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것이 불가능한 강도를 가진다. 수많은 곁가지로 싸인 형태는 속을 알 수 없다.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모호한 얼굴이다. 미묘하고 복잡한 형태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빈틈으로 고개를 숙여본다. 자세히 보니 가지 다발에 다시 작은 곁가지가 곳곳을 감싸고 있다. 그곳이 딱히 중심 인지도 불분명한 것은 일그러진 모양이다. 어떤 질서도 없이, 허술하게 뭉친 모습이 아무 데도 쓸데없어 보인다.
무용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묘한 강도가 느껴진다. 검은 중심을 지나, 그녀의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익숙한 듯 맡아보지 못한 냄새다. 치자꽃과 바닐라, 각종 과일의 부드러운 향이 느껴지다가도, 두리안의 향처럼 시체 썩는 냄새가 훅 올라온다. 흙의 습기 먹은 냄새와 광물의 복잡한 향까지 대표적인 냄새를 추려서 이러저러한 형태로 설명하려 하면, 코끝을 훅 스치는 새로운 향은 낯설기만 하다.
기이한 다중체의 촉수는 마디마다 다른 냄새를 뿌려대는데도, 마치 하나의 노트처럼 완성의 형태로 다가온다. 수백 만개의 촉수에서 발하는 향은 어떠한 중심도 없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차이 나는 것을 가로지르며 연결하는 중심이 있다. 강렬한 형태를 가졌으나 비어있는 것은, 잠시 동안 코를 맴돌다가 슬쩍 사라진다. 기묘한 형채를 가진 알 수 없는 것에 그녀는 다가간다.
손을 뻗자 원형의 형태에 가까운 것이 몸을 움츠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카오스적 구조는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녀가 슬쩍 손을 맞대자, 작은 가지는 하얀 솜털 같은 촉수를 순식간에 움찔거린다. 곁가지에 덧대어 있는 가지가 슬쩍 배치를 바꾼다. 바깥에 붙은 촉수의 형태도 갑자기 달라졌다. 그들은 하나인 듯 움직이지만, 분열된 아장스망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그녀는 잊고 있던 기억을 불현듯 떠올린다. 이것이었던 것일까?
랜턴을 비춘다. 어둠 속 빈 공간은 빛이 닿지 않는다. 빛을 먹어버린 듯 검은 속을 도저히 알 수 없다. 저 속에서 까마귀가 튀어나오거나, 면도날 같은 이빨을 숨긴 작은 괴물이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궁금하지만 손을 넣어볼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는다. 그곳에 도사린 것은 빛으로도 지워질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매혹시킨 것에 잠시 빠진 사이, 가지와 촉수의 꼴이 달라지며, 또 다른 형태를 띤다. 하나였다고 생각한 중심은 둘, 아니 여러 개로 순식간에 분열된다.
유일한 목격자인양 리좀은 그녀의 심연을 바라보고 있다.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이름조차 꺼내지 않던 것이, 깊은 곳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녀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검은 중심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그곳이다. 아니, 곳곳에 생성된 중심에서그 얼굴은 어른거린다.
검은 구멍에 그을린 그녀의 얼굴은, 틈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벌써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은, 순식간에어둠 사이로 사라진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다. 자신도 모르게 검은 곳으로 손을 밀어 넣는다.
'욕망은 언제 어디서나 개화한다.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써의 공이다. 인간은 자연을 소유할 수 없고, 욕망은 인간에 의해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망은 중심의 원뿌리가 아니라 주변의 잔뿌리들이다. 욕망은 비어있는 중심 그 주변의 활동력이다. 실체에 닿을 수 없는 것이 욕망이기에, 욕망은 늘 미완성이고, 하나의 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들뢰즈는 욕망의 이러한 특징을 리좀이라고 불렀다' -김준산