간적 여유도 많이 생겼으니, 더욱 부지런히 말로써 업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