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 언어의 형태(2) : 환원 불가

김준산 읽기(6), 자크 라캉, 10월 24일 단상

by 김요섭


'어떤 환원 불가능한 시니피앙(기표)을 출현시키는 효과란, 해석을 통해 상징계와 실재계가 만날 지점을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경험했지만 기억되지 않는 것, 혹은 경험만으론 알아낼 수 없는 곳에 대한 능동적 접근 방식이다.' -김준산



환원 불가


그것은 언어로 포획되지 않은 채, 우리 속에 와있는 어떤 것이다. 인식의 채반으로 다 걸러질 수 없는, 호명된 주체는 여분이 남는다. 그것은 존재의 숨겨진 욕망, 잠재성, 해석될 수 없는 타자성, 멀리서 도래할 어떤 것과 관계한다. 낯선 손님인 그분은 멀리서 온 별빛일 수도, 무의식 끝단의 작은 촛불일 수도 있다. 불가해한 타자의 얼굴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유령으로 자신일 수도 있다. 환원 불가능한 그는, 존재 아닌 존재로 내 안에 있다.


다 이해될 수 없는, 잠재된 것이 존재를 해방한다. 호명이 유한성의 언어와 연결된다면, 여분은 무한의 언어와 관계한다. 전자는 주체의 인식으로 환원된 것이고, 후자는 불가능의 언어다. 유한자는 시스템의 언어를 사용하기에 어느 순간 밀려오는 허무를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분리된 존재는 체제와의 강요된 합일만으로 허기를 충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기웃거리며 다른 어떤 것을 찾는다. 모두를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어떤 것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욕망하는 것이다.


바깥을 원할 때, 무한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낚싯줄처럼 드리운다.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그는 덥석 움켜잡는다. 우발적으로 온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순간, 존재자는 저 무한의 별들 사이로 날아오른다.

그러나 그가 미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독수리처럼 부감하며 미로가 어떤 것인지, 형태를 깨닫게 된다. 자신도 모른 채 진행되던 시스템의 음모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취향, 라이프 스타일, 소비 패턴의 이름으로 빅데이터화 되던 양적 호명을 비로소, 그는 과감히 던져버린다. 시스템에 의해 물화되었던 자신으로부터 탈주의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다.


바깥의 경험은 극한의 아름다움이다. 순간이지만 영원의 기억으로 남는다. 억눌렸던 그에게 존재의 함성을 외칠 생명의 약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영원 같은 순간은 금방 사그라들고 만다. 어느새 막막한 현실이 거대한 벽으로 도착해 있다. 그는 그을린 벽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타버리고 남은 것에서 환원 불가능한 것을 기억하려 한다. 그을린 자국을 한참 어루만진다. 그러나 차갑게 식어버린 벽은 서늘함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엇인가 읊조리기 시작했다. 유한성의 언어로 환원 불가능한 것을. 자신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외치기 시작한다. 순간 미로의 어느 이름 없는 벽에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 비로소 그는 도축된 숫자로 기억되는 동물과 다른 존재로 빚어지기 시작한다. 환원 불가능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가 된다. 창조하는 자로, 체제의 이단자로 남는다. 순간 그을린 것의 형태와 온도가 미세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논증은 진술의 아름다움을 오염시키므로 만약 논증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마치 진흙이 묻은 손으로 꽃을 더럽히는 기분이 든다'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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