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1)

「행복한 청소부」 인문적 읽기 / 차이 없는 반복, 낙타의 삶

by 김요섭




"[행복한 청소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루틴을 반복하는 존재가 우연히 들어온 낯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기 집중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켜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기존 성장 이야기 구조를 답습하고 있지만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예술이 자신의 몸을 통과할 정도로 강하게 접속한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차이 없는 반복


청소부는 전형적인 노동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항상 일찍 일을 하러 집을 나지요. 의 복장이 파란색으로만 그려진 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청소용구와 자전거마저 같은 색으로 화면 전체를 구성한 것에서 작가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청소부는 체제에 순응하며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지요. 즉 모체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태아와 같은 존재. 개별적인 단독자로 서지 못한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는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몇 년 전부터 똑같은 표지판을 닦고 있음에도 그것에 적힌 작가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요.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눈


이는 예술가와 노동자의 일반적인 차이이기도 합니다. 예술가는 이미 있는 것을 전복하는 창조적 결과를 생성해야 하지요.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세하게 차이나는 지점까지 사유하는 힘과 자신만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개별성이 바로 예술적 인간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노동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산 과정의 반복되는 노동에 함몰되어 새로움을 생성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또한 인간은 시스템과 차이를 발생시키기보다 소속되는 것을 편안해하기에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지요. 특히 노동자에게는 ‘목숨을 건 도약(니체)’일 수 있습니다.



낙타의 삶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는 하부구조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검열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는 해야만 하는 일(You should)을 열심히 하는 낙타 같은 존재지요.


어찌 되었건 그는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청소부보다 능력 있는 니다. 청소국 국장은 ‘잘하십니다!’라고 칭찬을 하는데 이는 선의의 칭찬으로 볼 수도 있지만, 청소국으로 표현되는 관료 조직체제의 논리를 대변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해내기를 바라는 것, 그럴 때만 가능한 칭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트랙을 벗어나버린다면 칭찬은커녕 생존이 위태롭게 되겠지요.


낙타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던 그가 어떻게 다른 존재가 될까요? 어떤 계기가 우발적으로 닥쳐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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