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지만 단단한, 세 아이의 관계
서툰 엄마의 양육 아래에서 자라며, 큰아이는 막냇동생에게 조금 냉정하면서도 무서운 오빠가 되었고, 작은아이는 매우 다정한 오빠가 되었다. 그럼에도 딸아이는 늘 큰오빠 같은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곤 한다. 너무 자상한 둘째 오빠는 어딘지 모르게 오글거린다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감정인 걸까? 나쁜 남자에게 오히려 끌리는 기질인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딸아이를 가장 잘 움직이게 하는 건, 엄마도 아빠도 자상한 작은오빠도 아닌, 싫은 소리 참지 않는 큰오빠이다.
그걸 알아서 지난 여름방학에, 큰아이에게 과외비로 두둑한 용돈을 걸고, 막냇동생의 수학 공부를 맡겼다. 스스로 하는 공부도, 학원도 거부하는 딸에게 큰아이의 매서운 수업은 꽤 효과를 보았으니, 아이들의 관계를 잘 이용한 셈이다.
그런데 연휴 기간에 들렀던 숙소에서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화장실에 따라가자는 딸아이의 부탁을 거절한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닫힌 화장실 문 앞에서 노래하는 작은아이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너 여기서 뭐 해?”
“무섭대.”
그러면서 잠시 멈췄던 노래를 다시 이어 부른다. 헛웃음이 나왔다. 동생이 무서우니 밖에 있어 달라고 했다는 거다. 그리고 거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단다. 아니, 뭐 이런!
“해달란다고 진짜 그걸 해주냐?”
매몰차게 혼자 다녀오라고 거절했던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큰아이였다면 절대로 해주지 않을 일이었다.
“무섭다는데, 어떻게 해, 그럼. 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웃으면서 하는 그 말에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엄마에게 칭찬받기 위해 형과 경쟁하는 시절도 지났는데. 대체 이건 뭐람.
문이 열리고 딸아이가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딸아이를 나무랐다. 그걸 혼자 못해서 오빠에게 이런 걸 부탁했냐고? 그랬더니 입술을 삐죽이며 말한다. ‘진짜 해줄 줄 몰랐지.’ 딸아이에게 꿀밤이라도 주고 싶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삐죽대는 모습이 내가 봐도 얄미웠다.
나는 요즘도 가끔 아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영상이나 사진에 담기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인 걸 알지만, 지금 다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너희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1번과 2번은 이제 대립보다는 재미있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 함께 있으면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킥킥대는지 잘 모르겠지만.
2번과 3번 역시 둘도 없는 남매처럼 늘 끊임없이 재잘대고 웃는다. ‘쟤 둘은 뭐가 그리 즐겁다냐?’ 친정엄마께서 웃으며 한마디 하실 정도다.
1번과 3번은 좀 미묘하다. 3번은 1번을 동경하는 듯하면서도 좀 무서워한다. 1번은 3번을 귀찮아하면서도 필요한 말을 꼭 해주고 본다. 3번의 말로는, 밖에서는 1번도 꽤 자상한 오빠라나.
모르겠다. 세 아이의 관계가 내가 바랐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이만하면 꽤 단단한 남매의 모습이 아닐까. 무언가 미묘하지만, 나름 균형을 가지고 잘 자랐다고 해도 좋겠다.
앞으로도 엄마 아빠의 좋은 점을 닮고, 나쁜 점은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무엇보다도 완전한 트라이앵글은 아니더라도, 기쁠 때 축하를 나누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안전한 관계였으면 한다.
그래서 더 훗날, 엄마 아빠가 곁에 없는 순간에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멋진 동기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