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_고시원 영상 ‘라면 하나로 삼시세끼 때우는 법’ 후기
둘째 아들의 발가락이 골절됐다. 아이는 학교를 가지 못했고, 나와 함께 오전에 병원엘 다녀왔다. 정형외과 의사는 물었다. 어쩌다 이리되었냐고. 머뭇거리는 동안 마스크 안에서 아이의 표정이 어땠을지가 보이는 듯했다. 어젯밤 집에서...
의사가 의아해하는 그 짧은 텀 뒤에 재빨리 내가 말했다. 집에서 장난치다가 그랬다고. 그러자 의사가 알겠다는 듯, 부딪혔군요... 라고 했다. 뭔가 쿵짝이 맞는 기분이었다.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충 알아듣고, 알아서 응대하는 그런 대화들.
아이는 요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느라 몸이 멈춰 있을 때가 많다. 학교에서는 화장실과 급식실, 교실 이동할 때 외에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어제는 선생님과 일대일 상담 중에 그런 말을 들었단다. ‘좀 웃어, S야.’
아마도 선생님은 집에서는 말도 많고,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을 때는 빵빵 터지는 센스있는 말을 잘하는 아이라는 나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S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웃길 땐 나도 웃어. 웃기지 않아서 그렇지.’
환한 얼굴, 발랄한 아이다운 어투.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어른이 기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그런 천진함이 아닐까.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안심하고 잘 지낸다고 안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집 S는 좀 염려스럽다.
한참을 멈춰 있다가, 갑자기 몸을 과격하게 움직일 때가 있다. 공중제비를 돈다든지,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다든지,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처럼 점프를 한다든지, 춤 연습을 하는 여동생의 옆에 가서 더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든지.
아마도 미처 방출하지 못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한 몸부림인 듯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조심하라고 외친다. 그런데 어제는 그 비명이 천장을 뚫을 지경이었고, 아이의 발은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냉장고에 부딪혔다.
“엄마, 내가 엄마 때문에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 해.”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과하게 놀라니까 내가 자꾸 아픔을 숨기게 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아무리 심하게 다친다고 해도, 호들갑을 좀 떨지 말라는 말이야.”
“야, 그건 본능 같은 거야. 엄마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아, 나는 엄마의 비명 때문에 더 놀란다고.”
아파서 나는 짜증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아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타인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두 부류로 예상된다.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호들갑을 절제하는 게 좋겠다며 아이의 편에 설 이들,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게 우선이지 엄마한테 호들갑 운운하다니 하면서 엄마의 편에 설 이들.
그러나 나는 오늘, 고시원 영상을 보며, 조금은 아들이 충고해 준 매우 절제된 자세로 후기를 남겨 보려 한다. 라면 하나로 세 끼를 해결하는 학생. 나도 가끔 혼자 집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울 때가 있다.
그러다 배가 불러서 다 먹지 못한 국물에 달걀이 남아 있다면, 킵해 둘 때가 있다. 저녁 준비하기 직전에 배가 고프면, 그걸 다시 끓여서 간식처럼 먹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혼자 뿌듯해한다. 살도 덜 찐 느낌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덜 남겼고, 뭔가 알뜰하게 끼니를 해결한 느낌이 든다.
두 번도 뿌듯한데, 세 끼를 해결한 학생은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했을까. 영상으로 남겨 꿀팁 전하듯 공유할 정도이니. 고시원에 살고 있으니 생활이 빠듯할 거라는 추측이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시원에 머무를지는 모를 일이다. 다음에는 달걀도 넣고, 파도 넣을 날이 오지 않을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그 영상을 보았을 때는, 혼자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큰아이의 끼니가 떠올랐다. 한 달 용돈을 밥값으로 모두 써야 할 지경이라며 힘들어하던 말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잘 챙겨 먹는 것을 중시하는 우리 부부에게 용돈을 올려줄 명분은 충분했다.
그래서 영상 속 아이가 참 딱했다. 저렇게 힘겹게 사는 아이도 있는데, 내 아이는 풍족하고도 늘 불평인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그 영상을 공유해 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마음은 변해 있다. 동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내가 그 아이에게 생활비를 보태주지도 않을 거면서, 불쌍하게 여기거나, 그 부모를 욕할 필요도 없다.
그저, 긍정을 가지고 기지를 발휘하는 그 아이가 머지않은 미래에 달걀을 넣고 파를 넣으며 라면을 끓여 먹는 영상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먼 미래에는 원하던 꿈을 이루고, 주식이 아닌 간식으로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는 영상을 찍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그저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것. 그것으로 이 영상에 대한 감상을 멈출 것이다. 주제넘은 동정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