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블랑쇼 읽기, 11월 3일 단상
'책은 생각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단일성과 총체성을 넘어서는 언어에 직면하도록 해 주는 불편함이다' -블랑쇼
읽는 행위
책을 읽는 행위는 다성성의 언어와 만나는 일이다. 자신의 한계에 가닿고, 관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모어의 한계에 닿을 때 지배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열린다. 언어로,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바깥이 있음을. 가능성의 불가능은 그를 습격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는 받들 수밖에 없다. 울타리 없이 사랑하는 일,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바깥을 상상하는 아름다움을.
지난한 기다림, 응답 없음.
단 한 번의 가능성, 불가능.
극단의 심도, 아이러니.
멈출 수 없는 긴장과 고통 속에 머문다. 막막함을 감내하며 지속한 이야기만이 그를 빚는다.
비로소 존재한 적 없던 언어는 생성된다. 그도 몰랐던 언어는 다성성의 언어를 통해 발화된다. 옹알이하는 아이처럼 한 번도 시도되지 말은 시작된다. 그의 발성은 소수자의 목소리, 잊힐 수 없는 목소리를 담는다. 지배 없는 전체성으로 연합하고, 동시에 주체의 단독성에 다가간다. 다양체의 언어는 획일적 총체성의 미학을 가질 수 없다.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인 미감은 그를 예술적 존재로 만진다.
무한의 타자로의 열림
독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무한의 타자성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만이 갇힌 이를 자유롭게 한다. 이는 바깥 없는 주체가 자신의 인식으로 타자를 포획하는 자유가 아니다. 무한의 계시를 받드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결박당한 자유다. 오직 사랑하는 이를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일이다. 당신만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열정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오직 그분을 그인 채로 받아들이는 것이 '열림'이다. 작품을 읽을 때 완성의 순간에 사라져 가는 이를 긍정하는 것. 그렇게 멀어지고, 홀로 배제된 채 절벽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는 자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고 환원 불가능의 도래를 기다리는 일.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블랑쇼의 독서다.
'독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 독서는 있는 것을 존재하게 한다. 독서는 자유다. 존재를 주거나 존재를 포착하는 자유가 아니라, 맞이하고, 동의하고, 그렇다고 말하고, 그렇다고 말할 줄 밖에 모르고, 이러한 그렇다를 통해서 열린 공간 속에서 작품의 놀라운 결정이, 작품이 존재한다는 긍정이 긍정되도록 두는 자유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블랑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