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중2, 괴변의 향연(1)

내일 또 메고 나갈 건데, 왜 가방 정리를 해야 해?

by 금머릿

“나 무슨 트라우마 있나 봐.”


며칠 전, 중1 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친구들 손만 닿아도 나도 모르게 자꾸 피해.”


트라우마라는 말에 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아이의 뒷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작정한 듯 곁눈질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아빠 때문인 것 같아.”


그러자 소파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편이 화들짝 놀란다. 아빠가 무슨 잘못을 했냐며 펄쩍 뛴다.


“아빠가 자꾸 하지 말라는 대도 스킨십 하잖아. 나 그거 싫다고. 몇 번을 말해!”


“아빠가 널 사랑해서 안아주는 건데, 그게 왜 싫어? 아빠가 싫어?”


“아니 아빠가 싫다는 게 아니라, 자꾸 스킨십 하는 게 싫다고.”


이쯤 되면 나는 늘 반복되는 그 대화를 또 들어야 하나 싶어 한숨을 내쉬게 된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세 아이를 물고 빨던 사람이다. 우스갯소리로 ‘애정결핍’이 아니냐며 아이들과 내가 놀릴 정도로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아빠 마음 알겠으니까, 적당히 해 주세요. 아빠들은 원래 다 이런 거야. 여보, 아이들이 예민한 시기이니까 좀 자제해 줘. 에이, 스킨십을 해 줘야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거래. 그냥 아빠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한 대화의 양상은 첫아이부터 시작되더니, 둘째 아이를 거쳐, 기어이 막내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아빠의 스킨십을 귀찮아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은 내가 감지하는 아이의 사춘기 시그널이다. 이 시기만 되면 아이들의 감정이 널뛰기 시작한다. 부모를 정말로 미워하지 않을 테지만, 꼭 미워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그만 좀 하라고!”


쾅!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딸아이의 모습에 우리 부부는 마주 보고 씨익 웃었다. 어리게만 느껴지던 우리 딸도 이제 그 시기가 왔나 보다 싶은 거였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에 못내 아쉬움이 서렸다. 왜 모르겠는가. 딸이니까 오빠들과는 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무리 사춘기가 와도 오빠들보다는 살갑게 부모를 대해 줄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친구들과의 시간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 역시 기특한 마음이 들다가도, 섭섭한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내미는 게 사실이다. 한집에서 같이 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너무도 확고해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친구와 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방문이 닫힌다. 그리고 그 방문 너머에서 아이는 세상 행복한 웃음을 흘려댄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나의 요동했던 사춘기를 돌아보면 그 마음 모를 리 없다. 게다가 딸은 셋째이고, 엄마 아빠의 경험은 세 번째이다. 시행착오는 충분히 겪었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는 상태이다. 둘째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난하게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걸 보면, 경험이란 무시 못 할 지혜가 분명한 듯하다.


그래, 우리에게는 정말로 잊지 못할 충격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바로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때. 그야말로 괴변의 향연이었던 그 시절.


큰아이는 그야말로 순둥이였다. 유치원, 학교, 교회, 학원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와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는 그야말로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나 양보도 잘하고 규칙도 잘 지키는 모범생이었다. 오죽하면 ‘아들 정말 잘 키웠네.’라는 말을 아이의 친구 엄마들로부터 여러 차례 듣기도 했다.


나에게도 큰아이는 더할 나위 없는 천사였다. 언제나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말하던 아이였고, 늘 다정다감한 모습과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이를 늘 ‘엄마의 비타민’이라고 부르곤 했다. 정말 그랬다. 그 아이의 따스한 몸짓이나, 천진한 웃음만 보아도 육아의 고단함을 풀 수 있을 만큼, 아이는 너무도 힘이 되는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였는데...


<[완전해? 아니, 안전해!] 2권에서 다음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이전 29화1번과 3번 사이에 무슨 일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