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_가을 추천 리스트
미쳤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 코끝이 하염없이 시큰거렸다. 안 돼, 이러는 거 말도 안 돼, 라는 내면의 소리가 울려댔다. 눈두덩이가 뜨끈해졌다. 훌쩍.
“아니, 나도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무도 묻지 않은 변명을 혼자 해대기 시작했다.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가족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슬프다. 하아... 아, 나 왜 이러지?”
기어이 주방으로 달려가 왈칵 쏟아진 눈물, 아니 콧물을 여러 차례 풀어댔다.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아들과 딸에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중학교 1학년 때, 정말로 좋아했던 만화였거든. 근데 이게 밀리의 서재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거야. 웹문학 서비스 시작했다고 해서, 궁금해서 들어가 봤는데, 이 만화가 똭 하고 있는 거야.”
“그래? 그 만화가 뭔데?”
“캔디 캔디.”
푸핫. 그 터진 웃음이 나도 이해가 된다. 나에겐 인생 만화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외로워도 슬퍼도’라는 노래로 알려져 있고, 풍성하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으로, 주근깨투성이의 얼굴로, 온갖 남자 등장인물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매력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패러디의 주인공인 캔디스 화이트 아드레이. 캔디와 나의 만남은 중학교 1학년 때, 흑백으로 출간된 9권의 책을 구매하면서부터였다. 직장에 다니던 둘째 언니가 학교 다녀오는 길목에 있는 서점에 그 책이 들어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돈을 줄 테니 다 팔리기 전에 ‘꼬옥’ 사 오라고 했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돈까지 쥐어 주며 신신당부를 하는 걸까? 언니의 소중한 심부름을 바탕으로 정말로 소중하게 안고 온 그 책을 나는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밤을 새워가며.
씩씩한 캔디가 좋았다. 캔디를 괴롭히는 이라이자가 미웠고, 그렇게 괴롭히다가 캔디에게 반해버린 닐이 세상에서 가장 징그럽고 미웠다. 스위트 캔디라는 이름의 장미를 선물하던 안소니가 죽었을 때 너무 슬펐다. 발명가 스테아와 멋쟁이 아치가 늘 곁에 있어 주어서 좋았다. 캔디의 소중한 친구인 애니와 패티가 있어서 좋았다.
캔디를 사랑한 테리가 너무 멋있었다. 안소니와의 이별의 아픔을 치유해준 테리우스. 아버지와는 다른 사랑을 하겠다고 했지만, 스잔나의 등장으로 캔디와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에 놓인 테리가 안타까웠다.
울다가 웃다가 화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오열이 터져버린 것은 스잔나와 테리를 뒤로 하고, 홀로 눈 오는 거리를 캔디가 혼자 걷는 장면이었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 스테아가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캔디가 행복해지는 오르골’ 멜로디를 들으며 캔디는 걸었다. 춥고 쓸쓸한 그 눈 오는 거리를...
너무 당황스러웠다. 중학교 때 하염없이 울었던 그 장면에서 같은 감정으로 슬퍼서 눈물을 터뜨리다니. 하암... 나는 열네 살이 아닌, 마흔여섯 살이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진짜 너 이러는 거 심하게 청승맞고 어이없다는 거 알지? 애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라는 이성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댔지만, 슬픈 감정을 막지는 못했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유치하겠지, 그래도 그때를 추억하며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온통 캔디와 그의 친구들에게 또다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솔직히 쪽팔린다. 어린애도 아닌데, 하아...
동산 위의 왕자님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포니의 동산에서 울고 있는 여섯 살 캔디와 처음 만났다. 캔디의 첫사랑으로 기억되는 그 인물은 캔디의 기억 속에만 머물던 인물이 아니었다. 캔디가 가장 슬플 때,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던 고마운 앨버트 씨.(훗날, 작가는 인터뷰에서 ‘키다리 아저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주근깨 이미지는 ‘빨강머리 앤’에서 착안한 거라고 했다.)
안소니도 떠나고, 테리도 떠나고, 스테아도 떠나고(왜 이렇게 많이 죽냐, 나 참...), 다 떠난 것같지만, 앨버트 씨가 있었다. 캔디가 웃을 수 있도록 작가가 남겨둔 인물들이 있어서 참 위로가 됐다. 다행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듯 슬프게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하게 한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온통 다 죽이고, 떠나보내고, 이 나이 되도록 청승맞게 눈물 바람 불게 한 작가가 원망스럽다.(같은 마음의 독자들이 많아서, 그토록 테리와의 해피엔딩을 그린 후속작들이 생겨났나 보다.)
이번 가을을 맞아, 32년 만에 조우한 캔디 캔디. 결코 잊지 못할 내 인생의 만화. 사실, 이 나이에 만화책 보며 눈물 흘린 내가 미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이 나이대의 중년 여성의 감수성을 건드려버린 [캔디 캔디]가 미친 명작이라고. 미친 것은 내가 아니라 캔디 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가을이면 더욱 생각날 내 인생의 작품은 단연 너라고, 말하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