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의젓해진 큰아이 업어주기
“으아아앙-!”
세 살, 아니 만으로 두 돌을 갓 지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병실 안에 가득 찼다. 그날, 아이의 세계는 낯선 결핍으로 무너져 내렸다.
언제나 자기 전, 동화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던 아이. 불 꺼진 방에서 엄마와 아빠 사이를 이리저리 뒹굴다 자연스레 잠들던 아이.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녀도 안전하다는 것을 배우고, 안정감을 누리던 아이.
그런데 그날은 엄마 아빠가 없었다. 아이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 대신 이웃집 이모와 함께 있어야 했고, 부산에서 부랴부랴 올라온 외할머니와 함께 있어야 했다. 엄마가 동생을 낳기 위해 병원에 머물러야 했고, 아빠가 수술하는 엄마의 곁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배가 불러오는 동안, 동생맞이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아빠와 함께 뱃속 동생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동생이 태어나면 잘 돌봐주겠노라고 다짐의 말을 하기도 했다.
분명 준비 과정은 즐거웠다. 그러나 책으로 배운 다짐은 현실 앞에서 깨지기 쉬운 유리병과도 같았다.
미숙아로 태어난 동생은 젖을 잘 빨지 못했다. 모유 수유가 어려웠던 엄마 아빠의 시선은 온통 동생에게 머물렀다. 아이가 밤새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잘 견디고 드디어 곁으로 왔지만, 부모는 아이만을 바라봐 주지 못했다.
갓 난 동생에게 집중하는 엄마 아빠의 등 뒤에서 아이는 서러움에 북받친 울음을 크게 터뜨린 것이다. 엄마 아빠의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이의 낯선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 작은 가슴에는 뻥 하고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빠가 안아주고 수유를 끝낸 엄마가 안아주었지만, 마음의 구멍을 좀처럼 메우지 못했다. 동생을 향한 질투는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자고 있는 동생의 이불을 홱 빼버리고는 ‘내 거야!’를 외쳤다. 누워있는 동생에게 장난감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동생이 유모차에 타고 있는데도 계단으로 가자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흔히들, 동생을 맞는 아이의 마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배신감’이 자리하게 된다고들 한다. 예상하고 각오했지만, 이론은 멀게만 느껴졌다. 첫째인 적이 없는 엄마 아빠의 이해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약인 걸까? 다행히도 아이는 서서히 동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사이를 뒹굴거리며 잠들던 시절은 돌아올 수 없다. 그래도 엄마의 옆에서 엄마의 손가락을 붙든 채 잠들 수 있었다. 둘째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두 동생이 엄마의 양옆을 차지하게 되자, 아이는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가끔 첫째 동생에게 가위바위보를 하자며 제안했지만, 엄마의 곁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동생은 절대로 가위바위보를 해주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중재하기 위해 애쓸 때마다, 아이는 씩씩거릴지언정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고 동생들에게 양보했다. 반강제적으로 아이는 조금 일찍 의젓한 아이가 되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