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마음을 비울 때
“우리 여행갈까?”
그 말이 참 설레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빠의 호기로운 그 말에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인지 따위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아빠의 그 말에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했던 것이다. 응, 여행 갈래, 하고.
막내딸은 생일, 성탄, 어린이날 선물로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으면, 꼭 빠지지 않고 그런 답을 했더랬다.
“가족여행. 어디든 상관없으니까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갔으면 좋겠어. 난 그게 제일 좋아.”
먹고 사느라 바빴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가족여행이라고 할 만한 추억이 딱히 없다.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 교회에서 가는 수련회 말고는 특별히 가족들과 함께 어디를 여행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유난히 아쉽고 슬프진 않았다. 특별히 차를 타고 어디 먼 곳을 가지 않아도, 돌아보면 산이었고 들이었다. 근처에 계곡이나 저수지가 있어서 올챙이를 잡으며 물놀이를 실컷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멀미가 심해, 관광보다 차를 타는 시간이 많았던 수학여행은 곤욕스러웠던 기억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되고 보니, 여행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네모난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은 기껏해야 놀이터에서 나무와 개미를 보고, 그네를 타며 파랗던 하늘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거진 숲을 보여주고 싶었고, 갖은 산새의 지저귐을 들려주고 싶었다. 큰 산의 계곡물에 발을 담그게 해주고 싶었고, 시원하게 출렁이는 바다에 몸을 띄우게 해주고 싶었다.
웬만하면 집에서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행’이라는 말이 설레던 시절은, 생각해보면 온통 아이들 덕분이었다.
물론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기간이 길수록 챙겨야 하는 짐이 많아 골머리가 아팠다. 여행지에 가서 해먹을 음식 걱정에 스트레스도 받았다. 행여나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혹시라도 아플까 봐, 혼자 괜히 불안에 떨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다. 행복해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은 그 모든 불편함을 잊게 해주니까.
운전석에는 아빠, 음악선택권을 쥔 조수석에는 큰아이. 뒷좌석의 가운데엔 내가, 양옆으로 둘째와 막내가 자리한 채 떠나는 여행길. 당시 우리 집 승용차의 뒷좌석 가운데 자리는 오래 앉으면 정말 불편한 자리였다. 허리도 아프고 꼬리뼈도 아팠다. 그러나 나는 그 불편한 자리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여행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온 가족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떼창 하는 보석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우선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에는 아빠가 만들어둔 동요와 어린이찬양 리스트가 주를 이루었다. 좀 더 자랐을 때는, 각자 원하는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리스트에 담아 틀었다.
아빠는 포크송, 엄마는 발라드, 큰아이는 록발라드와 제이팝, 둘째는 팝송, 막내는 케이팝. 최애곡들은 다 달랐지만, 서로의 최애곡도 기꺼이 마음을 열고 함께 듣고 불렀다. 누군가는 코러스를 넣었고, 누군가는 작게 안무를 추기도 했다. 덕분에 요즘 유행하는 곡이 어떤 노래인지 알게 되어, 우리 부부는 센스있는 부모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때에는 ‘엄마를 이겨라’가 시작되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엄마를 이기라는 미션을 주면 기를 쓰고 최선을 다했다. 끝말잇기, 속담이나 사자성어 대기, 초성 게임, 노래 제목 맞추기 등. 움직이는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갖가지 놀이가 총동원된다.
집에 있었다면, 아마 TV나 휴대전화 등 미디어에 빠져 있었을 테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이처럼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이 어찌 보석처럼 반짝이지 않겠는가.
그 기억이 나에게도 있기에, 지금도 남편이 여행 관련 숏츠나 릴스를 보며 두 눈을 반짝일 때 너무도 이해된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면, 남편은 마치 지정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파 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곳에서 휴대전화를 보다가 좋은 여행지를 발견하면 이전에 설렜던 그 말을 똑같이 뱉는 것이다. “우리 여행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학생이 된 큰아이도, 중학생이 된 막내 아이도 아빠의 그 말에 더 이상 환호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곳도 괜찮다는 큰아이는 더 이상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을 반기지 않는다.
고등학생인 둘째도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막내는 언제인지를 꼼꼼히 따졌다가, 친구와 약속이 있으니 안 된다며 단호함을 내비친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