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이상의 여행(1)

여행의 발견, 나는 왜 여행하는가?

by 김요섭


여행의 발견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흥분감에 도취되었던 것 같다. 여행책자를 사고, 블로그를 검색하고, 추천 일정을 참고해서 나의 일정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좋았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 열정을 쏟는 것은 고지서를 확인하고 송금하는 일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세부 일정과 캡처한 사진, 각종 경비 및 유의 사항까지 명확히 적어놓은 규격화된 일정표는 업무 기획서처럼 수십 장으로 늘어났다. 회사의 기획서와 달리 스스로 강요한 일이기에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일정에 맞춰서 해내고 나면 옅은 피로감과 함께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과 유명한 관광지를 들락거리며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는 여행은 일상처럼 반복되었다. 여행지는 내가 지불하는 만큼 소비되고, 차이 없이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이 새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슬란드 데티포스의 잿빛 폭포도 카파도키아의 벌룬에서 바라보던 풍광도, 캐나다 로키 모레인의 빙하수에서 노를 젓던 기억도 더 이상 그것이 주는 일시적 만족감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부재한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여행하는가? 왜 새로운 여행을 기획하고, 휴가 기간에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반복되는 여행에 소진된 이가 스스로에게 솔직할 것을 요구하며 찾은 답은 T.S 엘리엇의 문장에서였다.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그곳이 어디였는지 처음 깨닫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여행의 가벼움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광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감흥,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단지 그것을 위해 소비되고 만다면, 쓰고 버리는 상품처럼 얼마 버티지 못하고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왜소한 것인가? 어쩌면 이러한 여행은 일상을 살아내는 자신에 대한 부정이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일시적 결별 선언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단지 부정이 아니라 그것의 부재를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부재의 부정성을 간과하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롭게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니체의 아이 같은 눈으로 일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여행을 엘리엇의 문장대로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수레바퀴, 최초의 운동이자 신선한 긍정이 아닌가? - 니체


특히, 엘리엇의 문장에서 ‘처음 깨닫는다’는 표현에 주목하고 싶다. 그곳, 즉 자신이 떠나온 곳은 이미 자신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관계 혹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자신을 거듭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좋은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단지 어디론가 가서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진정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자신을 둘러싼 것을 돌아보고 화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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