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중2, 괴변의 향연(2)

내일 또 메고 나갈 건데, 왜 가방 정리를 해야 해?

by 금머릿

중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아이는 책가방을 제자리에 두지 않았다. 늘 거실 입구에 던져 놓는 모습에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다. 가방은 방에 갖다 놔야지. 그러나 아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화가 나서 야단을 칠라치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내일 또 메고 나갈 건데, 굳이 왜 정리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아이의 반항적인 모습은 폭탄처럼 연쇄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왜 씻어야 해? 정리는 왜 해? 엄마만 다 옳다고 생각하지 마. 내 맘이야. 아빠는 고집불통이야...

갑자기 변해버린 아이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천사 같은 아이의 변화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외계인이 되어 버린 아이는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사춘기라는 시기가 올 거라는 것을 지식적으로는 알았지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그런 몹쓸 병(?)이 왔다는 것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부정하고 드는 모습에 우리 부부의 목청은 날마다 높아져만 갔고, 새벽까지 그 실랑이가 이어지곤 했다. 아이와 대화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은 아이를 힘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저히 너를 키울 수 없으니, 너는 할머니 집으로 보내야겠어. 따라 나와!”

그때 고함치는 남편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아래턱이 후들거린다. 순둥이 아빠와 순둥이 아이가 예상치 못한 시기를 맞닥뜨리고, 둘 다 괴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이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 그리고 한밤중에 대뜸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걱정돼서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 할머니 계시는 부산으로 가는 중이고, 고속도로이고, 이제 와서 차를 돌릴 생각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도무지 추스르지 못한 화로 인해 남편 역시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지만, 그 모든 아빠의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끝내 남편은 휴게소에서 차를 세운 뒤, “다시는 이러지 마.”라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가르침을 뱉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막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둘째가 긴장으로 몸을 사리고 있는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제발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다시금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에게서 나온 말은,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였다.

그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지나오게 된 걸까? 아이가 변했을까? 물론 아이는 변했다. 자랐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한 정도를 말하자면, 우리 부부가 더 많이 변했다. 우리는 어느새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였다면, 내가 저 시기의 아이였다면,’ 부모에게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 옳은지는 꾸준히 말해주면서도, 너의 마음이 그럴 수도 있다며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널뛰는 감정들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여전히 학교생활을 성실히 잘 감당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평화롭게 이어갔다. 누군가는 그랬다.

“밖에서 잘하는 것만 해도 어디예요? 칭찬해 주세요.”


처음에는 남한테는 잘하고 부모한테 함부로 하는 아이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헤아리고 보니, 그만큼 ‘부모를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제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모습을 보이든 상관없이 부모는 여전히 저를 사랑할 테니까.


신체가 변하고 저 스스로도 적지 않게 혼란스러울 텐데, 그 마음 하나 알아주지 않는 엄마와아빠가 아이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감정이며, 행동이 널뛴 건 아이였지만, 그 혼란을 받아주지 못하고 더 심하게 널뛴 건 우리 부부였다.

우리는 자는 아이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깨어 있을 때는 손도 못 대게 하니, 아이가 잠든 밤을 기다렸다.

어릴 때 체온을 가늠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두 볼을 천천히 감쌌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읊조렸다.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아이임을, 이 아이로 인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함을,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사랑을 기도로 고백했다. 하늘에 닿고, 아이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면서.

큰아이의 사춘기는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중 2병’의 이름으로 우리 가족을 지나갔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가장 많이 변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남편과 나였다. 둘째 아이에게 그 조짐이 보일 때,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이제 막내에게서 같은 바람이 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서운한 마음이 남는 건, 아직 우리가 덜 성숙한 탓일 테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부모로 인해, 폭풍 같은 시절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을 믿으며, 오늘도 조금 더 의연히 걸어가 보련다. 사랑을 먹고 자란 나무는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순리를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